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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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m 크기로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 컴퓨터 애플 ‘비전 프로’

현실에 가상세계 적용한 뛰어난 성능에 사용자들 감탄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3-06-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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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이 많은 기대를 모았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발표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6월 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 2023)에서 비전 프로를 발표하며 “첫 번째 공간 컴퓨터로, 100ft(약 30m) 크기로 느껴지는 화면에서 AR과 가상현실(VR)을 모두 경험할 수 있고 완전한 몰입이 가능한 공간 오디오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 [애플 제공]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 [애플 제공]

    와이드 스크린의 공간 컴퓨터

    비전 프로는 기존 헤드셋과 달리 애플 특유의 인체공학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이 시선을 끈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내부에 있는 2개의 4K 디스플레이를 통해 눈앞에 와이드 스크린이 나타나고, 180도 입체 음향을 들을 수 있다. 비전 프로는 사용자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해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해당 위치에 겹쳐 보이도록 실시간 추적 기술이 적용됐다. 내장된 R1칩은 눈 깜빡임보다 8배 빠른 12밀리초(msec) 이내에 새 이미지를 스트리밍할 수 있어 동작 사이 지연을 최소화한다. 비전 프로가 기존 헤드셋과 다른 점은 완전 몰입형 VR일 뿐 아니라, 실제 세계와 디지털 요소를 적절히 섞어서 경험하는 혼합현실(MR) 헤드셋이라는 것이다. 카메라 12개가 탑재돼 있어 사용자 주위 환경을 실시간으로 촬영한다. 이를 통해 실제 세계에 기반한 AR이나 MR을 경험할 수 있다. 헤드셋 우측 상단에 위치한 디지털 크라운은 몰입도를 조절하는 장치다. 몰입도를 높일수록 시야에 가상의 3D 그래픽 요소 비중이 더 커진다. 이외에도 라이다(Lidar) 센서, 트루뎁스(TrueDepth) 카메라, 적외선 투광기 등 다양한 센서가 입력 반응을 감지한다. 이를 통해 눈, 손, 목소리 정보만 입력된다. 시선을 추적하고 손가락 움직임과 음성 명령을 인식해 시스템 및 애플리케이션(앱)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애플은 매번 새로운 입력 모델을 통해 혁신을 주도해왔다고 자평한다. 매킨토시 마우스, 아이팟 클릭 휠, 아이폰 터치스크린, 애플워치 디지털 크라운이 그 예다. 이러한 방식은 디자인적 가치와 효율성을 모두 높임으로써 많은 애플 마니아를 만들어온 애플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비전 프로는 3D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기 위해 자체 운영체제(OS)인 ‘비전 OS’를 탑재하고 있다. 비전 OS는 기존 디스플레이 경계에서 벗어나 3D 공간에 떠 있는 각종 앱과 홈 화면의 시스템 설정을 지원한다. 자연광에 동적으로 반응해 그림자를 드리워 규모와 거리를 표현하는 등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메타 퀘스트와 경쟁 구도

    애플은 비전 프로를 발표하면서 ‘공간 컴퓨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애플은 신제품에 대해 설명할 때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공간 컴퓨터는 우리가 흔히 아는 VR, AR과 같이 현실 세계에 3D 디지털 요소를 섞어 가상 세계에 몰입하게끔 해주는 장치를 말한다. 공간 컴퓨터의 핵심은 현실 세계와 디지털 요소가 ‘상호작용’해 가상 세계 속으로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커졌고 원격회의, 화상통화, 메타버스 등 비대면 방식의 공간 컴퓨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간 컴퓨팅을 위해서는 비전 프로와 같은 헤드셋이 필요하다. 헤드셋은 시야를 차단해 눈앞에 3D 세계를 펼쳐 보이는 시청각 장치다. 기존에 출시된 경쟁 제품으로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와 메타 ‘퀘스트’가 있다. 두 제품 모두 머리에 쓰는 헤드셋 형태로, 이들 장치는 몰입감이 높은 게임 위주로 활용돼왔다. 전 세계적으로 헤드셋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지난해 900만 개 미만이 출하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 대부분은 메타 퀘스트가 차지하고 있다. 메타는 메타버스를 포기해야 한다고 전망하는 비평가들의 지적에도 공간 컴퓨팅을 미래 기술의 큰 부분으로 보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헤드셋 수요가 줄어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 기계의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게임산업에서 가장 활발히 사용되는 편이다. 1995년 닌텐도가 출시한 게임용 헤드셋 ‘버추얼 보이’는 3D 그래픽을 구현한 헤드셋 초기 모델이다. 2012년에는 오큘러스VR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출시했는데, 2014년 3월 페이스북(현 메타)이 이 회사를 20억 달러(약 2조5700억 원)에 인수했다. 메타버스는 오큘러스VR 인수를 통해 게임 기술뿐 아니라,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메타버스에까지 손을 뻗으며 이 분야에서 계속해 주류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글은 10년 전 AR을 지원하는 ‘구글 글래스’를 개발했으나 현재 프로젝트가 중단된 상태다. 애플의 또 다른 라이벌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 자체 MR 헤드셋 ‘홀로렌즈’를 출시했다. 홀로렌즈는 게임 외에도 의료나 군사 등 새로운 B2B(기업 간 거래) 분야를 개척해 헤드셋을 공급하고 있다. 매직리프2와 홀로렌즈2가 판매되는 가운데 6월 1일 메타가 퀘스트3를 비교적 저렴한 499달러(약 64만 원)에 출시하면서 헤드셋 시장도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비전 프로의 가장 큰 문제는 비싼 가격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2024년 초 출시할 계획이며 가격은 3499달러(약 450만 원)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빠르면 2025년 말 저가 버전의 비전 프로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관련 제품군의 시장 가격을 매번 끌어올려 왔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피할 수 없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맥루머스’의 하틀리 칼턴 수석편집자는 “매우 높은 가격대와 유선 배터리 팩 등 단점 때문에 1세대 제품으로는 주류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애플은 그동안 소비자들을 새로운 장치에 대한 의구심을 접고 일상용품으로 소지하기 위해 큰 비용도 기꺼이 지불하게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팀 쿡 CEO는 “AR은 디지털 콘텐츠를 현실 세계와 혼합해 우리가 본 적 없는 경험을 열어주는 심오한 기술”이라며 “비전 프로는 새로운 AR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플랫폼은 소프트웨어에 따라 살아남거나 도태된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3차원 공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전 프로의 활용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비전 프로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 자연스럽고 생생한 화면을 보여줘 고화질 TV를 보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 가상공간에서 게임이나 영화감상 등을 즐기기에 유용하다. 100여 개의 애플 아케이드 게임을 비전 프로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개발자들에게 앱이나 장치를 추가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방침이다. 이미 비전 프로용 앱을 재설계하고 새로운 앱을 만드는 프로그램과 도구를 지원하고 있다. 향후 비전 OS는 비전 프로의 개발자용 앱으로 해부학적 렌더링을 보는 의료용 소프트웨어와 공기 흐름 등의 물리적 시각화를 위한 엔지니어링 앱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애플이 주목하는 비전 프로의 용도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개인용 공간 컴퓨터’다. 게임에 주력한 기존 헤드셋과 달리, 매직 키보드와 매직 트랙패드를 이용해 매킨토시의 3D 버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신의 작업실이 펼쳐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속 앱을 더 확장된 공간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비전 프로를 사용해본 리뷰어들은 현실에 가상 세계를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뛰어난 성능과 인터페이스에 감탄하고 있다. 눈앞에 대형 스크린이 나타나 고품질 영상을 감상하는 기능은 좁은 공간에서 혼자 사용하기에 특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사용한다면 스스로 고립되는, 매우 고독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헤드셋을 쓴 채 1인칭 시점의 경험을 하면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중단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을 시각화하는 아이사이트 기능

    애플은 아이사이트라는 독특한 기능을 통해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완화하려는 듯하다. 아이사이트는 사용자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경우 그들이 AR 경험의 일부처럼 느껴지도록 시각적으로 처리해주는 기능이다. 사용자가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있을 때 사용자 눈을 디지털화해 투명한 전면 화면에 살짝 비치게도 해준다. 비전 프로를 착용한 사용자를 주변 사람들이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정작 몰입형 페이스타임 통화를 할 때는 상대방이 사용자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사용자의 눈, 입, 손의 움직임을 캡처해 실제 모습을 애니메이션화한 머신러닝 기반 페르소나(아바타 대신 부르는 명칭)가 대신해준다. 생산성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애플의 공간 컴퓨팅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단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자사 회의에서 “메타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헤드셋과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그에 반해 (애플이 제시하는) 소파에 혼자 앉아 헤드셋을 착용하고 즐기는 모습은 미래 컴퓨팅 비전일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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