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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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두들 불륜을 꿈꾸는가

  • 조용준기자

    입력2004-11-11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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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모두들 불륜을 꿈꾸는가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근호는 30대 전후 여성 700명을 대상으로 한 섹스 행태 설문조사를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복수의 섹스 파트너를 갖는 일에 대해 그 자신이 ‘가능하다’ 48%, ‘가능하지 않다’가 52%. 여성이 복수의 섹스 파트너를 갖는 일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50%,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가 45%였다. 반면 남성의 경우는 ‘괜찮다’ 48%, ‘좋지 않다’ 46%. 특정한 한 사람과의 성관계가 아닌 복수 관계에 대해 대체적으로 두 명 중 한 명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그렇다면 실제는 어떨까. 정해진 파트너 이외에 성적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2%는 ‘있다’, 67%는 ‘없다’는 응답이었다. 10명 중 절반은 남편이나 애인이 아닌 타인과의 성관계를 꿈꾸며, 그중 3명은 실제로 경험이 있다는 결론이다. 일본이니까 그럴 거라고?

    신세대 주부를 독자층으로 하는 우리나라 모 여성지 2월호도 비슷한 특집을 내놓았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꿈꾼다’(70%), ‘다른 사랑을 만난 적이 있다’(20%)…. 특집의 제목은 ‘결혼 후 찾아온 사랑’. 시대가 불륜적인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불륜의 시대’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남성문제 전문기관인 ‘한국 남성의 전화’가 지난해 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가정불화 상담기록 중 ‘인터넷 채팅을 벌이다 아내가 불륜에 빠졌다’는 경우가 44.2%, ‘이로 인해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경우가 22.6%에 이른다. 케이블TV 영화채널 HBO가 지난해 말 서울시내 3개 대학의 여대생 5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의식 조사결과는 ‘혼전 성관계’에 대해 응답자의 49%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례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느 쪽인가. 놀랄 만한 일이다.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데 웬 호들갑이냐.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신예작가 권지예(41·동해대 국문과 교수)는 1월에 첫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창작과비평사 펴냄)를 내놓으며 관심을 끌었다. 소설의 주제와 소재는 모두 ‘불륜’이다.

    이 소설집에는 유부남 애인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자신만 살아남아 괴로워하거나(‘고요한 나날’), 파리의 유학생 남편과 떨어져 서울에 살면서 다른 남자와의 관계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꿈꾸는 마리오네뜨’), 남편은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지만 두 번째 아이를 지운 후 오히려 남편을 원망하는(‘정육점 여자’) 여인들이 등장한다. ‘가슴속의 화톳불’이 불러일으키는 탈일상의 충동은 소설 속의 여성들을 쉽게 안주하지 못하게 하며, ‘불꽃처럼 타올라 온몸을 불살라 재로 소진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의 섹스만이 일상의 권태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는 순간적 마약이지만, 이도 늘 불임(不妊)으로 황폐하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았던 주제다. 이영애와 이경영이 출연한 TV 드라마 ‘불꽃’이었던가?)

    어디 드라마와 소설뿐이랴. 강남 일원의 유명 나이트클럽에 가면 어느 때고 ‘탈일상의 엑스터시’를 꿈꾸는 중년 여성들이 넘쳐난다. (기자는 이런 트렌드에 대한 가치 판단은 유보하고자 한다. 그러니 페미니즘 진영에서 ‘남근 숭배주의’의 편파적 기술이라고 비난할 이유도 없다)

    다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왜 모두들 ‘벗어나지 못해,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냐는 점이다. 왜 모두들 불륜을 꿈꾸냐는 점이다. 소설에서처럼 부부가 ‘단지 아내와 남편이라는 한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뜨(꼭두각시 인형)의 관계’고,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호출되는 모든 관계가 위선과 기만을 도구 삼아야 유지될 수 있는 것 때문이라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항해야 옳은 것 아닐까?

    2000년 서울 기준으로 부부 3쌍 중 1쌍은 이혼을 한다. 최근 ‘한국사회의 이혼실태 및 원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여성과 변화를 거부하는 남성의 문화지체 현상이야말로 이혼율 급증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여성들은 변하고 있어요.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없어요. 여성들은 이미 거침없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거든요.”

    당신도 혹 불륜을 꿈꾸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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