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경제

‘열일’(열심히 일하는)하는 재벌가 딸들의 명암

아들만큼 경영 적극 참여, 남매·자매간 기 싸움…‘경영능력 평가’ 제대로 받아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3-03 16: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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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기업 오너가에 ‘영 우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아들을 중심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던 과거와 달리 최근 딸들도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 중이다. 더욱이 이들은 남자 형제보다 어린 나이에 경영수업을 시작하고 지분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향후 몇 년 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 오너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열일’(열심히 일한다는 뜻의 신조어)하는 대기업 여성 경영인의 명암을 살펴봤다.

    최근 재계에선 ‘뉴 도터스’(New Daugh- ters·1980~90년대 태어난 딸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28) 씨,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 서민정(26) 씨,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장녀 박하민(28) 씨를 들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뒤 그룹사에 안착하기 전 ‘경영 사관학교’라 부르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먼저 들어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해외 유학을 마친 뒤 20대 중반에 바로 그룹사에 입사해 3~4년 만에 초고속 승진하는 게 승계 과정이었던 반면, 요즘에는 컨설팅 회사에서 1년 정도 경험을 쌓는 게 일종의 코스가 됐다.

    최윤정 씨와 서민정 씨는 2015년 7월 같은 시기에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에 입사해 주니어 컨설턴트로 일했다. 박하민 씨는 맥킨지컨설팅에서 근무했다. 오너가 딸들이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해외 유학파가 많고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컨설팅 실무를 하면서 경영진을 자주 만나다 보면 자연히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회사와 관련된 팀에 배속돼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뉴 도터스’ / SK 최윤정·아모레퍼시픽 서민정·미래에셋 박하민


    최윤정 씨는 1월 초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퇴사했다. 이후 정확한 거취가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컨설팅 회사에서도 석유화학,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근무해 그때부터 ‘사실상 경영수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중국 베이징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생물과학을 전공한 윤정 씨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어머니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2014년 ‘싱귤래러티99’라는 소시민을 위한 연구모임을 출범할 때 옆에서 실무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K그룹은 윤정 씨의 경영 참여 계획과 관련해 어떤 것도 확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SK그룹 한 관계자는 “올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건 맞지만 SK그룹에 입사할지, 다른 일을 할지 그룹 내에선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노 관장의 자녀 교육관에 비춰볼 때 윤정 씨가 경영과는 무관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돈다. 노 관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방 치워라’ ‘늦게 자지 마라’ 같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닦달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찾아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정 씨의 동생 민정(26) 씨는 2014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현재 서해 북방한계선을 지키는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최태원 회장의 막내아들 인근(22) 씨는 현재 미국 브라운대에서 유학 중으로, 아직 경영수업과 관련된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서민정 씨는 지난해 12월 베인앤드컴퍼니를 퇴사하고, 올해 1월    1일자로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현재 경기 오산시 공장에서 평사원 직급으로 근무 중이다. 화장품 사업의 기본인 공장 내 제조기술팀에 배치됐다. 서경배 회장도 과거 경기 수원시 공장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민정 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최근 아모레퍼시픽의 비약적 발전을 직접 바라보면서 아버지로부터 ‘살아 있는’ 경제교육을 받았을 것이란 추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서 회장은 업계에서 소문난 ‘딸 바보’다. 맏이인 민정 씨와 둘째 딸 호정(22) 씨에게 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돼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 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보유한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량 전환하면서 우리나라 100대 부호 중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다. 민정 씨는 상장사 아모레G 지분 2.93%와 아모레퍼시픽 0.01%, 비상장사 이니스프리 지분 18.18%, 에뛰드 19.52%, 에스쁘아 19.52%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사 주식자산만 3300억여 원에 달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이를 통한 후계 승계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아모레퍼시픽 측은 “서 회장이 늘 ‘후계를 운운하기에는 내가 아직 젊다. 아이들은 좀 더 배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벌써부터 경영승계를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에셋그룹 박하민 씨는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뒤 맥킨지컨설팅에서 1년, 미국 부동산투자컨설팅 업체 CBRE에서 1년간 근무하다 2013년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에서 국외부동산 투자 업무를 맡은 바 있다. 최근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한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데, 이론을 더 배운 뒤 실무에 뛰어들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동생 은민(25) 씨는 미국 듀크대를 졸업한 뒤 현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한국지사에서 주니어 컨설턴트로 근무 중이다. 두 자매는 비상장사인 미래에셋컨설팅 주식을 8.19%씩 보유하고 있다. 자본총계를 기준으로 집계한 지분평가액만 각각 530억 원에 달한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미래에셋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미래에셋캐피탈의 지분 9.98%를 갖고 있다.



    ‘금녀의 벽’ 깬 골든 도터스 / 금호석화 박주형 상무·캘리스코 구지은 사장

    아들을 통해 그룹을 승계, 유지하려던 과거와 달리 최근 이 같은 틀을 깨는 여성 경영인이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박주형(37) 금호석유화학 상무와 범LG가(家)인 구지은(50) 전 아워홈 부사장(현 캘리스코 사장)을 들 수 있다.

    먼저 박 상무는 전통적으로 여성 경영인을 금기시하던 ‘가문의 원칙’을 깨고 2015년 1월 금호석유화학 상무로 회사에 발을 들였다. 금호그룹은 과거 고(故) 박인천 회장의 아들들이 작성한 ‘형제공동경영합의서’에 따라 약 70년 동안 여성의 경영 참여는 물론, 주식 보유도 금했다. 그렇기에 박 상무의 등장은 그야말로 ‘파격’이라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박인천 전 회장의 3남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4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갈등이 깔려 있다. 두 사람은 2009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인수 과정에서 이견을 보였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이 인수를 결정하면서 형제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에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이며 ‘분리경영’을 추진한 끝에 2015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이후 박찬구 회장은 “딸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고, 박주형 상무를 금호가 첫 여성 경영인으로 내세웠다.

    이화여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박 상무는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한 뒤 1년간 미국 현지 기업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에 입사해 2015년 6월까지 근무했다. 6년간 관리 분야에서 역량을 쌓은 그는 현재 그룹 내 구매와 자금부문을 관리하고 있다.

    현재 박 상무가 보유한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0.71%로 두 오빠 박철완 상무(9.1%), 박준경 상무(6.25%)보다 적지만,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있어 추후 그룹 경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업계 내 시각이다. 아직 미혼인 박 상무는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내부 평판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지은 캘리스코 사장도 범LG가에서 유일무이한 여성 경영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자학(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3남) 아워홈 회장의 막내딸인 구지은 사장은 친가는 LG가, 외가는 삼성가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둘째딸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 여사가 구 사장의 어머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과는 고종사촌 지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구 사장은 미국 보스턴대에서 인사관리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와야트코리아 수석컨설턴트를 거쳐 2004년 아워홈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입사했다. 2011년 외식사업부문의 성과를 인정받아 전무로 승진한 뒤 2015년 2월 아워홈 구매식재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으며 부사장직에 올랐다. 하지만 5개월 만인 같은 해 7월 돌연 보직 해임돼 그 배경을 두고 한동안 뒷말에 시달렸다. 6개월 뒤인 지난해 1월 다시 원 자리로 복귀하긴 했지만 2개월 만에 또다시 등기이사에서 제외됐으며, 결국 아워홈 관계사인 캘리스코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구 사장은 페이스북에 ‘그들의 승리. 평소에 일을 모략질만큼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은 7년은 앞서 있었을 거다. 또다시 12년 퇴보, 경쟁사와의 갭은 상상하기도 싫다. 11년 만의 안식년 감사하다’는 글귀를 남겨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구 사장이 떠난 자리에는 장남이자 그의 오빠인 구본성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겉으로는 구 사장이 아워홈의 승계 경쟁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빠와 지분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구본성 대표이사의 지분은 38.5%, 구 사장은 20.67%,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장녀 구미현 씨는 19.28%, 차녀 구명진 씨는 19.6%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구 사장은 아워홈에서 발을 뺀 뒤 캘리스코의 ‘사보텐’ ‘타코벨’ 등 외식브랜드를 늘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아워홈 관계자는 “경영권 관련해서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 구 사장이 외식사업에 워낙 능해 자리를 옮긴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삼성 리스크’에 재조명, 이부진-이서현 자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기울던 지배구조 재편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새로운 기류를 만났다. 2월 17일 이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되면서 이부진(47) 사장, 이서현(44) 사장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이부진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세간에 ‘이부진 역할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실현 가능성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해체된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관계자는 “삼성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래전략실도 해체됐고 각자 자율경영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부진 사장과 관련해서는 오해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부진 사장은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과 결단력으로 이건희 회장의 삼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 사장은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입사해 2001년 호텔신라 기획부장으로 근무하다 2004년 호텔신라 경영전략담당 상무보로 승진했다. 이어 2009년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전무를 거쳐 2010년 드디어 호텔신라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부진 사장은 취임 후 호텔신라의 면세점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명품 유치와 특허권 경쟁에 박차를 가했다. 2010년 까다롭기로 소문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인천국제공항 내 신라면세점에 입점케 했고, 2013년에는 서울신라호텔 1층에 영국 최고가 보석 브랜드 그라프를 유치했다. 또한 2015년에는 세계 1위 면세점업체 DFS를 꺾고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면세점의 시계 매장 운영권을 따내기도 했다. 특히 서울시내 신규면세점이 대부분 고초를 겪는 가운데 지난달에는 HDC신라면세점이 오픈 1년 만에 신규면세점 최초로 손익분기점(BEP)을 넘어 흑자를 달성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을 놓고 보면 이부진 사장 역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2~3년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들이 아직까지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때 폭등하던 호텔신라 주가도 1년 반 사이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사사분기 호텔신라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9350억 원, 영업이익은 156억 원으로 시장기대치인 203억 원을 밑돌았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면세점의 적자 축소와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의 영업이익이 개선되긴 했지만 국내 면세점과 서울·제주 호텔 사업이 여전히 부진해 주가 하향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호텔신라 측은 “신라스테이는 지난해 이사분기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HDC신라면세점도 흑자 전환됐으며, 창이국제공항 면세점의 적자폭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막내 이서현 사장은 패션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서울예술고교를 졸업한 후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패션을 전공한 이 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2009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 2013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을 거쳐 2015년 말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사장은 외부 노출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삼성물산 부문장이 된 뒤 사내방송에 출연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구호’ ‘준지’ ‘에잇세컨즈’ 브랜드로 글로벌 영업에 주력 중인데, 장기간 이어지는 패션업계 불황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패션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1조8430억 원으로 전년 대비 6% 증가한 반면, 영업손실은 450억 원으로 전년보다 적자폭이 늘었다. 올해도 국내 패션업황이 좋지 않을 전망이어서 해외 사업 성공 여부가 이서현 사장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닮은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분 총괄사장

    2015년 말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정유경(45) 사장은 지난해 4월 오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지분 맞교환으로 ‘이마트=정용진, 신세계백화점=정유경’ 구도를 확고히 했다. 이 거래로 정 총괄사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18.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신세계백화점 지분(9.83%)을 보유하게 됐다.

    업계에서 정 총괄사장은 어머니와 닮은 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뒤에서 사업을 꼼꼼히 챙기는 ‘은둔가형’ 경영인이라는 점이 그렇다. 또한 백화점 사업은 여성 소비자의 감성을 잘 파악해야 하는 분야인 만큼 정 총괄사장의 패션·뷰티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백화점 한 관계자는 “최근 8800억 원을 투자한 대구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정 총괄사장이 많은 부분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백화점 옥상에 조성한 생태 공원 ‘주라지(6600㎡)’는 정 총괄사장이 ‘엄마의 마음’으로 직접 아이디어를 냈으며, 실제로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5월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 서울 명동점이 최근 개점 9개월 만에 월 단위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신규면세점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명동점은 개점 당시부터 가수 지드래곤, 배우 전지현 등 한류스타를 모델로 기용해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올해 2월에는 버버리, 토즈 등이 입점했으며 올해 안으로 셀린느,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 브랜드를 입점케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또한 정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탈리아 코스메틱 브랜드 인터코스와 합작해 화장품 제조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로부터 인수한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화장품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비디비치 인수는 질 좋은 제품을 신세계백화점이라는 유통채널을 통해 발전시키고자 진행했으며, 이는 최근 캐시미어 브랜드 델라라나, 다이아몬드 브랜드 아디르를 론칭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업실적을 들여다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소비심리 위축, 매출 부진으로 백화점업계 전체가 힘든 상황에서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주요 백화점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백화점 신축 및 증축 등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인데, 매출을 일정 궤도까지 끌어올리려면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또한 마케팅 비용 지출에 따른 적자 누적이 발목을 잡는다.    



    자매끼리 경쟁? 대상 임세령-상민 전무

    대상그룹 오너가 3세인 임세령(40)·임상민(37) 자매는 지난해 11월 인사에서 나란히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세령 전무는 대상의 식품BU(Business Unit) 마케팅담당중역을 맡았고, 차녀인 임상민 전무는 식품BU 전략담당중역 겸 소재BU 전략담당중역으로 일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나란히 전무로 승진하긴 했지만 맡은 소임의 비중으로 봐서 동생인 임상민 전무에게 좀 더 무게가 실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상홀딩스 지분만 놓고 봐도 임상민 전무의 지분율(36.71%)이 임세령 전무의 지분율(20.41%)보다 높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대상홀딩스 지분율은 66.53%이다. 하지만 대상그룹 측은 “향후 후계구도와 무관하게 두 딸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임세령 전무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했지만 2009년 이혼하고 3년 뒤인 201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으로 대상에 합류했다. 대상의 본업인 식품부문에서 브랜드를 기획하고 마케팅과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2014년에는 청정원의 대규모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리뉴얼 작업을 진두지휘해 18년 만에 BI 변경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2009년 와이즈앤피(현 대상HS)를 통해 서울 청계천변에 동남아 음식 전문점 ‘터치오브스파이스’를 개점했지만 불법증축 논란으로 2010년 5월 문을 닫았다. 명동 2호점도 2012년 4월 폐점했다. 2010년 롯데백화점 대구점 ‘터치 오브 스파이스 데일리’, 2011년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연 ‘터치앤스파이스’도 얼마 안 돼 문을 닫았다. 2013년 임 전무가 개인적으로 오픈한 청담동 ‘메종 드 라 카테고리’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동생 임상민 전무는 결혼 후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언니와 달리 처음부터 다방면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MBA 과정을 마친 그는 2007년 창업투자사 유티씨인베스트먼트 투자상사부 차장으로 입사했으며 2009년부터 대상 PI본부, 전략기획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2015년에는 대상이 17년 만에 라이신(동물사료에 들어가는 필수아미노산) 사업에 재진출하는 데 기여를 하는 등 바이오 소재 및 전분당 사업에서 적잖은 성과를 냈다. 특히 같은 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오너가 대표로 출석해 대상베스트코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해명하기도 했다.

    결혼은 언니에 비해 다소 늦었다. 2015년 12월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 미국 뉴욕 본사에서 일하는 국유진 씨와 결혼한 임상민 전무는 그 길로 남편을 따라 뉴욕에서 1년 정도 체류했다. 현재는 다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그룹 전략을 총괄하는 전무로 승진한 만큼 본사가 아닌 뉴욕에서 홀로 전략기획 업무를 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대상 한 관계자는 “임상민 전무는 아직 30대로, 후계구도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전략 담당자로서 추진한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등으로 어느 정도 능력을 입증받은 건 맞다. 앞으로 두 자매가 각자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재벌가 여성들이 더는 ‘안주인’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에 대해 업계는 고무적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특히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조직 운영에서 윤활유로 작용한다는 평이 높다.

    하지만 딸들의 경영 참여도 결과적으로 ‘세습경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오너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고, 남성 편향적인 조직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고자 버둥대는 일반 직장 여성과 비교하면 경쟁 강도가 그리 세다고 얘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은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대기업은 안정된 ‘시스템’으로 회사가 굴러가는 만큼 경영자의 실력을 정확히 검증하기 어렵다. 과거에 비해 딸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한 점 역시 예전처럼 자녀수가 많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회가 돌아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회장은 국내 대기업도 하루빨리 합리적인 ‘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 힐턴호텔의 상속녀 패리스 힐턴은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아마 그도 경영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국내 대기업도 세습보다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회사 수장을 선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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