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6

2021.07.02

‘자유주의자’ 면모 드러낸 尹, 22회나 ‘자유’ 언급했다

사전녹화 없고 질의응답 피하지 않아… 文 출마 선언서 자유 0회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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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1-07-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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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윤석열 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윤석열 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저 윤석열,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습니다.”

    윤석열(61)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면 국민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권 도전 선언이다.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3월 4일부터 시작된 117일간의 야인(野人) 생활도 이로써 막을 내렸다.

    실시간 선언 vs 사전녹화

    34세 늦깎이 초임 검사가 검찰총장이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력 대권주자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2019년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스스로를 “정무감각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평가했다.

    “ ‘정치인 윤석열’을 만든 건 8할이 문재인 정권”이라는 말은 정계에 공공연하다. ‘검찰개혁’ 행보로 윤 전 총장이 사퇴 압력을 받으면서 여론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권력형 비리를 파고들어 권력 눈 밖에 났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윤 전 총장은 “그동안 싸워왔던 것처럼 정권교체에 나서 무너진 법치와 상식을 바로세우라는 뜻”으로 지지세를 해석했다. 검찰 윤석열을 향한 높은 지지는 정권을 거스른 행보에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정치인 윤석열’은 어떨까.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 방식과 내용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차이를 보였다.



    우선 대선 출마 선언 방식부터 윤 전 총장은 문 대통령과 달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24일 사전 제작한 영상을 통해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한국에서 공직 후보자가 영상으로 출마를 알린 첫 시도였다. 당시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가 총괄기획을 맡았고 작곡가 김형석 씨가 도왔다. 록밴드 YB의 ‘흰수염고래’를 배경음악으로 한 해당 영상은 ‘문재인 편’ ‘재외국민 편’ ‘모두 함께 편’ 세 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화려하고 짜임새 있게 편집된 영상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출마 선언문을 읽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올해 7월 1일 오전 사전녹화한 영상을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다.

    윤 전 총장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6월 29일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며 소통에 나선 그는 이날 오후 1시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3층 강당에서 국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온이 섭씨 29도에 달했지만 행사 2시간 전부터 인근 지역은 지지자들로 인파를 이뤘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윤 전 총장은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앞으로 나와 1000여 명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기자회견장에서 정계 입문을 공식화했다.

    실시간으로 기자회견을 하다 보니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도 노출됐다.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연신 고개를 좌우로 저은 것이다. 이를 두고 ‘도리도리 윤’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다음 날 SBS와 인터뷰에서 “(어제) 고개를 너무 좌우로 많이 돌렸다. 이거는 좀 고쳐야겠다”고 말했다.

    ‘자유’ ‘자유민주주의’ 22회 언급

    출마 선언에 담긴 내용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자유’를 두고서도 문 대통령과 윤 전 총장은 반대 모습을 보였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자유 및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22회 언급했다. 대선주자의 출마 선언문에 자유라는 보편적 표현이 여러 번 들어간 것이 특이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2017년 문 대통령의 출마 선언문에는 자유라는 표현 자체가 없었다.

    윤 전 총장의 자유 및 자유민주주의 강조를 ‘보수 일색’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 ‘자유’는 진보 혹은 보수 어느 쪽에 속하는 가치가 아님에도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는 자유라는 가치를 쉽게 포기한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의 경우도) 이런 관성이 작용한 면이 있다고 본다”며 “윤 전 총장은 보수에 가깝다. 다만 ‘승자독식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하거나, 성장과 복지 중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은 모습에서 일부 보수세력과 구분됐다. 이는 보수 혁신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이자 전제”라면서도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사회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핵심 첨단 기술과 산업시설을 공유하는 체제로 급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라는 가치가 국내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자유 강조에는 야권 대권주자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많지만, 그의 지인들은 이날 이야기가 새롭지 않았다고 전했다.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윤 전 총장과 검사 생활을 함께 시작한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은 6월 30일 ‘주간동아’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은 사석에서도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보통의 고시생과 달리 법철학도 열심히 공부했구나’ 생각했다. 술자리에서 사회 현상이나 헌법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고 회상했다.

    기자회견 백미는 취재진과 질의응답이었다. 윤 전 총장은 사전 조율 없이 40여 분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X파일 논란 △검찰 독립성 훼손 문제 △국민의힘 입당 시기 △사면 논란 등 첨예한 현안과 관련된 질문들이 나왔다. 사회를 맡은 최지현 부대변인이 질문을 그만 받으려 하자 “한두 분 더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有 vs 無

    “기자회견을 피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문 대통령을 겨냥한 것 같다는 지적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과거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민의힘 입당 시기와 관련한 물음에 “이 자리에서 답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답했다. “선출직 공직자는 무제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다만 마타도어에 대해서는 국민이 판단할 것” “(검찰총장의 선출직 불출마는) 의미 있는 관행이지만 절대적 원칙이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에 안타까워하는 국민이 많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다”는 대답 등이다.

    윤 전 총장은 이후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면서 현장의 모든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간 전화를 받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는 잘 소통하겠다” 등의 대화를 나누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여당은 혹평을 내놓았다. 윤 전 총장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제정책 기조부터 일본과 외교 문제, 부동산 정책 등 다양한 분야의 질문을 해줬는데, 뭐라 답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며 “분명히 뭔가 얘기를 했는데, 뭔지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데뷔 무대에서 패를 모두 보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 출마 선언에서는 이미지 상승을 최우선시하다 보니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문 대통령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며 “여당에서 윤 전 총장을 향해 비난을 쏟아낸다는 사실 자체가 그만큼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윤 전 총장이 유권자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안티테제로 부상했다. 확장성을 위해 자신만의 비전을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했는데, 단순히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윤석열답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것이 부족했다”며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심각했던 문제가 진영 정치였다. 이로 인해 나라가 분열됐고, 중도층은 정권의 이 같은 모습에 실망해 이반했다. 윤 전 총장이 진영 정치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면 반향이 더 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동아DB]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동아DB]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아DB]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아DB]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을 받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자택 근처에서 진돗개로 보이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 [동아DB]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을 받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자택 근처에서 진돗개로 보이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윤석열 국민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로부터 질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윤석열 국민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로부터 질의를 받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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