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2015.07.06

의미는 좋은데 만듦새가 좀…

김성제 감독의 ‘소수의견’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7-06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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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는 좋은데 만듦새가 좀…
    영화 ‘소수의견’은 손아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즉 애초부터 픽션이다. 장르를 나누면 법정영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낯설게 느껴지는 법률용어와 법정 상황을 꽤 이해하기 쉬운 수준에서 전달하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시작은 철거 현장이다. 철거에 저항하는 시민을 경찰이 강제 진압에 나선다. 이 현장에는 경찰뿐 아니라 ‘용역’이라 불리는 철거 깡패도 있다. 버티는 철거민과 경찰이 맞서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철거민 중 한 명, 그리고 진압하던 의경 중 한 명이 각각 사망한 것. 두 사람 모두에게서 심한 가격에 의한 외상이 발견되고, 이로 인해 죽은 철거민 소년의 아버지 박재호가 경찰 살해 혐의로 기소된다.

    살해 현장에 있던 사람은 박재호, 죽은 아들, 죽은 경찰, 그리고 다른 경찰, 이렇게 네 명뿐. 객관적 증거는 이미 사라졌고, 사건의 전말은 몇 줄의 문장으로 건조하게 기록돼 있을 뿐이다. 이렇게 시작부터 뻔한, 즉 아버지가 경찰을 살해하고 공권력을 훼손한 혐의로 처벌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소수의견’은 작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다. 뻔해 보이는 사건에 투입된 신참 변호사가 점차 정의로운 인물로 바뀌는 과정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지방대 출신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신참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분)은 윤리적 기준도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국선변호인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약간의 패배주의와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그런 그에게 바로 이 사건이 배당된다. 어차피 질 재판이라고 여긴 그를 변화시킨 건 박재호의 주장이다. 그는 경찰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호소한다.

    이때부터 사건의 무게중심은 박재호가 의경을 죽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의 아들을 용역 깡패가 죽였느냐 의경이 죽였느냐로 옮겨간다. 이에 윤진원은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며 배상금 100원을 청구한다. 배상금액보다 사실 확인 자체가 중요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패배의식에 빠진 국선변호인이 아닌,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는 변호사로 바뀌어간다. 이 과정에서 국가, 제도, 공권력이 가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경험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의 어려움도 알아간다.



    영화 ‘소수의견’의 주인공은 윤진원 역을 맡은 배우 윤계상이지만, 사실 이 영화에 윤기를 더하는 건 그의 선배 장대석 변호사 역을 맡은 유해진이다. 장대석은 잃을 게 많은 변호사인데도 후배를 위해 진심으로 나선다. 비록 세상에는 음모를 꾸미고 협잡하는 무리가 더 많지만 장대석처럼 따뜻한 인간도 있고, 변호사징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염 교수처럼 원칙적인 인물도 있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진실이 조금이나마 볕을 보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진실과 정의가 보존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정의를 구현할 수도 있고, 사람이 구조적인 악을 지탱하기도 하는 것이다.

    의도는 옳고 의미도 있지만, 만듦새로만 보자면 ‘소수의견’에는 몇 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다. 먼저 제목이 왜 소수의견인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와 닿지 않는다. 국가배상청구소송은 은근슬쩍 사라지고, 박재호 살인사건만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의도가 좋다고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까지 좋을 수는 없다. 의미는 있지만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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