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파이팅!” “5등, 만족스럽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치른 2020 도쿄올림픽의 가장 큰 성과를 하나 꼽자면 2001년 이후 태어난 21세기생(生)의 재기발랄한 활약일 것이다. 은메달을 따고도 죄인처럼 “죄송하다”고 말하던 어른 세대는 “노메달이어도 괜찮아”라며 올림픽을 진정 즐기는 이 아이들의 모습에서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경기를 게임처럼 즐기면서 기량을 100% 발휘했다. ‘국대’라는 중압감으로 경기마다 비장한 모습을 보이던 국민여동생 김연아(1990년생), 국민남동생 박태환(1989년생)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타인의 이목보다 ‘나답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경기장에서도, 경기장 밖에서도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나’에게 집중한다. 또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도 익숙하고 적극적이다. 2001년 이후 태어난 21세기 세대의 특징이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양궁장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던 양궁 대표 김제덕, 수영 자유형 100m, 200m 경기에서 ‘수영 황제’ 케일럽 드레슬과 함께 역영한 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황선우, 동메달을 목에 걸고 연신 손하트를 날린 기계체조 여자 도마 여서정, 밀레니엄올림픽 사상 첫 양궁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고도 담담하던 안산…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관전하면서 달라진 ‘국대’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아이도 올림피언으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가 부쩍 늘었다. 도쿄올림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한국 스포츠 미래를 환하게 밝힌, 2000년대에 태어난 6인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그들의 어린 시절 공통점은 ‘운동을 즐거운 놀이로 여겼다’는 것. 여기에 ‘국대로 가는’ 답이 있다.
# 18세 드레슬보다 빠르다 ! 황선우(2003년생, 수영)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47초56으로
아시아 기록 및 세계 주니어 기록을 세운 황선우 선수. [동아DB]
황선우 선수는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47초56으로 아시아 기록 및 세계 주니어 기록을 세웠다. 결승전에서는 47초82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자유형 200m 예선에서도 1분44초62로 한국 기록과 세계 주니어 기록을 세우고 박태환 이후 9년 만에 결승전에 올라 7위를 차지했다. 황 선수는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수영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년체전에 대표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에 나섰다. 2020년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 남자 자유형 100m 결선에서 48초25로 한국 기록을 세우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선수들이 주로 구사하는 로핑 영법을 구사한다. 한쪽 스트로크에 힘을 더 싣는 비대칭 영법이다. 어깨를 많이 써야 해 체력 소모가 크지만, 단거리에서 속도를 내기에 유리하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수영 5관왕에 오른 미국 케일럽 드레슬은 “내가 18세였을 때보다 더 빠른 선수”라며 황선우의 잠재력을 인정하기도 했다.
# 탁구신동 신유빈(2004년생, 탁구)
2020 도쿄올림픽 탁구 여자개인전 64강에서 ‘베테랑’ 니시아리안(룩셈부르크)을 풀세트 접전 끝에 꺾고 32강에 진출해 화제가 된 신유빈 선수(왼쪽). 초등학생 시절 신유빈 선수. [동아DB]
탁구 신동 신유빈 선수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41세 차이가 나는 백전노장과 대결에서 승리했다. 단체전 8강 탈락이라는 쓰라린 경험도 했다. 신 선수는 탁구 실업팀 선수 출신인 아버지 신수현 씨의 영향으로 탁구에 입문했다. 신 선수에게 탁구는 아빠와 늘 함께하는 놀이였다. 그는 탁구를 시작하자마자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이며 초등학생 때부터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탁구 신동으로 출연, 현정화 한국마사회 총감독을 상대로 강한 드라이브를 성공해 주목받았다. 14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됐는데, 한국 탁구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다. 지난해 3월에는 고교 진학 대신 대한항공 여자탁구단 입단을 선택했다.
# ‘거미소녀’ 서채현(2003년생, 스포츠클라이밍)
2020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콤바인 결선에서 총 112점으로 8위에 오른 서채현 선수. [동아DB]
서채현 선수는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콤바인 경기에서 예선 1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결선을 8위로 마무리하며 파리올림픽을 기약했다.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다. 서 선수는 경기 후 “중간에 실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힘을 다 쓰고 내려와 괜찮다. 올림픽 결선을 뛰어봤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서 선수는 부모 영향으로 5세 때부터 자연스럽게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2013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 암벽등반 영재로 출연해 “어릴 때부터 암벽장을 즐거운 곳이라 생각했고 대회를 즐긴다”고 말했다.
# ‘강심장’으로 3관왕 오른 안산(2001년생, 양궁)
7월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산 선수(왼쪽). 어린 시절 안산 선수. [동아DB]
2020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혼성단체전을 시작으로 여자단체전, 개인전까지 금메달을 휩쓸어 한국 하계올림픽 사상 첫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 개인전 결승에서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에도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던 안 선수의 ‘강심장’은 올림픽이 끝난 지금까지도 화제다. 안 선수가 처음 활을 잡은 건 광주 문산초 3학년 때다. 10점 과녁에 활을 몇 개 이상 맞히기 훈련이 다트 게임처럼 재밌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대회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다 2016년 제42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남녀양궁대회에서 여자중등부 30m, 40m, 50m, 60m, 개인종합, 단체전 6종목에서 전관왕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2021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강채영, 장민희에 이어 3위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다.
# “파이팅” 소년 김제덕(2004년생, 양궁)
2020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단체전에 출전해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긴 김제덕 선수(왼쪽). 김제덕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동아DB]
“코리아 파이팅!” 특유의 힘찬 기합 소리와 나이답지 않은 담대함으로 한국에 2020 도쿄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긴 김제덕 선수.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궁사 모습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김 선수는 양궁 명문 경북 예천초 3학년 때 양궁을 시작했다. 친구의 권유로 장남 삼아 활을 잡았다. 6학년 때 참가한 제50회 전국남여양궁종별선수권대회 초등부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하며 차세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당시 SBS ‘영재발굴단’에 양궁 신동으로 소개됐는데, 중국 여자 양궁 안취시안(당시 17세)과 이벤트 대결을 벌여 슛오프 끝에 승리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17세인 김 선수는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해 양궁 혼성단체전에 이어 남자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 어린 나이에 도쿄에서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한 김 선수가 2024 파리올림픽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자못 기대된다.
# “파리에선 금메달 따야죠” 여서정(2002년생, 기계체조)
한국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딴 여서정 선수. [동아DB]
여서정은 기계체조 도마에서 동메달을 따며 한국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1차 시기 ‘여서정’ 기술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2차 시기 착지에서 조금 흔들려 합계 14.733, 종합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서정 기술은 2019년 등재된 도마 기술이다. 양손으로 도마를 짚은 뒤 공중으로 몸을 띄워 두 바퀴를 비틀어 내리는 기술로 720도 회전한다. 여자 도마 기술 중 두 번째로 난도가 높다. 여서정은 9세 때 기계체조를 시작해 3년 만인 12세 때 전국체전을 휩쓸었다. 아버지 여홍철 씨와 어머니 김채은 씨의 영향이 컸다. 여홍철 씨는 1996 애틀랜타올림픽 남자 도마 은메달리스트, 김채은 씨는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동메달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