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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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는 死道? 국도엔 인도가 없다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 없는 죽음의 길 1706개소… 보행자 교통사고 작년에만 1만 7천여건 달해

  • 입력2007-04-05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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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3사관학교 생도훈육관 권태유대위(28)는 동아대 무용과 출신의 동갑내기 이윤경씨와 3년전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경북 영천시 육군3사관학교내 군인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아들 준오군(3), 딸 민진양(15개월)을 두고 있었다. 이씨는 영천시내 무용학원의 강사로 일해왔다.

    10월11일 오후 4시40분 학원일을 마친 이윤경씨는 아들 준오군을 안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파트단지로 가기 위해선 왕복 4차로인 영천-포항간 국도를 건너야 했다.

    이들은 아파트 맞은편 횡단보도 가장자리에 섰다. 포항방면 2차로로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 차는 이들 근처에 가까이 와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한 번 비틀거렸다.

    지방도 시도 군도도 마찬가지



    권대위가 병원에 달려왔을 땐 두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사인은 모두 ‘두개골 골절’. 영천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관계자는 “운전자 최모씨(53)가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도로 가장자리로 잠깐 차가 쏠리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이 도로변엔 따로 길이 없어 사람은 차로와 가로수 사이로 걸어가야 한다. 차들이 보행자 곁을 ‘스치듯’ 질주한다. 횡단보도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차로에서 물러서 있을 만한 공간이 없다. 차량이 다가와도 피할 데가 없는 셈이다. 이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곳에 있었더라도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경찰의 결론이었다.

    사고후 권대위는 딸 민진양을 부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부대내 독신장교숙소에서 묵고 있다. 하루도 술을 거른 적이 없다.

    그 국도에 인도만 있었다면…. 한국의 국도는 이 가정을 위해 ‘한 평’의 땅조차 내놓지 않았다. 국도변에 인도가 없다.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도 없다. 가드레일 같은 안전시설도 없다. 그래서 지금 시골길을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죽어가고 있다.

    7번국도는 동해를 옆에 끼고 시원하게 뻗어 있다. ‘자동차 드라이브코스’론 그만이지만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은 못된다. 10월30일 오후 경북 영덕군 연평리 앞 7번국도변. 중학교 3학년생 박준희군(15)과 윤초롱양(15)은 자동차들을 마주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 승용차가 쏜살같이 근접해 오더니 결국 이들을 치어 버렸다. 윤양은 목숨을 건졌으나 길 안쪽에 있던 박군은 숨졌다.

    시골사람들은 국도변에서 나란히 걸어가는 것은 ‘무모한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일렬종대’가 아니면 안전은 책임 못진다. 최근 경기 시흥시 신천동 수인산업도로와 지방도가 만나는 길에서 이기환씨(37)는 같은 경우로 목숨을 잃었다. 이 길은 차도보다 10cm 정도 높게 인도가 설치돼 있었고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석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인도의 폭이라는 것이 1.1m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경우 어깨가 서로 부딪치고 몸의 중심을 잡기도 힘들다.

    일행 한 사람과 얼굴을 보며 얘기하기 위해 이씨는 경계석을 넘어 차도 쪽으로 조금 나와 걸었다. 그러다가 이씨는 화를 당했다.

    인적이 드문 만큼 국도에서는 뺑소니사고도 많다. 병원이 멀리 있게 마련이어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겐 이중삼중 불리하다. 이기환씨의 경우도 그랬다. 이씨를 친 운전자는 그대로 달아났다. 단서는 사고현장에 떨어진 아반떼승용차 앞 범퍼. 광명경찰서 김권삼경장은 이 길을 자주 왕래하는 것으로 파악된 아반떼 차량 880여대를 일일이 조사해 5개월만에 운전자를 찾아냈다. 올 들어 광명 한곳에서만 111건의 뺑소니사고가 접수됐다.

    국도변에서 얼마나 많은 보행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는지에 대한 조사결과가 이제까지 알려진 경우는 거의 없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은 최근 국도변 보행자사고를 조사했다. 통계가 늦게 잡히는 특성상 조사대상시점은 지난 98년이었다.

    98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 일반국도에서 차량과 보행자 사이에 1만7837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고로 1766명이 사망했고 1만7374명이 부상당했다. 길 가장자리에 그냥 서 있던 경우(21명), 횡단보도나 그 부근을 횡단하던 경우(178명), 무단횡단하던 경우(704명), 길가에서 작업을 하던 경우(9명), 길가에서 놀이를 하던 경우(23명) 등 ‘때’와 ‘유형’을 가리지 않고 국도변에서 보행자들이 죽어나갔다.

    도시외곽도로거나 시골길이라는 점에서 국도와 성격이 비슷한 지방도-시도(특별-광역시도는 제외)-군도도 마찬가지. 지방도에선 7166건의 보행자 교통사고가 나서 601명이 숨졌고 7069명이 다쳤다. 국도 등 이들 4개 도로의 보행자 교통사고는 5만3184건. 사망자는 3047명에 이른다.

    국도변 보행자사고는 올 들어서 더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9월말까지 경기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3만6100여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만700여건보다 17.6% 증가했다. 경기도의 교통사고 중 국도와 지방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87%에 이른다고 한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지난 95년 현지실사작업을 벌인 결과 전국 국도구간 1706개소가 ‘사고 잦은 곳’으로 분류됐다.

    국도에서 보행자의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교통전문가들은 대개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애초 국도건설 때부터 보행자안전은 뒷전이었다는 점, 사고발생 이후 후속조치도 미흡하다는 점, 운전자의 의식부족 등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국내엔 49개 노선에 총 연장 1만2447km의 국도가 건설돼 있다. 그러나 국도 내에 인도가 어느 정도 깔려 있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통계가 없다. 국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왕복 2차로국도(연장 8849km)에는 거의 인도가 없다. 왕복 4차로 이상 국도 역시 인도가 없는 곳이 많고 인도가 조성돼 있더라도 폭이 좁거나 한쪽만 설치돼 있는 것으로 건교부는 추정하고 있다.

    녹색교통운동의 박은호정책기획실장은 “국도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건교부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일반국도건설의 경우 1년간의 국도건설 총액을 미리 잡아 놓은 뒤 이 예산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사가 진행된다. 올해의 건설총액은 1조8000억원 정도. 건교부 관계자는 “건설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지보상비용을 줄이면 똑같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곳에 도로를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인도를 설치한다’는 ‘도로구조시설기준에 관한 규칙’은 이러한 속사정과 맞물려 인도건설을 억제하는 법적 근거가 된다. 건교부와 6개 지방국도관리청엔 국도주변 보행권-생활권 보장 민원이 1000여건 이상 접수돼 있다고 한다.

    민원인들이 사람 왕래가 거의 없는 곳에까지 인도건설을 의무화하라는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다. 박은호실장은 “꼭 인도나 안전시설물이 있어야 할 곳까지 경제논리 때문에 어물쩍 건너뛰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말했다.

    충남 연기군에선 요즘 국도 1호선 공사가 한창이다. 왕복 4차로의 이 도로는 연기군 번암, 중림, 침산, 서창, 신안, 신흥, 침산리 마을의 한가운데를 둘로 양분하면서 지나가도록 설계됐다. 집이 뜯겨나가고 많은 골목길이 잘려나갔다.

    교통전문가들은 “우리나라처럼 농촌 주택가를 이렇게 큰 위험에 빠뜨리며 국도를 내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치원경찰서 김용구교통지도계장은 “생활근거지가 양분돼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게 됐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도로횡단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이 국도를 횡단하다가 앞으로 이들 부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할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김계장의 의견이다. 이런 식으로 국도를 만들어선 교통사고가 줄어들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신흥3리는 국도1호선이 마을을 관통하면서 골목길 네 곳이 끊겼다. 그러나 신설되는 횡단보도는 두 군데. 나머지 두 골목길로 다니던 주민들은 멀리 있는 횡단보도까지 돌아서 가거나 아니면 무단횡단해야 한다. 교통전문가들은 “국도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단횡단사고는 궁극적으론 주민의 ‘생활동선’과는 맞지 않게 횡단보도를 그어 놓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신흥3리-침산리 구간 400m 주변엔 주택가들이 늘어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국도변을 따라 걸어다닌다. 그러나 이곳에 보-차도 분리 설치계획은 없다. 주민들은 인도를 깔아달라고 민원을 제기해 둔 상태다. 신흥3리 조용희이장은 “시골주민들이 동네나 논밭을 안전하게 다닐 권리까지 빼앗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의 노관석수석연구원은 한국 국도변과 미국 국도변의 안전시설 설치현황을 비교한 논문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국도32호선 충남 유성 동학사입구 삼거리-충남 공주 강북사거리간의 경우 전 구간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어 도로변 사고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안전시설이 미비한 국도 17호선 전북 전주-남원 구간에선 지난 95년부터 97년까지 3년 동안 2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전체 인적-물적 피해의 21.8%를 차지했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비교대상 미국 5개주 도로의 사망자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노연구원은 “국도사고는 사람이 많이 사는 부락을 지나는 지점에서 대부분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 중점적으로 안전시설을 늘리면 대부분의 대형 보행자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는 게 노연구원의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 마을통과구간은 아예 병목구간이나 X자형 도로로 만들어 버려 원천적으로 속도를 못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속도감속간판 하나 설치하는 게 고작입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가 버튼을 누를 때만 파란색으로 바뀌는 신호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국도변은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연이어 터져도 그대로 방치된다. 경기 양주군 주내면 남당리 주내검문소 앞 삼거리. 지난해에만 이곳을 지나는 보행자 5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고다발 지역이다. 이 길은 인명사고가 잘 나는 이유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경기지부관계자는 “교차로 부근에 차량진행방향을 정확히 알리는 안내표시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횡단보도가 교차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차로를 지나 가속도가 붙은 차량들이 사람을 발견해도 쉽게 멈추기가 어렵게 돼있다. 이 관계자는 “수년전부터 관계기관에 보완요청을 했지만 아직까지 무응답”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의 경우 수인산업도로 주변 신천, 매화, 안현동과 명진마을 등은 상습적으로 국도변에서 보행자사고가 발생한다. 이런 곳은 전국에 널려 있다.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도는 안전조치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 의왕시와 수원시는 지난 9월 “지방도로 관리에 부담이 크니 국고에서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광명경찰서 류영국교통지도계장은 ‘사람은 당연히 차에 양보해야 한다’는 운전자의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골사람들, 차 무서워할 줄 모른단 말이야. 에이.” 이런 말을 던지며 시골길을 달리는 운전자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이 류계장의 얘기다. 교통개발연구원 설재훈박사는 “결론은 ‘의식전환’이다. 시골길에도 보행권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정부나 운전자가 인정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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