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담화를 발표한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왼쪽)과 8월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한미연합훈련 유연 대응을 주장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조선중앙TV 캡처, 뉴스1]
앞서 8월 1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에서 “우리 정부와 군대는 남조선 측이 8월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 연습을 벌이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담화했다. 매년 8월 한미연합군이 해온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말라고 협박한 것이다. 남북통신선 복구라는 카드를 쥐어주고는 옆으로 ‘쿡’ 찌른 것인데, 이에 우리 정부와 여당은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지원 국가정보원(국정원)원장은 이틀 뒤인 8월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한미연합훈련 유연 대응 검토’를 주장했다. 그러자 설훈 의원을 필두로 60여 명의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자는 문건에 서명하며 동조했다. 단,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번 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따른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청와대도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8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로 군 주요 지휘관을 불러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건 등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보고나 논의 주제는 아니었다’고 하나, 서욱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코로나19 상황 등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방역 당국 및 미국 측과 협의 중”이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배신적 처사에 유감”
그럼에도 한미연합훈련은 취소되지 않았다. 8월 4일 청와대 보고 자리에 불려갔던 원인철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이 훈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 첫째, 합참이 주관하는 위기관리 참모훈련은 한미연합훈련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이번 한미연합훈련에는 실병력 기동이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이해하려면 우리 군이 전쟁을 어떻게 치르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전쟁은 두 단계로 나뉜다. 적이 공격을 하기 위해 병력과 무기를 전개하는 ‘전쟁 전(前)’ 단계와 이를 투사하는 ‘전쟁’ 단계가 그것이다. 우리 군은 평시에는 합참이 작전통제를 하고 전시에는 한미연합사가 작전통제를 하게 된다.전쟁 전 단계는 적의 도발이 없으니 ‘평시(平時)’에 해당한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으면 큰 기습을 당할 수 있으니 우리도 대응할 부대와 무기를 전개하는 작전을 펼쳐야 한다. 전투가 없는 상태에서 하는 이러한 판단은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진 합참 참모들이 담당하기에 이를 위한 연습을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이라고 부른다. 미군과 한미연합사는 전쟁이 일어나야 참전하니, 한국 합참이 하는 이 훈련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 훈련은 순수하게 한국군 훈련인 것이다.
참모들의 결정에 따라 실부대를 전개하는 연습을 해볼 수도 있지만, 합참은 문 대통령의 의지를 받들어 워게임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이것이 국정원과 청와대, 민주당만 바라보던 북한 수뇌부를 당혹스럽게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가장 센 조직은 김정은 국무위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이다. 김여정은 권위를 높이려는 듯 ‘당 중앙위원회 위임’을 받았다며 이 훈련이 시작된 8월 10일 오전 8시 북한 주민이 보지 못하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오후 북한은 남북통신선을 차단했다.
연습감독 따로, 시합감독 따로?
많은 전문가는 김여정의 담화에서 ‘배신적 처사’를 했다고 한 남조선 당국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서 피살됐을 때 김여정은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미안해한다는 뜻을 구두로 국정원에 전했고,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를 받아 청와대에 알린 바 있다. 따라서 박 원장을 지칭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박 원장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밀사였다. 김대중-이희호 전 대통령 부부를 대신해 북한과 접촉을 이어온 만큼, 북한에는 그의 족적이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김여정이 박 원장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면 이것을 폭로하는 식으로 보복할 수도 있다.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서도 대회에 출전하는 각 경기단체는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뽑아 작전을 짜고 훈련을 시킨다. 이는 실전이 아니니 평시연습으로 봐야 한다. 올림픽 무대에서 펼치는 시합은 그야말로 전시(戰時) 대결로 볼 수 있는데, 본 시합에서 경기단체는 감독을 변경하지 않는다.
군사작전도 그렇게 해야 한다. 평시훈련과 작전을 펼친 사령부가 전시 사령부도 맡아야 승리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우리 군은 평시훈련과 대응은 합참이, 실전은 미군 참전을 조건으로 한미연합사가 통제하게 해놓았다. 한국군은 연습할 때 감독과 시합할 때 감독이 다른 셈이다. 이는 우리 안보의 ‘구멍’이 될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겠다고 추진한 것이 미래연합사 창설이다. 한미연합사는 미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미군 주도의 연합사지만, 미래연합사는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하는 한국군 중심의 연합사다. 문재인 정부는 미래연합사는 합참과 소통이 원활할 수 있으니 합참에서 미래연합사로 작전통제권을 넘겨줄 때 허점이 적다고 봤다. 하지만 미래연합사 창설의 진짜 배경은 따로 있는 듯하다. 미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 한미연합사가 북한을 상대로 전시작전(전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미래연합사 창설의 표면적 명분은 자주권 확보를 위한 전작권 전환에 있다. 미국도 조건부로 동의했다. 미래연합사가 전시작전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검증해 그렇다고 생각될 때 넘겨주겠다고 한 것. 한미연합사를 한국군 대장이 이끄는 미래연합사 체제로 바꾸고, 북한군의 공격과 동시에 미래연합사가 한국 합참으로부터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아 미군과 어떻게 연합작전을 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 평가를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으로 명명했다. 이 검증을 하려면 실병력을 움직여봐야 하는데, 워게임 방식으로는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제 미군은 미래연합사를 통해 전작권을 전환하자는 우리 정부 측 요구를 간단히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