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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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당경쟁… 세금… 중간商만 웃는다

정유社, 가격결정 눈치보기… 정부 ‘고유가 정책’ 틈새에 무자료거래 판쳐

  • 입력2006-02-03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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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원유값이 다시 춤추고 있다. 연초 배럴당 24달러에서 최근 30달러를 돌파, 무려 25%나 급등하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2월16일 세계 최대 수요국인 미국의 ‘긴급 대응’으로 잠시 주춤거리고 있지만 당분간 강세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국제 유가가 요동치자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아우성이다. 중동 산유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고나 할까. 한국 경제도 경제지만 오너 드라이버들로서는 휘발유값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휘발유값을 비롯한 기름값은 97년 1월부터 완전 자율화됐다. 과거에는 정부가 기름값을 결정해 고시했지만 이제는 정유사가 독자적으로 가격변동 요인을 산정한 뒤 그때그때 기름값을 올리고 내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98년 2월부터는 정유사가 가격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산업자원부에 변동 내용을 미리 통보하도록 한 사전신고제마저도 폐지됐다.

    산유국 기침하면 한국선 감기

    현재 정유회사들은 매월 말, 전월 26일부터 당월 25일까지 도입한 원유를 대상으로 원유가 및 환율 변동 등 국내 유가 변동 요인을 산정해 이를 다음달 초부터 국내 유가에 반영한다. 가령 올초부터 급등한 국제 원유가의 경우, 1월26일~2월25일까지의 원유 도입분에 대한 가격 인상분을 3월초 국내 유가에 반영하는 식이다.



    물론 기름값이 완전 자율화됐다고는 하나 정유사들이 유가 인상분을 그대로 국내 유가에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유가는 물가에 대한 영향이 크기 때문에 물가안정을 원하는 정부 당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유회사들이 작년 12월2일 0시를 기해 1ℓ당 기름값을 12, 13원씩 일제히 인하한 것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당시 정유회사 관계자들은 “국내 유가는 국제 원유가 상승으로 ℓ당 5~10원 정도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 인상 요인이 발생했을 때 이를 국내 유가에 반영하지 않은 사례는 있었지만 오히려 가격을 내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기름값은 내렸다. 연말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였다.

    현재 국내 휘발유 소비자 가격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편. 최근 자료는 없지만 한국석유공사가 작년 4월 국제에너지기구의 국가별 유가 조사 자료를 입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작년 2월 기준 휘발유값이 1ℓ당 96센트로, 영국(1달러14센트)과 이탈리아(1달러7센트), 프랑스(1달러5센트)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우리 나라가 이들 선진국에 비해 국민소득이 훨씬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나라 휘발유값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정부가 ‘소비자들을 볼모로’ 고유가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 정부가 국제 원유값과 환율 인하로 국내 유가 인하 요인이 발생했을 때에도 세금 인상을 통해 소비자들의 혜택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98년의 경우 휘발유값 인하 요인을 세 차례의 교통세 인상으로 흡수해 버림으로써 소비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반면 국제 원유가가 인상될 때는 국내 유가도 덩달아 들먹거려 소비자들로서는 이래저래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2월18일 현재 국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1ℓ당 평균 1240.75원. 정유회사들이 올 1월5일 0시를 기해 일제히 1ℓ당 14~16원씩 내린 이후 계속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유사별로는 SK㈜와 LG칼텍스정유 1243원, 현대정유 1239원, 쌍용정유 1238원 등이다.

    그러나 이는 정유사들이 발표한 일종의 ‘권장’ 소비자가격일 뿐 실제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대한석유협회 자료에 따르면 2월8일 현재 전국 주유소들을 대상으로 표본조사한 실제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1ℓ당 평균 1215원34전. 정유사 발표 평균 소비자가격보다 25원41전이 싸다.

    휘발유 소비자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정유업체가 과잉 공급으로 인해 출혈 경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 또 93년 11월 6대 도시를 시작으로 주유소 거리 제한이 단계적으로 풀리면서 주유소 수가 급증해 주유소들도 제살 깎아먹기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93년말 6212개이던 전국 주유소 수는 현재 1만1000여개로 늘었다.

    현재 5대 정유사의 시장 점유율은 SK㈜ LG칼텍스 쌍용 현대 인천정유 순. 그러나 3위 업체인 쌍용은 그동안 가격전쟁을 선도, 휘발유 소비자가격이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쌍용은 94년 가격전쟁을 주도해 정유시장을 뒤흔든 데 이어 97년 2월부터 1년간 ‘1원 전쟁’을 주도했다. 또 작년 8월 휘발유 가격 조정에서도 적정 인상폭 28원보다 훨씬 적은 8원만 인상, 선두업체인 SK㈜와 LG칼텍스정유에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쌍용정유 관계자들은 “경영혁신이나 공정개선을 통해 그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로부터 값싸고 질좋은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말할 것도 없이 원유는 정유회사 원가 구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원유 도입 단가가 낮으면 그만큼 가격경쟁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쌍용의 이런 주장에 대해 다른 업체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LG칼텍스정유 관계자는 “쌍용은 중동정세 불안으로 원유 수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대주주인 아람코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현재와 같은 평시에는 오히려 싼 도입선이 있어도 이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정유사에 비해 불리하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작년 정유회사들의 평균 원유 도입단가는 배럴당 평균 16달러32센트. SK㈜가 가장 낮은 배럴당 15달러72센트에 도입했고, 쌍용은 SK㈜ 현대(15달러79센트) LG칼텍스(16달러17센트)에 이어 16달러50센트를 기록했다. 쌍용이 원유 도입에서 다른 회사에 비해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는 입장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정유업계에서는 쌍용과 아람코 사이에 ‘이면계약’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쌍용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국제 원유가보다 더 큰 영향을 기름값에 미치는 게 각종 세금. 2월8일 현재 5개 정유사의 휘발유 1ℓ당 세전(稅前) 공장도가격은 293원65전. 그러나 실제 소비자가격은 1215원34전이어서 소비자가격이 원가의 4배 이상 부풀려진 이상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소비자가격의 70.36%인 855원14전이 각종 세금으로 부과되고 있기 때문.

    각종 세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목은 교통세로 현재 630원이다. 여기에 교통세의 15%인 94원50전이 교육세로 부과된다. 또 교통세의 3.2%인 20원16전이 주행세로 붙고, 정유회사→대리점→주유소를 거치면서 부가가치세가 각각 103원83전, 1원33전, 5원32전씩 붙는다. 대리점과 주유소의 마진은 각각 평균 13원34전과 53원20전이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교통세 기본세율은 1ℓ당 691원. 그러나 정부는 작년 5월 여기에 탄력세율을 적용, 630원으로 인하했다. 그해 2월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조치로 국제 원유가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세금을 인하하지 않는 한 국제 원유가 인상이 휘발유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그대로 전가돼 물가 불안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이 2월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교통세 인하 방침을 밝힌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올 1월말과 2월 원유 도입분이 배럴당 1달러40센트 인상돼 그만큼 국내 유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세금을 내림으로써 소비자가격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기본세율ℓ당 691원에 최대 탄력세율 적용 폭인 30%를 적용하면 추가로 최대 146원을 더 내릴 수 있다.

    정부는 소비자들이나 자동차 메이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고유가 정책을 유지한다는 방침. 자동차 이용을 억제, 대기오염이나 교통혼잡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고, 교통세 등으로 거둬들인 세수를 활용해 선진 외국에 크게 뒤떨어진 교통 관련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 또한 기름 소비를 억제함으로써 무역수지 개선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무거운 세금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국내의 공급 과잉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런 무거운 세금을 비웃는 중간상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유류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정유사간 판매전쟁이 불붙자 이를 틈타 무자료거래를 조장하고 있다.

    작년 3월 국세청 조사에서도 덤핑으로 정유사 또는 대리점으로부터 확보한 물량을 무자료로 주유소 등에 매출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석유판매상 등이 대거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국세청 관계자는 특히 이런 변칙거래를 일삼는 판매상들에게 가장 많은 덤핑 물량을 넘기는 정유사로 쌍용과 현대를 지목했다. 그러나 두 회사는 이를 부인했다.

    쌍용정유 관계자는 오히려 “선두 업체인 SK㈜와 LG칼텍스도 덤핑판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반격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설사 사장이 덤핑하지 말라고 지시해도 영업쪽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사장 몰래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작년에 자율빅딜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진 현대에너지의 한화에너지 인수 이후에도 공급 과잉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마디로 실패”라고 덧붙였다.

    결국 정유회사는 과당경쟁으로 죽을 맛이고, 소비자들은 무거운 세금 때문에 허리가 휘는 가운데 독버섯처럼 자란 중간상들만이 배를 불리고 있는 셈이다.

    정유사들도 덤핑 수출?

    과잉공급 해소 위해 싸게 수출… 내수가로 손해보전 의혹


    정유회사들의 석유류 제품에 대한 덤핑 수출 논란이 일고 있다. 내수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유류를 덤핑 수출하고 이로 인한 손해를 국내 판매에서 보전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석유류 덤핑 수출 주장은 작년 10월5일 정기국회 산자위의 한국석유공사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명규의원이 처음 제기했다. 김의원은 당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석유제품별 국내-수출가격 비교’ 자료를 근거로 97, 98년 2년간 내수와 수출원가가 휘발유는 배럴당 12달러23센트, 등유는 15달러72센트, 경유는 18달러12센트, 중유는 13달러77센트의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이런 차이는 국내 정유사들이 과잉 설비로 인한 공급 초과물량을 덤핑 수출하고, 이에 대한 손해를 국내 판매원가에 전가한 결과라는 게 김의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한석유협회는 관세 부과금 등의 정부 부과금과 수송저유비, 비축비용 등 정유사들의 공급비용이 내수가에 포함돼 있어 수출가에 비해 높을 뿐 덤핑 수출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싱가포르 현물시장에 수출하는 제품이 국내 제품에 비해 품질이 낮은 것도 수출가가 낮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한 관계자는 “정유산업은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국내에 공급하고 남는 물량은 어차피 처분해야 하는데 싱가포르 현물시장에 수출하면 고정비라도 건질 수 있기 때문에 국내가보다 낮게 내다팔고 있다”며 덤핑 수출을 인정했다. 다만 이에 따른 손해를 내수가격에 전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결국 과잉공급을 해소할 수 있는 정유산업 구조조정이 없는 한 이런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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