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이 4월 26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만성적인 저출산 문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구청장은 저출산 문제해결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2016년 전국 최초로 결혼장려팀을 신설하는 등 발 빠르게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국가의 3대 구성 요소가 국민, 영토, 주권인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민이 사라지고 있다”며 작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이 4월 26일 구청장실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165쌍 부부 인연 산파 역할
이 구청장은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결혼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출산 대부분이 결혼 가정에서 이뤄지는 한국 현실을 직시하고, 출산율 제고 첫 단추로 결혼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혼 출산’에 주목하는 프랑스식 해법은 한국에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국 문화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구청장은 “한국 사회는 청년 취업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결혼은 개인 문제로 여겨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혼 생활과 가족이 주는 행복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전국 최초로 결혼장려팀을 신설하는 등 이른 시기부터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보였는데.
“대구 달서구는 2013년 인구 61만 명으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인구가 점점 줄면서 2016년 59만 명이 됐다. 인구 감소 문제의 선제적 해결과 결혼 앞에서 서성이는 청춘을 응원하기 위해 결혼장려사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주변을 봐도 결혼에 뜨뜻미지근하더라. 이 풍조가 지속되면 상황이 심각해지겠다고 생각해 2016년 전국 최초로 결혼장려팀을 신설했고 이후 다양한 결혼장려정책을 추진했다.”
저출산 문제해결 방편으로 결혼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
“한국에선 출산이 대부분 결혼 가정에서 이뤄지는 등 프랑스와 차이가 있다. 양국은 역사와 문화, 상황이 모두 다른 만큼 프랑스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청년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적 어려움도 있겠지만, 결혼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지는데, 다들 이를 그냥 보고만 있다. 이에 ‘우리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섰다. 요즘 청년은 삶이 힘들다 보니 결혼 대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을 추구한다. 정부도 취업과 관련해서는 각종 지원책을 펼치지만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결혼에 대한 냉소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금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결혼에 대한 인식 개선이 급선무다. 결혼 얘기를 하면 ‘꼰대’ 소리를 듣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집안이 나서서 짝을 찾아주려 노력했는데, 요즘은 반대다. TV에서도 홀로 화려하게 사는 극소수 연예인의 삶을 조명하거나, 반대로 극심한 가정불화를 겪는 일반인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의 매력을 느끼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결혼은 ‘1+1=2’가 아니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삶에서 오는 기쁨, 아이가 주는 기쁨은 그 이상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각종 스캔들과 교통사고로 무너진 적이 있지만 자녀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가정은 큰 힘이 된다.”
‘잘 만나보세 뉴 새마을운동’
달서구에서 진행하는 결혼장려사업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인식 개선, 만남 기회 제공, 결혼 인프라 구축, 민관 협력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28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혼과 만혼 등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긍정적 결혼관’을 공유하고자 청년과 부모 세대를 대상으로 결혼 전략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결혼에 관심은 있지만 만남의 기회가 적은 청춘 남녀를 위해 다양한 만남의 장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1248명이 참여해 229쌍이 이어졌다. 특히 관 주도로 시작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나.
“자체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229쌍 가운데 14쌍이 결혼했다. 이 부부들 사이에서 아기 12명이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민관 협력 부문까지 포함할 경우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165쌍에 달한다. 유관기관 등과 함께 힘을 모아 노력해 이룬 쾌거다.”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잘 만나보세 뉴 새마을운동’이 눈에 띄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재해석했다. 미혼 남녀의 만남, 부부의 만남, 아이와 만남 등 생애 주기별로 이어지는 소중한 만남을 통해 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취지다. 과거 배고프고 못 살던 시기 국민은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새마을운동을 했다. 가만히 있으면 배는 침몰한다. 달서구청 역시 작은 결혼식 홍보, 미혼 남녀 만남 주선 등 결혼 관련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것처럼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현 상황을 ‘배가 침몰하는 상황’으로 여기나.
“국가의 3대 구성 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이 가운데 영토와 주권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3·1절, 광복절만 되면 다들 독립운동가를 떠올리고 주권의 가치를 되새긴다. 독도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어떤가. 그런데 정작 국민에 대해서는 상황이 반대다. 장작불이 사그라들고 있는데도 보고만 있다. 정치권은 매번 국가 미래를 강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국민이 사라지고 있어도 조용하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구청장은 중앙정부에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힘써달라고 꾸준히 요청해왔다. 2019년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에게, 2020년 진영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직접 쓴 편지로 관련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한 것이 대표적 예다. 이 구청장은 “그때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 등에게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힘써달라는 취지로 편지를 보냈는데 묵묵부답이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26명을 기록하자 나라 전체가 비상 상황에 돌입한 반면, 한국은 일본의 합계출산율을 목표로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출산 직원에 가산점 부여
대구 달서구는 ‘이만 년 역사를 간직한 거대 원시인’이라는 취지로 제작한 조형물 ‘이만옹(二萬翁)’을 통해 인구 위기 대응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자 이만옹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구 달서구청 제공]
“월광수변공원과 배실웨딩공원 등을 결혼친화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연인목, 행복카 같은 조형물로 꾸민 덕분에 이들 공원이 데이트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 신랑신부를 위해 자연을 담은 야외 결혼식장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내실 있고 합리적인 결혼 문화 정착을 돕는 셀프웨딩 아카데미, 커플매니저 양성 과정도 운영 중이다.”
다른 지자체 및 지역 대학들과 연계해 ‘미혼 남녀 데이트’도 주선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최근 대구 지역 다른 지자체와 연계해 미혼 남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결혼을 원하는 청년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무다. 구청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결혼 장려에 나서는 것은 인구절벽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다. 2017년 8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공공·민간기관 35곳과 손잡고 결혼장려사업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출산하면 직장 생활에서 손해를 본다는 인식도 강한 것 같다.
“달서구는 2019년부터 두 자녀 이상을 출산한 직원에게 근무 성적 평가 시 0.5~1점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부터는 첫째 자녀 출산 직원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첫째는 0.3점, 둘째는 0.7점, 셋째 이상을 출산한 직원에게는 1.5점 가산점을 부여하는 식이다.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미혼 직원에게는 20만 원 상당의 복지포인트를 데이트 비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공공 부문에서 앞장설 필요가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 정책을 펼치면서 느끼는 제약이나 아쉬움이 있을 법한데.
“‘각 지자체가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경쟁하게 해달라’는 의견을 중앙정부에 전달한 적이 있다. 지자체마다 결혼장려팀을 만들어 경쟁하게 하고, 연말에 시상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마이동풍이더라. 중앙정부에 결혼 관련 업무를 맡는 부처가 있었으면 한다. 결혼 지원에 대한 의견을 내려 해도, 이를 담당하는 부처가 없다. 여성가족부는 중립적 입장이고,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는 재정 문제 탓에 펼칠 수 있는 정책에 제한이 많다. 중앙정부가 나서주면 지방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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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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