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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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꿇어! 안대희 파워

‘외인부대’ 중수부 수사팀 구성 결전 태세 … 정치권 부패 청산 국민들 시선 집중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10-29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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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금 꿇어! 안대희 파워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출근할 때면 그에게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든다.

    ”과장은 없다.”

    최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안대희 검사장, 이하 대검 중수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얘기다. 대검 중수부에는 부장검사로 보임하는 과장이 4명 있다. 중수1, 2, 3과장 및 컴퓨터수사과장이 바로 그들이다. 컴퓨터수사과장이야 사이버 범죄를 관할하기 때문에 여론으로부터 주목을 덜 받지만 중수1, 2, 3과장 자리는 사법시험 동기생들 중 선두 그룹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언론의 1면을 장식하는 대형 사건을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장이 없다’니, 무슨 얘기인가.

    검찰총장 하명으로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사하는 대형 사건의 경우 중수부 과장이 주임검사를 맡는다. 그리고 과장 밑에 대검 중수부 소속 연구관 검사들을 한두 명 붙여 수사팀을 구성한다. 물론 연구관 검사들은 검찰조직법상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서울지검 검사로 임시 발령을 내 수사팀에 합류시킨다. 중수부 연구관 검사 역시 전국의 특수통 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일일이 수사 상황을 챙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새가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소심하다는 뜻보다는 세세하게 챙긴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최근 SK 비자금 수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안부장은 남기춘 중수1과장을 제치고 외부에서 파견온 검사들을 직접 지휘해 SK 비자금 수사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장이 없다’는 얘기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SK 비자금 수사팀은 안부장 지휘 하에 ‘형식상’ 남기춘 중수1과장이 주임검사를 맡고 있다. 안부장은 잘 알려진 대로 특수통 검사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한국의 피에트로’. 피에트로는 1990년대 초 이탈리아판 ‘부패와의 전쟁’인 이른바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를 이끈 인물. 피에트로는 당시 3000여명의 고위 공무원, 의원, 기업인들을 조사해 1000여명에 대한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안부장이 최근 대검 출입기자들로부터 얻은 또 하나의 애칭은 ‘시민 안대희’. 10월16일 안부장이 비(非)보도를 전제로 “일반 시민 입장에서 볼 때 정치인이라고 부정축재해도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선거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해외에 빌딩을 사고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정치권을 질타했는데, 다음날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안부장을 본 기자들이 이런 애칭을 선사한 것.

    안부장은 과거 어떤 중수부장보다 독특한 위치에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 중립화 의지에 따라 청와대에 직보하지 않고 있다. 또 그는 대검 중수부장 이상의 목표가 없어서인지 권력 핵심이나 정치권을 의식하지 않고 수사할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서울 서대문구 소재 31평짜리 아파트에서 14년간 살았다는 점은 그가 검사로서 추구하는 이상이 얼마나 고고한지를 드러낸다.

    안부장과 남과장의 공통점은 권력의 쓴맛을 경험했다는 점. 안부장은 김영삼(YS) 정권 시절 특수부 검사의 엘리트 코스인 서울지검 특수1, 2, 3부장을 역임했지만 김대중(DJ) 정권 들어서는 검사장 승진도 동기생보다 2년 늦게 하는 등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남과장 역시 YS 정권 말기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파견 근무를 하는 등 잘나갔으나 DJ 정권 시절에는 고등검찰청(고검)을 전전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DJ 정권 시절 안부장의 ‘불운’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안부장을 김태정 신승남 전 검찰총장 등 당시 검찰 실세들이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가 1996년 서울지검 특수3부장이던 당시 DJ가 이사장으로 있던 아태평화재단을 향해 칼을 겨냥한 것이 괘씸죄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남과장은 YS 정권 말기 DJ 비자금을 추적한 것으로 밝혀진 배재욱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 밑에서 근무한 것이 문제가 됐다. 여기에다 99년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 사건 때 심고검장을 대구에서부터 수행하는 등 심고검장과 뜻을 같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불운을 자초한 이유가 됐다. 그는 90년대 초 서울지검 근무시 심재륜 강력부장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SK 비자금 수사팀은 조재연 정준길 윤석열 박찬호 검사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가운데 SK해운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8월 초부터 이 사건 수사에 매달렸던 조검사만 대검 중수부 소속 연구관 검사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인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조검사도 처음에는 서울지검 검사 신분이었으나 8월 말 정기인사에서 대검 연구관으로 발령받았다.

    SK 비자금 수사팀의 특징은 시간이 갈수록 수사팀이 보강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 사건에 매달렸던 조재연 검사를 시작으로 8월 말에는 정준길 검사가, 9월 말에는 윤석열 검사가 각각 보강됐고, 최근에는 박찬호 검사가 수사팀에 차출됐다. 안부장이 SK 비자금 사건 수사를 확대하면서 정치권과 일대 결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SK 비자금 수사팀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조재연 윤석열 검사. 부산기계공고와 부산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93년 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재연 검사는 96년 임관 이후 주로 강력부 마약담당 검사로 일했다. 조검사는 2000년 10월 부산지검 강력부 검사로 재직하던 당시 상습적으로 히로뽕을 투약하고 운전을 해온 택시기사와 유치원버스 기사 등을 적발해 9명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윤석열 검사는 서울대 법대 동기생들보다 7, 8년 늦은 91년 33회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등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2월 검찰을 떠나 올 2월 복직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이명재 전 검찰총장의 신임이 두터워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있는 이 전 총장의 권유로 태평양에 합류했다. 그는 1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다 “역시 내 체질에는 검사가 더 맞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에 복귀했다.

    안부장이 ‘외인부대’ 중심으로 SK 비자금 수사팀을 구성한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한편에서는 “대검 중수부장 정도 되면 구체적인 수사는 과장들한테 믿고 맡기고, 자신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외인부대’를 중용하다 보니 기존 중수부 조직이 흔들린다”고 비판한다. 서울지검 특수부 쪽에서는 “대검 중수부장이 일선 검찰청 특수부장처럼 일하다 보니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요 사건은 모두 대검 중수부가 독식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안부장이 ‘외인부대’ 중심으로 SK 수사팀을 구성한 것은 철저한 보안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안부장은 처음 기자들이 SK 수사팀에 대해 묻자 “일본에서는 검사 배치표도 대외비에 속한다. 수사팀을 어떻게 구성하는지가 왜 궁금한가”라고 답했다가 나중에야 확인해줄 정도로 보안에 특히 신경을 쓴다. 물론 정치권을 상대로 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수사상황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안부장은 이런 보안의식 때문인지 출입기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조회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언론에 수사상황이 새나가자 검찰 내부의 제보자를 찾기 위해 그 기사를 쓴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실이 언론의 추적으로 드러난 것. 대검은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검찰권 남용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안부장은 10월23일 기자들에게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있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인 만큼 우리도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려고 하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정치권과 검찰 간 ‘게임’을 벌이면서 검찰이 믿을 곳은 국민밖에 없는 만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다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이다. 안부장은 그러면서도 기자들에게 “예민한 수사를 하고 있으니 제발 추측성 기사는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검찰의 이런 입장은 대검이 검찰 수사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대검은 9월부터 모니터링 요원을 모집, 실시간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검 수뇌부에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에는 정치인 관련 피의 사실의 공개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 “적절하게 공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굳이 여론조사가 아니더라도 검찰이 지금처럼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한 국민은 영원히 검찰 편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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