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1

2007.11.20

자이툰이 뿌린 씨 기업들이 수확할까

이라크 개발붐 타고 국내 기업들 진출 움직임 … 불안 요소 많아 아직은 기대반 우려반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11-14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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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툰이 뿌린 씨 기업들이 수확할까

    개발붐이 일어난 이라크 쿠르드 지역의 아파트 공사현장.

    “경제적 측면은 당초 파병 목적이 아니었지만, 지난해부터 우리 기업의 이라크 진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 철군하면 그동안 우리 국군의 수고가 보람 없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0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 공조와 중동지역 정세 안정 기여 등이 주둔 연장을 요청하는 주요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측면을 부각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애초 목적에 없던 경제적 이득이란 과연 무엇일까.

    2004년 김선일 사건의 여파로 한국 기업의 이라크 진출은 극히 제한됐다. 그러다 올해 1월부터 쿠르드 지역에 한해 기업 진출이 허용됐으며, 진출에 관심을 가진 기업들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LG전자는 아르빌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했고, 올해 1월 한국석유공사는 쿠르드 지방정부와 4개 광구의 유전개발 사업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8월 한-이라크 공동법인 ‘코리쿠르디’는 쿠르드 지방정부와 23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국방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라크 내에서의 국내 기업 수주실적은 2004년 3300만 달러에서 올해 10월 3억5300만 달러로 크게 상승했다.

    코리쿠르디는 10월28일 쿠르드 자치정부 투자청에 주택 5000가구 건설사업의 승인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 회사 전용우 전무는 “일진인터내셔널 등 6개 회사가 1차로 주택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르면 올 연말 안에 착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유아이앤씨와 유아이에너지가 쿠르드 지역에 각각 1억4900억 달러와 2억5000만 달러 공사를 계약했으며, 현대건설 그리마건설 등이 각각 공사 수주를 위해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국제협력단이 이라크 내에서 발주한 공사(2700만 달러)를 시행 중인 기정건설 등 10여 개 업체도 이라크 현지의 다른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40억원 규모의 소형 발전설비 공사를 수주했고, 이라크 정정(政情)이 안정되는 대로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올해 4월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이라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적극 참가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동식 발전설비의 생산기술과 제품의 대량 구매 의사를 밝혔기 때문.

    국내 기업이 이처럼 이라크에 진출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유는, 먼저 이라크 현지 상황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4년이 지났어도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여전히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라크에서는 개발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쿠르드 아르빌 지역은 치안이 안정되면서 올해 1월 국제무역박람회가 열렸고 건축자재 전시회(3월), 산업기술박람회(9월) 등도 개최됐다. 또 석유정제소와 발전소 등 사회기반시설 구축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르빌 도훅 지역에 진출한 외국 기업도 2004년 100개에서 올해 404개로 크게 늘었다.

    11월1일부터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걸프 이라크 박람회(GIX)’에 참가한 쿠르드 투자청 타하 젠게나 씨는 ‘걸프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쿠르드는 투자법을 제정해 투자 분위기를 만들고, 법적 장벽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쿠르드에선 외국인이 100% 소유권을 가질 수 있으며, 10년간 면세는 물론 5년간 관세도 면제해준다. 모든 나라가 쿠르드를 이라크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TIPs

    MOU


    양해각서 : Memorandum of Understanding. 국가나 기업 간 교섭 결과, 서로 양해된 내용을 확인 및 기록하기 위해 정식계약 체결에 앞서 행하는 문서 합의. 특히 기업 간 합의에 의한 양해각서는 쌍방의 의견을 미리 조율하고 확인하는 상징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위반했을 경우에는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석유 확보 경쟁 치열… 45개 해외 석유사 유전개발 MOU 체결

    한편에서는 자이툰 부대의 주둔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9월5일 잘랄 탈레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한국군의 주둔을 희망한다”고 언급했고, 쿠르드 지역신문이 7월24일 현지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84%가 자이툰 부대 주둔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쿠르디 전용우 전무는 “쿠르드 자치정부 사람들을 만나면 자이툰 부대 얘기부터 꺼낸다. 자기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한국은 친구 나라라며 비즈니스에서도 우선권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 2위 국가인 이라크에서 석유자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부산하다. 그러나 이라크 내에서 신석유법 제정이 늦춰지면서 기업들의 속이 타고 있다. 45개 해외 석유사들이 유전개발에 대한 MOU를 이라크 석유부와 체결했지만, 저항세력의 송유관 테러 등으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군 주둔 지역인 쿠르드는 이라크에서 치안이 가장 안정돼 있어 석유자원 선점 및 진출 거점을 마련하려는 많은 석유사들이 이 지역에 접근하고 있다. 쿠르드 지방정부는 2008년 상반기까지 31개 유전을 외국 석유사에 분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도 유전개발권 획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4월12일 방한한 샤리스타니 이라크 석유부 장관이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기업의 이라크 신규 광구 입찰 참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라크 유전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TIPs

    신석유법


    올해 2월26일 이라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이 초안에 합의한 법안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익금을 인구 비례에 따라 배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초안 합의 이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석유자원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권을 대폭 강화하는 부속조항을 추가해 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쿠르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독자 행보에 반발하면서 8월6일 쿠르드 지역 내의 유전에 대한 분양 및 수익 분배를 규정한 ‘쿠르드 지역 석유법’을 독자적으로 제정하고, 국제입찰을 통해 유전 분양을 추진 중이다.


    국내 기업들 “안전 문제 등으로 정부 제약 많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이라크 진출에는 많은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안전 문제 등으로 아직도 제약이 많은 것. 바그다드의 알카라마병원과 쿠르드 아르빌 시범학교 건립사업을 추진했던 삼미건설은 조만간 사무소를 철수할 계획이다. 삼미건설 관계자는 “새 사업을 하려면 외교부와 국가정보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불편이 많고, 이라크 상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사무소를 철수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10월17일 터키 의회가 이라크 북부에 은신하고 있는 쿠르드 반군(PKK)을 소탕하기 위한 무력 사용을 승인하면서 쿠르드 지역을 둘러싸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쿠르드 자치지역 내에 은신한 쿠르드 반군과 터키군의 무력 충돌은 최근 국제유가 급등의 한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박복영 박철형 연구위원은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의 정세와 전망’이라는 10월25일자 보고서에서 “쿠르드 지역 재건사업 참여와 관련해, 이 지역에 아직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잔존하는 만큼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해 (우리 기업이) 진출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미국이 쿠르드 지역을 전략적 요충지로 여기고 엄청난 자금을 투입한다고 알려진 데다, 터키 업체 수십여 곳이 쿠르드에서 활동하고 있어 터키와 쿠르드 간 무력분쟁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상황이 가변적인 이라크는 여전히 기업 활동에 불편한 나라일까, 아니면 새로운 기회의 땅일까. 이라크 진출을 꿈꾸는 기업인들은 잇속 따지기에 분주하다.

    자이툰 부대 철군의 명암

    “주둔지 안정에 큰 기여” vs“명분 없는 전쟁에 참여”


    자이툰이 뿌린 씨 기업들이 수확할까

    자이툰 부대원이 이라크인들을 치료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견 시한은 원래 올해 12월31일까지다. 그러나 정부가 1년 연장안을 내놓으면서 대선정국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재로선 파병연장안의 국회 통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이하 민주신당)과 민노당이 파병 연장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당을 합한 의석수는 150석. 여기에 한나라당 고진화·배일도 의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장수 국방장관이 11월2일 자이툰 부대 파병연장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 “한미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압박했지만, 민주신당과 민노당은 파병 연장 반대 명분으로 ‘대국민 약속 이행’과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내세웠다.

    그동안 자이툰 부대가 어떤 구실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노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언급한 한-미 공조와 중동 정세 안정에 기여했다는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북핵문제의 진전과 한반도 안정이 과연 ‘자이툰 주둔 효과’인가, 그리고 중동 이슬람회의기구에서는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데 중동 평화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미국의 최우방국인 영국도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 위해 철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이라크의 상황을 개선하고 동시에 우리 국익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그동안 주둔지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현지인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2004년 9월 파견된 뒤 의료 진료 및 기술교육 등 지역 재건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민사작전을 통해 주민의 신뢰를 얻고 있다. 자이툰 부대는 6만8000명의 현지인을 치료했고, 학교와 공공건물 등을 신축했다. 자동차와 발전기 정비, 제빵, 컴퓨터를 교육하는 기술교육대는 입소 경쟁률이 6대 1에 이르며, 10월까지 모두 1645명이 수료했다. 현지인들은 지속적인 주둔을 요청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군사안보와 에너지안보를 연계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국방연구원 심경욱 책임연구위원은 “미·중·일·러 4개국은 물론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미래 국익을 창출하기 위해 군의 임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중국 인민해방군은 레바논에 1000여 명을 파병했다. 중동을 에너지안보는 물론 자국의 경제발전이나 대외 위상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치열하게 싸우는 격전장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국방연구원 정상돈 연구위원도 “아프간 전쟁에 44개국, 레바논에 30개국, 이라크에 27개국이 파병했다. 이렇듯 많은 국가들이 연대해 분쟁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양상은 탈냉전 이후 도래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해외파병이 외교안보정책의 주요 수단이 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미동맹도 도덕적 잣대로만 볼 게 아니라, 거기에 내재된 빛과 그림자 양면을 동시에 받아들이면서 능동적인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해야 국익이 실현될 수 있다. 굳이 지금 철군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안은 11월13~15일 열리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상정되고, 이를 통과할 경우 22~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가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시행 중인 공사현황 (단위 : 1만 달러)
    업체 프로젝트 발주처 계약액
    유아이앤씨 400병상 병원 건설(술레마니아) 쿠르드 지방정부 건설 5736
    도훅 300병상 병원 공사 도훅 주정부 8900
    유아이에너지 술레마니아 306MW 발전소 쿠르드 지방정부 2억5900
    명승건축 한-이라크 직업훈련원(바그다드)

    건립사업(설계+CM)
    KOICA 20
    아르빌 리즈가리병원 응급센터

    건립(설계, 감리)
    34
    삼미건설 알카라마병원 증축 및 개선 KOICA 795
    아르빌 시범학교 건립 768
    유일엔 알카라마병원 증축 및 개선 KOICA 23
    엄앤이 아르빌 시범학교 건립 사업(CM) KOICA 24
    기정건설 한-이라크 직업훈련원 건축 KOICA 443
    아르빌 리즈가리병원 응급센터 355
    현종설계 아르빌 IT훈련센터(설계, 감리) KOICA 18
    한미파슨스 기획개발협력부 청사 개보수(CM) KOICA
    지앤케이+그리마 아르빌 IT훈련센터 건립 KOICA 89
    수자원공사+동신기술 아르빌 수력발전소 건립(설계, 감리) KOICA 122


    ▼ 수주 활동 중인 공사현황
    업체 프로젝트 발주처 계약액
    그리마건설 아르빌 노인복지센터 건립 미 육군 공병단 500
    현대건설 바스라 400kW 변전소 공사 전력부 1억
    코리쿠르디 아르빌 등 주택 5000가구 쿠르드 지방정부 건설 사업승인
    * 자료제공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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