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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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여야 사는 프로야구

평균 3시간 27분 늘어지는 경기시간, 떠나는 관중…올 시즌 10분 단축이 목표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5-01-12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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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여야 사는 프로야구

    한국야구위원회는 프로야구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경기 운영 규정을 강화했다.

    ‘1분, 아니 1초라도 아끼자.’

    생산 공장의 구호가 아니다. 느림의 미학과 정적인 여유가 가득했던 야구장에 떨어진 급한 숙제다. 야구는 시간 제약에서 자유로운 스포츠다. 콜드게임 규정이 없는 프로리그에서, 특히 무승부가 없는 메이저리그는 자정을 넘기는 1박 2일 경기도 종종 열린다. 지난해 8월 12일(한국시간) 토론토와 디트로이트는 연장 19회 6시간 37분간 대혈투를 치르기도 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대로 아무리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어도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드라마 같은 대 역전극이 가능하다. 이것이 야구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리그 전체의 평균 경기시간 증가는 흥행에 독이 될 수 있다. 관중은 지루해하고, 그라운드 위 선수와 덕아웃에 있는 감독 모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경기 질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8년 한국 프로야구의 평균 경기시간은 2시간 59분. 그러나 2014년 총 576경기의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 27분이었다. 16년 전과 비교해 경기시간이 30여 분 가까이 늘어났다. 98년까지는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평일 경기를 관람하면 9시 30분 전에 경기가 끝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10시가 다 돼야 경기가 종료된다. 집에서 다음 날 출근을 앞두고 TV로 야구를 응원하는 팬에게도 30분의 체감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특히 길어진 경기시간은 리그의 주요 수입원인 TV 중계 시청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지상파 방송채널은 경기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질수록 편성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TV 중계권으로 천문학적 매출을 올리는 메이저리그 팀들은 경기시간 단축 ‘스피드 업’에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규칙을 보완하고 있다.

    프로야구 7이닝 경기 시대 오나



    2014시즌 경기시간이 2010년에 비해 13분 늘어난 3시간 8분을 기록하자 타자가 타석에서 벗어나는 것을 금지하는 룰 도입을 검토하면서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애리조나 폴리그(가을리그)에서 이를 실전 테스트하기도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05년 싱가포르 총회에서 2012년 런던올림픽 정식종목 중 야구를 제외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야구를 하는 나라가 북미와 중남미, 아시아에 편중돼 있다는 문제와 3시간이 넘는 긴 경기시간이었다. IOC는 2009년 덴마크 총회에서도 야구는 경기시간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 방송중계에 불리하다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하는 대신 골프를 선택했다.

    경기시간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최악의 ‘타고투저’가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타자들의 평균 타격 능력이 투수들을 압도하면서 지난해 경기당 안타 수가 사상 최초로 20개를 넘겼다. 경기당 홈런도 2013년과 비교해 45.6% 늘어난 2.02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투수 8.75명이 마운드에 오르면서 교체에 따른 시간이 소요됐고, 처음 도입한 심판합의판정도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일부 선수의 습관도 문제다. 포볼 판정이 난 후 보호대를 느릿느릿 풀고 천천히 1루로 이동하는 타자가 늘고 있다. 투수는 주자가 없을 경우 20초 안에 투구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발이 빠른 주자가 많아지면서 수차례 견제구를 던져 경기시간이 한없이 늘어나고 있다. 타자의 잘못된 습관이 아닌, 경기 안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플레이지만 지난 시즌 심판들은 수십 차례 투수의 지나친 견제구에 주의를 줬다.

    지난해 4월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메이저리그 고위 관계자가 경기를 기존 9이닝에서 7이닝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주장의 이유로 “경기시간이 길어져 젊은 세대가 야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2시간 30분 안에 끝나야 한다”는 흥행적인 측면과 “경기시간이 길어지면서 투수들의 심각한 부상이 늘고 있다”는 선수 보호 측면을 들었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부정적이다. 혁신적인 발상이지만 이를 도입할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100년 이상 쌓아온 기록의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야구는 그동안 경기시간을 줄이고 박진감을 높이고자 삼진아웃, 포볼, 파울을 2스트라이크까지 판정하는 등 지금은 당연한 것 같은 규칙을 추가하며 발전해왔다. 이런 규칙은 대부분 180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야구 초창기에 완성됐다. 2004년 출범한 이스라엘 리그는 실제로 정규 경기를 9이닝이 아닌 7이닝으로 치르고 있다. 신생 리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매우 획기적인 선택이었다.

    야구는 미국, 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중미 국가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로 꼽힌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기시간이 계속 늘어날 경우 언제 쇠락할지 예측이 어렵다. 메이저리그 수뇌부에서 7이닝 경기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스포츠산업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는 미국미식축구리그(NFL)라는 거대한 라이벌이 존재한다. 메이저리그가 장기 레이스라면 NFL은 시즌 경기 수가 매우 적은, 호흡이 매우 빠른 단거리 종목에 비유할 수 있다. 그만큼 경기시간 줄이기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피드 업 위한 새로운 규정 도입

    줄여야 사는 프로야구

    올 시즌부터 경기 중 감독이 심판에게 어필할 때 수석코치의 동행을 금지하기로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실질적인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세부 규칙을 만들었다. KBO는 “2015시즌 평균 경기시간을 2014시즌보다 10분 단축하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밝혔다. 선수, 감독, 코치, 심판들의 습관을 바꿔 경기시간을 계속 줄여나가고, 추가적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먼저 KBO는 홈팀 타자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BGM(Background Music)을 10초 이내로 줄이고, 타자는 음악이 끝나기 전 타석에 서야 한다는 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미 명문화한 내용이지만 제재 규정이 없었다. 타자는 대부분 자신을 위한 음악을 다 듣고 서서히 타석에 들어선다. 앞으로 이 규정을 어기면 주심은 타자 위치와 상관없이 투수에게 공을 던지게 하고 스트라이크 판정을 한다. 또한 타자는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소 한 발은 타석 안에 둬야 한다. 올해부터는 이를 위반할 경우 경고 없이 곧장 주심 신호에 따라 투수가 공을 던지고 스트라이크가 된다.

    삼성 박한이는 타격 전 공 하나하나마다 헬멧을 벗고 장갑을 다시 끼는 등 루틴 소요시간이 긴 대표적인 타자다. 그러나 KBO 조사 결과 박한이는 타석에서 자주 벗어나지 않아 오히려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허비하는 타자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KBO는 감독이 경기 중 심판에게 어필할 때 수석코치의 동행도 금지했다. 그동안 관행처럼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할 때 수석코치를 동행해왔다. KBO는 올 시즌 각 상황을 모니터링해 수석코치가 동행할 때 심판과의 대화시간이 더 길어진 사례를 확인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수석코치는 감독과 심판의 논쟁이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경우를 대비하는 역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KBO는 장기적으로 평균 경기시간 2시간대 진입을 목표로 한다. 2014년보다 27분을 줄여야 한다. 관건은 그라운드에서 직접 경기를 하는 감독, 코치, 선수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노력이다. 2009년 KBO는 이미 각 팀 단장과 코칭스태프를 초청해 ‘스피드 업’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러나 현장은 언제나 승리가 최우선이다. 일부 타자는 시간 끌기를 투수와의 심리전으로 사용한다. 길어지는 경기시간이 리그 전체에 얼마나 큰 위험 요소인지를 깊이 공감할 때 빠른 경기 진행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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