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모습(아래)과 이번 공연에서 지휘와 피아노 협연을 겸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빈 필과 에셴바흐는 1부 연주곡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에서부터 관객들을 흠뻑 매료케 했다. 제1악장에서 빈 필의 현악 파트는 모차르트의 가장 우아하고 유려한 협주곡의 ‘A장조 선율선’을 능숙하고도 자연스럽게 뽑아냈고, 에셴바흐는 그 흐름에 부드럽게 녹아들면서 순간순간 음악의 표면 아래로 깊숙이 침잠하는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제2악장에서 에셴바흐가 빚어낸 오묘한 뉘앙스와 겸허한 명상의 순간들이 은은한 감명으로 다가왔다. 또 제3악장의 쾌활한 음률까지 더없이 상쾌하게 마무리한 다음, 에셴바흐와 빈 필은 앙코르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2번’ 가운데 느린 악장을 선사해 관객들의 마음을 ‘천상의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줬다.
2부 프로그램인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교향곡 41번’도 멋진 연주들이었다. 무엇보다 이 두 곡에서는 1부에서보다 다양한 관악기가 등장해 빈 필 특유의 음색과 울림을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가장 돋보인 건 현악 파트의 격조 높은 질감과 찬연한 색감이었다. 이는 악단의 현악 음색 자체가 워낙 특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악단이 여전히 관악보다 현악을 우위에 둔 ‘올드 스타일’ 연주방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빈 필의 관악 주자들은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냈으며, 특히 플루트 수석주자가 보여준 기막힌 음량 조절과 타이밍 감각은 발군이었다.
사실 빈 필의 모차르트는 이처럼 올드 스타일을 고수하는 데다, 음반 등을 통해 익히 알려졌기 때문에 너무 무난하거나 식상한 연주가 되기 십상이다. 다행히 이번 내한공연은 그런 위험을 잘 피해갔는데, 여기에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에셴바흐의 지휘였다. 그는 시종 적극적인 동작으로 도처에서 독특한 밸런스와 참신한 뉘앙스를 부각했다. 비록 그 작업이 다분히 미시적 견지에서 이뤄진 것이었기에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으나, 모차르트 음악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색다른 재미를 안겨줬을 것이다. 한마디로 ‘톡 쏘는 맛이 더해진’ 빈 필의 모차르트였다.
이번 내한공연의 또 한 가지 관전 포인트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가 예정된 이 악단의 제1 악장, 라이너 퀴힐의 모습을 국내에서는 마지막으로 대할 수 있는 무대였다는 점이다. 만 20세 나이로 발탁된 이래 45년 가까이 악장 자리를 지켜온 이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는 공연 내내 예의 날카로운 눈빛과 꼿꼿한 카리스마로 동료들을 이끌며 연주를 주도했다. 엄밀히 말해 이번 공연은 기본적으로 ‘퀴힐의 빈 필’이 연주한 것이며, 에셴바흐는 양념을 더한 격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