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7

..

美·中 동시에 ‘러브콜’… 베트남, 유연한 ‘대나무 외교’ 노선 유지할까

美 항공모함 베트남 다낭 기항… 지도부 친중파 등극 변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7-09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베트남의 3번째 항구 도시이자 관광·휴양지인 다낭은 1965년 3월 8일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을 위해 해병 2개 대대를 상륙시킨 곳이다. 미국은 다낭 상륙을 시작으로 병력 54만 8000여 명을 베트남 전쟁에 투입했다. 당시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중심으로 남베트남(월남)과 북베트남(월맹)으로 나뉜 상태였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공군기지, 미 해병 제3상륙군 사령부, 남베트남 제1군단 사령부 등이 다낭에 설치됐다. 미군 무기 및 물자도 다낭 항구와 공항을 통해 대거 들어왔다. 다낭이 베트남 전쟁의 전략 요충지로 불린 이유다.

    미 해군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오른쪽)이 6월 24일 베트남 다낭에 기항하고 있다. [US Navy]

    미 해군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오른쪽)이 6월 24일 베트남 다낭에 기항하고 있다. [US Navy]

    베트남, 미국과 군사협력 강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을 비롯한 함정 3척이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다낭에 기항했다. 미국 항공모함이 베트남을 방문한 것은 베트남 전쟁 종전 이래 세 번째다. 2018년 칼빈슨함, 202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이 베트남을 방문한 바 있다. 로널드 레이건함의 기항은 미국과 베트남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항공모함들이 지금까지 베트남에 기항한 곳은 모두 다낭이다. 다낭이 남중국해에 접한 전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남중국해의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함의 다낭 기항은 미국이 베트남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다. 로널드 레이건함은 전투기, 조기경보기, 전자전기, 헬기 등 함재기 90여 대를 싣고 다니는 미 해군 태평양 함대의 대표적인 전략 자산이다. 주베트남 미국대사관은 “로널드 레이건함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베트남을 방문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종전 20년 만인 1995년 8월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양국은 2013년 7월 정상회담에서 경제와 외교 분야 전반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 협정도 체결했다. 이후로도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베트남과 관계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베트남의 지난해 대미(對美) 수출 규모는 1230억 달러(약 160조 원)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시장이고, 베트남은 미국의 8번째 무역 파트너이자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최대 무역 파트너다. 미국은 지금까지 베트남 직접투자 금액 114억 달러(약 14조 8300억 원)로 11번째 투자국이고, 미국에 유학 중인 베트남 학생은 3만 명에 달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4월 15일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악수하고 있다. [VNA]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4월 15일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악수하고 있다. [VNA]

    양국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처에도 군사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확대 등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해서다. 미국 항공모함이 세 차례나 다낭에 기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확보할 경우 ‘항행의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과 관계를 격상하기 위해 구애 작전을 벌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4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방문해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등 베트남 지도부를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베트남은 과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에 패배했지만 관련 지역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베트남은 1974년 1월 19일부터 이틀간 벌어진 남중국해 해전에서 패해 실효지배하던 파라셀 제도의 3개 섬을 중국에 빼앗겼다. 이후 중국은 파라셀 제도 전체를 차지했다. 베트남은 1988년 3월 14일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에서 중국과 해전을 벌였지만 역시 패배했다.

    ‘제2 페르시아만’은 누구에게로?

    2014년 5월 11일 베트남 국민들이 수도 하노이에서 “남중국해는 자국 바다”라며 반중국 시위를 벌이고 있다. [wikipedia]

    2014년 5월 11일 베트남 국민들이 수도 하노이에서 “남중국해는 자국 바다”라며 반중국 시위를 벌이고 있다. [wikipedia]

    베트남은 남중국해 해저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중국해는 ‘제2 페르시아만’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석유 2130억 배럴, 천연가스 3조8000억㎥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의 전체 석유 생산 가운데 남중국해 해저에서 추출되는 비중은 19∼30%에 달한다.

    중국은 베트남이 석유와 가스를 개발, 생산하는 것이 ‘도둑질’이라며 비난해왔다. 중국은 해경선과 해양조사선을 남중국해에 보내 베트남의 석유·가스 개발 및 생산을 방해하기도 했다. 중국 해경선 5척과 해양조사선 1척이 6월 7일부터 26일까지 베트남의 남중국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해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자루베즈네프트와 베트남 국영기업 페트로베트남이 공동개발 중인 가스전 주변 해역에 머물다가 떠난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 선박들은 베트남 정부의 퇴거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국익을 위해 미국과 군사적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베트남은 남중국해의 평화·안정 및 항행과 항공의 자유, 1982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 같은 국제법에 따른 해결 등 공동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강화를 막기 위해 구애 작전을 벌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월 27일 베이징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만나 체제 공통점을 강조하면서 관계 개선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시 주석은 팜 총리에게 “중국과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자 서로 고도로 신뢰하는 동지이고, 호혜와 공영의 동반자이며, 서로를 아는 친한 친구”라면서 “양국은 디커플링과 공급망 단절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도 같은 날 판 반 장 베트남 국방부장과 만나 “중국은 베트남과 군 고위급 소통을 강화하고 실무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신 중국과 손잡자는 것이다. 호주 로위연구소는 “중국의 의도는 베트남과 미국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지속적으로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한 것은 베트남도 공산당 일당 지배 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베트남 지도부가 친중 성향이라는 점을 기회 삼아 더욱 강력하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세계의 공장’ 반열 오른 베트남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친미파와 친중파가 권력 다툼을 해왔다. 친중파는 대부분 베트남 북부 출신으로 공산당에서 정치 이력을 쌓았다. 반면 친미파는 중남부 태생이 많고 주로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다. 두 집단 간 균형은 2월 친미파인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이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책임지겠다면서 사임한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중파가 권력서열 1위부터 4위까지를 차지한 것이다. 서방 언론들은 지도부 모두가 친중파로 채워진 베트남이 중국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그동안 미국이나 중국 가운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대나무 외교’ 노선을 유지해왔다. 대나무 외교는 2021년 12월 쫑 서기장이 정치국과 서기국이 합동으로 진행한 전국외교회의에서 베트남 외교 정책 노선을 설명하며 사용한 용어다. 당시 쫑 서기장은 “뿌리가 단단하지만 가지가 유연한 대나무처럼 베트남은 앞으로 전통을 계승하면서 외교와 세계 문화의 진보를 선택적으로 흡수하겠다”고 천명했다. 칼 테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명예교수는 “베트남은 외교 정책에서 일관되게 다각화·다자화 정책을 추구해왔다”며 “이에 따라 베트남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되 유연하게 국익을 극대화하는 대나무 외교를 추진헸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이 앞으로도 이 노선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베트남이 중국을 대신하는 ‘세계의 공장’ 반열에 오르면서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쇄도하고 있다. 이에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일본, 한국 등의 교역도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과 교역은 과거처럼 활발하지 않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베트남의 두 번째 수출국이다. 베트남의 지난해 대중(對中) 수출 규모는 572억 달러(약 74조3400억 원)로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반면 지난해 베트남의 최대 수입국(1193억 달러·약 155조 원)은 중국으로, 609억 달러(약 79조1400억 원)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경제적으로 볼 때 미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베트남 국민의 반중 정서는 뿌리 깊고 강하다. 베트남 지도부가 모두 친중파라고 해도 국민의 반중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 베트남이 앞으로 대나무 가지를 미국 쪽으로 서서히 기울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