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방검찰청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동아DB]
마지막 ‘화룡점정’
‘원샷 원킬’을 하는 것 같은 검찰의 빠른 조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랄까, ‘눈동자만 찍지 못한 용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정(點睛)은 ‘기소’다. 이 사건 뒤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사실을 파악해놓은 ‘프로’들이 있었다. ‘앞이 막힌’ 그들이 공익신고자로 변신했기에, 대전지검(월성원전 사건)과 수원지검(김학의 사건) 등은 권력기관을 덮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권력기관을 흔드는 도미노를 만들지도 모른다.‘2등 공신’으로는 대한민국의 ‘훌륭한’ 시스템을 꼽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한 국회의원 출신 전현희 씨가 이끄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acrc.go.kr/acrc/index.do)는 부패신고‧공익신고 등을 받고 있다. 이곳에 신고한 이들은 ‘국가 또는 자치단체는 공익신고자 보호·지원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3조)’ ‘공익신고자 보호와 관련해 이 법과 다른 법이 경합할 때는 이 법으로 보호한다. 다른 법을 적용하는 것이 신고자에 유리할 때는 그 법을 적용한다(5조)’라고 해놓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한 이는 김학의 불법 출금 신고자였다. 그는 본인인증까지 요구하는 국민권익위 사이트에 ‘제대로’ 신고했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신고자는 공직자가 확실하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7조는 ‘공직자는 그 직무를 하면서 공익 침해행위를 알게 된 때에는 이를 조사기관, 수사기관 또는 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당시 출금 대상자가 아니었던 김학의 씨를 불법 서류로 출금한 것은 명백한 공익 침해다. 공직자로서 이를 알고 있었던 그는 의무를 다 한 것이 된다.
신고 받은 국민권익위는 검토 후 수사 의뢰를 결정하니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는 이를 예측이나 한 듯 같은 내용을 국민의힘에도 알렸다. 국민의힘은 국민에게 이 제보를 밝힌 뒤 대검에 제공했고, 검찰은 신속히 수사에 나섰다. 국민권익위는 수사 의뢰할 기회를 놓치고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그를 보호하는 일이나 하게 된 것이다. ‘수사의 A to Z’는 물론이고 김학의 불법 출금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 알고 있는 이 공익신고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가 작성한 신고서에는 “국가 권력의 불법을 계속 수사하지 못하고 중단한 당시 판단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한다” “수사를 중단한 책임은 신고인에게 있으며, 신고인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할 생각도 없다” “충격적인 내용을 보고받은 후 긴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교수 출신 장관(박상기), 인권 변호사 출신 출입국본부장(차규근), 파견 검사(이규원)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혼자 한 일일까? 수없이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이라고 적어놓았다.
2019년 김학의 출금을 내사한 곳은 안양지청이다. 비공개 내사 자료는 아무나 받아볼 수가 없는데, 그는 내사 내용을 신고서에 적어놓았다. 그리고 “당시 대검 내부 구체적 상황은 모르겠다”고 해놓았다. 하지만 당시 반부패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은 신고서에 ‘피신고자’로 적시해 놓았으니, 그는 대검 근무자가 아닌 안양지청 내사 내용을 알 수 있는 검찰 간부인 것이 분명해진다.
딥 스로트는 고위직
월성1호기 수익성 분석 조작도 극소수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딥 스로트(deep throat)' 역할을 했다. 그는 철저히 보안을 요구했기에 강창호 한수원 새울노조 지부장이 총대를 멨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황교안 대표 등 야당 인사들을 만난 그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에 대한 많은 설명을 해, 국회 산업위로 하여금 감사 청구를 하게 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산자부 공무원 등 11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지만, 이성윤 지검장이 이끄는 중앙지검도 고발인 조사만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때문에 국민권익위에 신고했는데, 권익위가 감사원으로 이첩했다. 그때부터 감사원이 움직였다. 그의 제보와 비슷한 사실들이 확인되자 최재형 감사원장은 청와대와 다퉈가며 이를 발표하고, 참고자료를 검찰에 넘겨 수사가 이뤄지게 했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직위해제를 당했다.
검찰 수사가 이뤄지며 반전을 맞았다. 한수원 노조의 회생자금 지원을 받아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 덜고, 1월 25일에는 국민권익위로부터 공익제보자 인정을 받아 신변 불안도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다. 사정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는 험한 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나 한수원은 여전히 그의 복직을 막고 있다. 소박한 그는 “내 일은 다 한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의 엔지니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학의 불법 출금 신고자는 이를 지켜본 듯 자기 보호와 의무 준수, 그리고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게 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이 신고가 있은 뒤 차규근 출입국본부장은 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제보자를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공허한 주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5월 16일 MBC는 “문재인 정부가 KT&G 백복인 사장을 교체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보도했는데, 그해 12월 29일 기획재정부 사무관 신재민 씨가 “MBC에 그 문건을 제보한 사람은 나”라고 주장해 주목을 끌어다. 그리고 나흘이 지난 2019년 1월 2일 “문재인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경제 운영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채권 조기상환을 취소하고 오히려 막대한 이자 부담을 초래하는 적자국채 발행을 추진했다”고 폭로해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기재부는 그를 기밀누설 협의로 고발했지만, 그는 국민권익위에 공직자로서 공익침해를 알았다며 신고했기에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밝히는 데 일조할 것 같던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고위직에 있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비위를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고위직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