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2010.08.02

伊 남자들 사랑 빙자한 살인사건

지난 한 달간 여성 9명 목숨 잃어…과도한 집착 스토킹 피해도 속출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0-08-02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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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伊 남자들 사랑 빙자한 살인사건
    17세 엘레오노라는 사랑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헤어지자”고 선언한 직후 30세 약혼자 파비오가 쏜 총에 맞아 짧은 생을 마감했다. 파비오도 애인을 쏜 그 총으로 자살했다. 엘레오노라는 페이스북에 사연 많은 사랑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녀는 얼마 전 “파비오는 내 사랑. 하지만 계속되는 거짓말과 너무 많은 비밀에 힘들고 피곤하다. 이제 이별만 남았다”는 말을 남겼다. 파비오는 장래가 촉망되는 모범생으로 알려져 주변의 충격은 더욱 컸다.

    시모나는 갑자기 행방을 감췄다. 실종신고를 한 시모나의 부모는 딸의 전 애인이자 헌병인 루카의 도움을 받으며 딸을 애타게 찾았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루카는 자신이 시모나를 살해한 뒤 티치노 강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둘의 사랑은 끝났지만 루카는 시모나를 계속 괴롭혀왔다.

    28세 리카르도 역시 ‘영원히 같이 있으려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라는 쪽지를 남기고 20세의 전 애인 데보라를 살해했다. 사건 직후 그도 자살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리카르도는 두 사람의 이니셜을 딴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데보라의 친구들은 “데보라가 전 애인을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통곡했다.

    연간 100여 명씩 ‘여성 대학살’

    伊 남자들 사랑 빙자한 살인사건

    남성 스토커들의 살인 사건을 보도한 현지 기사들(오른쪽 사진). 한 달 간 무려 9명의 여성이 죽임을 당하자 이탈리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전국 각지에서 남성 스토커들의 살인사건이 연일 보도되자 이탈리아는 충격에 빠졌다. 지난 6월 중순부터 한 달간 무려 9명의 여성이 한때 자신을 사랑했던 전 애인 또는 남편에게 목숨을 잃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나 학력, 경제력, 직업, 나이 등이 달랐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너 없이 못 살아’라는 집요함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살인과 자살로 이어진 것이다.



    언론은 일련의 사건을 보도하면서 ‘순간적 충동’ ‘홧김에’ ‘40℃를 넘나드는 폭염’ 등을 이유로 들며 ‘정신병 환자’에 의한 예측불허의 살인사건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범죄전문가들은 “그들은 치밀하게 계획한 뒤 멀쩡한 상태에서 여성을 죽였다”며 ‘여성대학살’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런 살인사건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에 의한 것이거나 순간적 충동에 의한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 한때 사랑했던 남성의 손에 살해된 여성이 2005년 84명, 2006년 101명, 2008년 113명, 2009년 119명 등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사랑한 여성을 죽인 것일까. 범죄전문가들은 스토커의 공통된 행동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스토커들은 수개월 또는 수년간 미행과 전화, 메시지 공세를 펴며 여성을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괴롭힌다. 하루는 협박으로, 하루는 가슴 절절한 사랑의 고백으로 구애한다. “내가 이러는 건 다 널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가 가장 많이 하는 변명. 또 그들은 철두철미하다. 피해자의 일상생활 시간대를 훤히 꿰고 예상치 못한 곳에 나타난다. 그러고는 ‘어디를 가도 난 널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伊 남자들 사랑 빙자한 살인사건

    로마 시내 한 다리 위에 설치된 사랑의 자물쇠탑 옆에서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는 연인. 하지만 사랑을 넘어선 과도한 집착과 소유욕은 참혹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는 한 스토커의 쇼킹한 고백을 보도했다. 전 애인 마리아에게 버림받은 이 남성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안티스토킹’ 협회에 도움을 청했다. 살인을 계획한 이유를 “마리아를 죽이면 내 맘이 편해질 것 같아서”라고 털어놨다. 보통 스토커들은 나르시시즘이 강해, 타인의 눈에 자신이 사랑의 실패자로 보이는 걸 참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이혼하고 애인에게 차일 수 있지만 ‘나만은 절대 안 돼’가 그들의 심리다. 실패자의 낙인을 찍은 전 아내나 전 애인을 세상에서 없애면 자신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소유욕이 병적인 스토커들은 ‘내 여자’가 나 없이 새 삶을 사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 내 여자가 남의 소유물이 되는 건 더욱 참지 못한다. ‘내 소유물’을 날치기한 새 애인도 같이 살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탈리아에서도 “너는 내 거야”라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과 다름없다. 실연이나 이혼을 당하면 두뇌는 마약중독자의 금단 현상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사랑도 적당하면 인생의 묘약이지만 지나치면 마약으로 둔갑한다.

    마치 게임하듯 방아쇠 당겨

    최근엔 밀라노에서 1990년부터 무려 20년간 전 애인을 협박하던 스토커가 검거됐다. 피해 여성은 하루 50여 개의 문자메시지와 수십 통의 전화에 시달렸지만, 경찰에 고소한 건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오빠였다. 피해 여성들은 남성의 폭력과 협박에 익숙해진 데다 심리적으로 의존형이라 고발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경찰서에 가서도 “정말 고소할 것이냐”는 경찰관의 질문에 고개를 젓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성나면 무섭지만 본성은 착한 사람”이라고 두둔한다. 스토커를 고소했다 자진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폭력에 익숙해진 여성은 스토킹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됐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지난해 2월 이탈리아에서는 스토킹 관련법이 제정됐다. 이후 1년 반 동안 7000여 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1200여 명이 구속됐다. 이탈리아 ‘안티스토킹’ 협회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의 79%가 여성이며, 16세부터 70세까지 여성 중 3분의 1은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스토커의 국적은 84%가 이탈리아지만 외국인도 16%에 이른다. 최근 동유럽권과 북아프리카 등의 이민자 사이에서도 스토킹 살인이 급증하고 있다. 이탈리아 법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최소 6개월에서 최고 4년의 형량이 내려지나, 이는 피해자가 고소를 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심리학자 비토리오 안드레올리(Vittorio Andreoli)는 ‘코리에라 델라 세라’ 지면을 통해 “여성들이 다시 남성의 쾌감과 만족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며 경종을 울렸다. 그는 “현대사회가 살인을 평범한 일로 만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수많은 적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을 하며 성장한 젊은이들은 애정 실패와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고, 게임하듯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여성들이 덩치만 크지 심적으로 연약한 남성을 보호하고 다독거리며 방패가 되는 엄마 노릇까지 떠맡게 됐다”고 지적했다.

    필자가 원고를 끝맺는 7월 25일 이 순간에도 남성 스토커 속보가 들린다. 71세 남성이 야밤에 전 아내의 침실에 침입, 불을 질러 여성이 전신의 80%에 화상을 입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내용이다. 슬픈 리스트는 끝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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