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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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공포정치의 배후 ‘실로비키’

옛 KGB 출신 주요 직위 장악…이념 대신 민족주의로 서방 적대감 극대화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3-09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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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처럼 러시아에서 ‘공포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온 정적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월 27일 피살되자 러시아 야권 지도자들은 자신이 다음 암살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측근들의 부정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을 신랄하게 비난해왔다.

    실제로 푸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민주주의’는 거의 실종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반 국민은 여행, 종교, 사상 등의 자유를 누리고 비밀투표를 보장받으며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통치를 비판하면 정치적 자유는 사라진다. 의회와 사법부를 장악한 푸틴 대통령은 선출직 주지사를 임명직으로 바꾸는 한편, 방송과 신문 등 언론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연이은 인권 탄압 소식과 함께 비정부기구(NGO)의 활동도 사실상 허가제로 바뀌었다.

    미국으로 망명한 전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모든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푸틴 대통령은 독재자”라고 비판했다. 앤드루 윌슨 영국 런던대 교수도 “러시아의 정치는 일당 독재에 가까우며 정당들은 크렘린로부터 지원받아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규요원 50만, 군산복합체와 결탁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통치방식을 학술용어로 정리하면 일종의 ‘관리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 또는 ‘전제 민주주의(Authoritarian Democracy)’라 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 ‘강한 러시아’를 건설하려면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는 게 푸틴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가 자기 집무실에 표트르 대제(1672~1725)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것 역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통해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초강대국 위치를 상실한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에 가깝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꼽히지만 인권 탄압과 침략 전쟁으로 비판을 받았다.



    푸틴은 이러한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고자 ‘실로비키(siloviki)’를 대거 요직에 기용해왔다. 러시아어로 ‘제복을 입은 남자들’을 뜻하는 실로비키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해 정보기관과 군, 경찰 출신 인사를 말한다. 실로비키는 KGB 출신이자 FSB 국장을 지낸 푸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러시아의 주요 권력기관을 장악하며 충성심을 자랑해왔다. 마샤 리프만 카네기 모스크바센터 연구원은 “푸틴은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채워진 수직 구도의 권력체제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푸틴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을 최대과제로 삼고 있는 실로비키는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정적이나 언론을 탄압하는 등 비민주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푸틴이 권력을 잡은 이후 피살된 언론인과 정적은 지금까지 20명이 넘지만, 범행 동기나 배후가 제대로 밝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넴초프를 암살한 범인을 잡는다 해도 ‘몸통’은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푸틴 대통령을 둘러싼 실로비키의 면면을 보면 막강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FSB 국장을 역임한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 국방부 장관과 제1부총리를 지냈으며 KGB 출신이자 푸틴과 고향 친구인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비서)실장,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세친 회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에 KGB를 거쳤고, 에너지 담당 부총리를 지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FSB에서 중요 직책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FSB는 현재 러시아 권력기관 가운데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FSB 국장은 장관급이자 현역 육군 대장 신분이며, 자체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고, 법적으로 다른 기관의 감독을 받지 않는 특권도 지닌다. FSB의 예산과 인원 규모는 비밀이지만 정규요원만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FSB는 또 범죄를 저지를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무조건 소환해 조사할 권한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일과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FSB의 국내 정세 보고서일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2020년까지 장기집권 플랜

    이들 외에도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FSB 국장,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나리시킨 하원의장, 드미트리 로고진 군수 및 우주산업 담당 부총리, 빅토르 이바노프 연방마약단속청장 등도 실로비키에 포함된다. 최근 이들 실로비키는 푸틴 대통령의 군사력 강화 정책 덕에 더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유가 하락과 루블화 폭락 사태에도 올해 국방예산을 지난해보다 30% 증액했다. 이러한 막대한 국방예산은 군산복합체와 안보기관을 장악한 실로비키의 세력 확장에 큰 도움을 준다.

    실로비키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들은 옛 소련식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게 아니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중무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선 푸틴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신념화하고 있는 것. 이들은 또 서방이야말로 푸틴 체제의 최대 위협이라고 인식한다. 실로비키의 대표격인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미국은 러시아의 정권교체를 달성해 궁극적으로 러시아를 분열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지역 반군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린 것 역시 이들의 강력한 건의 때문이었다.

    따라서 실로비키에게는 친(親)서방,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넴초프 같은 반(反)푸틴 인사는 제거해야 할 눈엣가시나 마찬가지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넘나들지만, 실로비키는 국민이 영원히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이들 실로비키는 2020년까지 집권을 유지하려면 반푸틴 세력의 싹을 일찌감치 잘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을 일본 자민당이나 멕시코 제도혁명당처럼 만들어 러시아를 장기 통치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다. 푸틴 대통령과 실로비키의 거침없는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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