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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커 프로젝트

경복궁의 풍광을 빌리고, 한옥을 품에 안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건축화한 아름지기 사옥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경복궁의 풍광을 빌리고, 한옥을 품에 안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500년 왕조의 정궁이던 경복궁과 이웃한 건축을 지어야 한다면? 의식하지 않는다면 허세요, 주눅 든다고 하면 비굴일 것이다. 제대로 된 건축가라면 세월의 무게에 억눌리지 않으면서도 고졸(古拙)한 느낌이 살아 숨 쉬는 건축을 꿈꿀 것이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경복궁 서쪽 돌담벼락 맞은편에 위치한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이 꿈꾸는 경지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하지만 돌담길에서 그 정문(오른쪽 사진)을 마주 보고 서 바라보면 전통의 흔적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아래부터 흰색 노출콘크리트, 회백색의 적삼목, 불투명 유리로 이뤄진 3단 구성 때문에 현대적 성채의 느낌이 강하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생활 보호에 충실하면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모더니즘 건축의 느낌이 물씬하다. 하지만 정작 무슨 용도의 건축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마주한 기분이 든다. 

그 의문을 풀고자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남북으로 걸으며 관찰해본다. 북쪽으로 걷다 보면 2층에 한옥이 올라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에 한옥이라니, 갓 쓰고 넥타이 맨 형국 아냐?’ 남쪽으로 내려가 측면을 바라보면 한옥은 사라지고, 양끝에 빌딩 2개가 솟아 있으며, 움푹 들어간 가운데는 평평해 마치 마징가제트의 머리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외관을 만나게 된다. 도대체 이 건축의 정체는 뭘까.


전통을 품은 모던

1 조선시대 돌계단 유구를 그대로 살린 지하 1층 라운지의 앞마당. 2 1층의 상설전시관. 의식주 관련 전통을 현대화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날 수 있다. 3 2층에 마련된 기프트숍. 예술가들과 컬래버레이션한 작품 중 인기가 많았던 것을 전시, 판매한다. 4 2층의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전통 한옥과 마주한 공간은 목조 미닫이문이 설치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제공 · 아름지기, 지호영 기자]

1 조선시대 돌계단 유구를 그대로 살린 지하 1층 라운지의 앞마당. 2 1층의 상설전시관. 의식주 관련 전통을 현대화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날 수 있다. 3 2층에 마련된 기프트숍. 예술가들과 컬래버레이션한 작품 중 인기가 많았던 것을 전시, 판매한다. 4 2층의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전통 한옥과 마주한 공간은 목조 미닫이문이 설치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제공 · 아름지기, 지호영 기자]

아름지기는 전통의 창조적 승계를 모토로 내건 비영리 문화재단이다. 궁궐과 자연문화유산 지킴이로 시작해 지금은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한국 전통의 의식주 문화를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변용한 결과물을 전시,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름지기 사옥은 그런 재단의 사무공간과 전시공간이 포개진 곳이다. 남쪽에서 바라봤을 때 양끝으로 4층까지 솟아오른 공간이 사무공간이고 가운데 평평한 공간의 지하 1~2층이 다목적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전통 도시락을 현대화한 작품, 방짜유기를 와인 쿨러로 변용한 작품, 금속테두리에 옻칠을 해 목재 느낌을 살린 의자, 한복의 고운 선을 살린 현대적 의상이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다. 




5 유리창, 삼베창, 한지창의 3중창으로 이뤄진 한옥의 창호.
 6 조선시대 한양 가옥의 원형을 보여주는 공간. 7 2층 한옥의 처마. 8 사무동과 연결되는 곳에도 한옥의 섬돌을 설치한 센스가 돋보인다.

5 유리창, 삼베창, 한지창의 3중창으로 이뤄진 한옥의 창호. 6 조선시대 한양 가옥의 원형을 보여주는 공간. 7 2층 한옥의 처마. 8 사무동과 연결되는 곳에도 한옥의 섬돌을 설치한 센스가 돋보인다.

그런 전시 품목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의식주 가운데 주(住)에 해당하는 한옥이다. 그래서 아름지기 사옥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이 설계한 남향의 일자(一字) 한옥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 한편에는 보료를 깔고 좌식생활을 하는 서울식 온돌방을 그대로 재현했고, 다른 한편에는 현대적 입식생활에 맞게 내부 구조를 개조한 거실을 설치했다. 대들보와 서까래를 노출해가며 한껏 높인 천장과 전통적인 3중창을 유리창, 삼베창, 한지(창호지)창으로 현대적으로 개량한 창호, 입식생활에 맞게 변형한 다양한 전통가구도 여기서 접할 수 있다.


‘차경의 원리’를 구현한 미닫이 건축

1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연결하는 서쪽 계단에서 올려다본 한옥. 2 남쪽 면에서 올려다본 아름지기 사옥. 마징가제트의 머리 부분을 연상케 한다.
3 고려 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근 700년 된 발굴 부지의 지층도 전시하고 있다. 4 ‘타불라 라사’를 연상케 하는 백색 통로와 한옥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목조계단. [지호영 기자]

1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연결하는 서쪽 계단에서 올려다본 한옥. 2 남쪽 면에서 올려다본 아름지기 사옥. 마징가제트의 머리 부분을 연상케 한다. 3 고려 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근 700년 된 발굴 부지의 지층도 전시하고 있다. 4 ‘타불라 라사’를 연상케 하는 백색 통로와 한옥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목조계단. [지호영 기자]

이런 한옥의 매력은 개방성에 있다. 주위 환경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원리를 적용하려면 되도록 탁 트인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 전체 사옥을 설계한 김종규 한예종 교수(마루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를 위해 사옥 2층을 중정(中庭)처럼 구성했다. 그래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서면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한옥과 대칭을 이루는 공간엔 길쭉한 회의공간 겸 전시공간이 들어서 있어 남북의 균형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2층 안마당을 위에서 바라보면 ㅁ자 구조를 이룬다. 

지난해 완공된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은 한국적 달항아리의 건축적 변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아름지기 사옥은 막사발의 건축적 변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모더니즘의 건축적 용어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 막사발을 가볍고 세련되게 변용한 본차이나 그릇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실제 한옥을 제외한 실내공간은 마룻바닥과 목조계단을 제외하면 ‘카사블랑카’(‘하얀 집’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온통 백색이다. 김종규 건축의 특징을 ‘타불라 라사’(‘백지’라는 뜻의 라틴어)로 포착했던 김현섭 고려대 교수의 표현은 노출콘크리트로 구성된 1층 기단부와 수직으로 치솟은 사무동, 그리고 실내공간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건물 곳곳을 큼직하게 장식하는 통유리를 통해 스며드는 자연광과 실내 곳곳에 설치된 백색 조명 역시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다. 

심지어 안마당(중정)에 심은 노간주나무의 검보라색 열매가 도드라지게 보일 정도로 사무동의 외벽 역시 회백색을 띤다. 그런 점에선 전통을 상징하는 경복궁에 굴하지 않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의 도도함이 느껴질 정도다.


주변 풍광을 투영하는 스크린 효과

2층 중정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난 목재 미닫이문. 옆으로 밀면 고궁의 아취가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다. [지호영 기자]

2층 중정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난 목재 미닫이문. 옆으로 밀면 고궁의 아취가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다. [지호영 기자]

하지만 안마당에서 경복궁 쪽으로 닫혀 있던 목조 차단벽이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밀리면서 경복궁 만추의 풍광이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멀리 떨어진 주변 경치를 건축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차경의 원리를 기가 막히게 접목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안마당의 바람길이 동서 방향이라 여름에 열어두면 시원한 냉방효과를, 겨울에 닫아두면 따뜻한 난방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병풍의 건축적 변용이라 할 만했다. 그 순간 폐쇄적으로만 보이던 김종규 건축의 ‘타불라 라사’가 한옥의 전통 건축미학이 투영되는 스크린 역할도 수행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명함에 가까운 흰색이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같은 거목으로 이뤄진 가로수는 물론, 돌담 너머 울긋불긋한 단풍이 든 고궁의 아취까지 자연스럽게 반영해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서쪽 사무공간 수직 외벽에 또렷이 어리는 인근 전봇대의 그림자가 이를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도 그것은 깊은 어둠이 깃들었을 때 한옥의 흰색 창호지에 어리는 그림자를 연상케 하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아름지기 사옥 건축은 그렇게 흰 바탕의 노출콘크리트를 통해 단순하면서도 풍성한 양감을 조성하면서 주변 풍광을 빨아들이고 투영해내는 스크린 효과를 발휘했다. 이것이 전통 한옥의 차경 원리와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그 결과 건축 자체의 독특한 존재감을 부각하면서도 주변 풍광 및 건축과 묘한 조화를 이뤄 결코 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외형상으로는 분명 모더니즘 건축 논리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적 전통 건축의 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 조선 정궁인 경복궁에 밀리지 않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적인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건축 원리를 품어낸다. ‘백색 모더니즘’으로 불리며 30년 세월을 풍미한 김종규 건축의 진가를 그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간동아 2019.11.22 1215호 (p56~6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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