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2014.09.01

남자가 강간당한…경성의 거리

‘에로’ ‘난센스’가 넘치는 옛날 잡지 지금 읽어도 재미 쏠쏠

  •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junbg@kaist.ac.kr

    입력2014-09-01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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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강간당한…경성의 거리

    ‘별건곤’ 1931년 8월호에 실린 ‘대경성 에로·그로·테로·추(醜)로 총출’ 기사(왼쪽). 1927년 ‘별건곤’에 실린 만화. 현대식 옷차림의 젊은 여자에게 쏠린 남성들의 시선에서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당시 세태를 읽을 수 있다.

    ‘제일선’ 1932년 9월호에는 ‘현대 조선의 4대광(狂)’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 소개한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의 네 가지 열풍은 ‘만주광’ ‘금광광’ ‘미두광’, 그리고 ‘잡지광’이었다. 만주 개발에 따른 이민 열풍, 금값 상승에 따른 광산 개발 열풍, 쌀 선물(先物) 투기인 미두 열풍과 함께 ‘알 수 없는’ 잡지 간행 열풍은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도쿄 유학생 잡지 ‘학지광’, 문예지 ‘백조’, 여성잡지 ‘여자계’, 농민잡지 ‘조선농민’, 광업 잡지 ‘광업조선’, 아동잡지 ‘어린이’, 기생잡지 ‘장한’ 등 사실상 전 계층, 전 연령대를 대변하는 잡지가 간행됐다.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www.koreanhistory.or.kr)을 검색하면 이 가운데 103종에 달하는 옛날 잡지의 서지 정보 또는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시대에도 잡지 ‘간행 열풍’이 ‘구독 열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출판계에는 ‘3호 잡지’라는 말이 유행했다. 동인 몇 명이 의기투합해 의욕적으로 창간호를 간행해도 잡지가 팔리지 않아 자금난으로 3호를 채 넘기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일제강점기 잡지 간행 열풍은 1990년대 계간지 창간 열풍으로 계승됐고, 인터넷 등장 이후에는 블로그, 댓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근대 이후 한국인은 대중에게 자신의 지식, 사상, 주장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유독 강했던 것이다.

    이처럼 잡지는 대부분 서너 권 간행되다 폐간됐지만 ‘신동아’ ‘개벽’ ‘별건곤’ ‘삼천리’ 등 10년 가까이 장수한 월간지도 적잖았다. 동아일보사가 간행한 ‘신동아’와 천도교 기관지 ‘개벽’은 품격 높은 시사월간지였고, ‘별건곤’과 ‘삼천리’는 대중문화까지 포함하는 종합월간지였다.

    일제강점기 숨통 틔우는 구실



    필자는 이들 잡지와 신문기사를 엮어 2005년 7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3년 4개월에 걸쳐 ‘신동아’에 ‘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를 총 40회 연재한 바 있다. 익산 백만장자 이건호를 아편으로 독살한 혐의로 10년에 걸쳐 재판을 받은 그의 외아들 이수탁에 대한 ‘이수탁 살부 공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중앙보육학교 교장이던 박희도가 여제자와 ‘키스 내기 화투’를 치고 그의 정조를 유린한 사건, 순종의 장인인 윤택영이 호화 사치 생활로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중국 베이징으로 야반도주한 사건, 충정로에서 몸통 없는 아기 머리가 발견돼 23일 동안 서울을 공포로 몰아넣은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등이다. 이들 포복절도, 기상천외한 사건들에 관한 기사 역시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 접속해 ‘이수탁’ ‘박희도’ ‘윤택영’ ‘단두 유아’ 등 검색어만 입력하면 손쉽게 원문까지 확인해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잡지를 읽는 첫 번째 재미는 ‘에로(eros), 그로테스크(grotesque), 난센스(nonsense)’로 대표되는 그 시대 대중문화다. 그 시절 대중잡지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려고 자극적,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이 무렵 잡지 편집 관행을 풍자한 이태준의 소설 ‘아무 일도 없소’(‘동광’ 1931년 1월호)는 이렇게 시작된다.

    A : “에로가 빠져서는 안 될 터인데….”

    B : “그럼요, 이번 ‘XX’를 봐요. 그렇게 크게 취급한 ‘재만동포 문제’니 ‘신간회 해소 문제’니 하는 것은 성명이 없어도 ‘침실박람회’는 간 데마다 야단들입디다.”

    C : “참 ‘XX’ 이번 호는 그 제목 하나로 천 부는 더 팔았을걸…. 그렇지만 너무 노골적입디다.”

    D : “그래두 글쎄 그렇게 안 하군 안 돼요. 잡지란 무엇으로든지 여러 사람 화두에 오르내릴 기사가 있어야 그거 어느 잡지에서 보았느냐 어쨌느냐 하고 그 책을 찾게 되지….”

    E : “사실이야 아무래도 번쩍 띄는 큰 ‘에로’ 제목이 하나 있어야 돼. 더구나 봄인데.”

    이것은 M잡지사의 편집회의였었다. 그네들은 이와 같이 ‘에로’에 치중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래서 한편 구석에서 약간 얼굴이 붉어진 여기자만이 입을 다물고 앉았을 뿐이요, 그 외에는 저마다 우쭐대고 다투어가며 ‘에로’짜리 제목을 주워섬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예정 목차에 오른 것은 역시 눈을 딱 감고 남의 말은 못 들은 체하고 앉아 있다가 제일 나중에 자신 있게 내어놓은 편집국장의 것이 되고 말았으니, 그것은 ‘신춘에로백경집(新春好色百景集)’, 그들의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과연 ‘센세이션 백퍼센트’짜리 제목이었다.

    남자가 강간당한…경성의 거리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웹사이트.

    이 소설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은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서 ‘에로’를 검색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대경성 에로·그로·테로·추(醜)로 총출’ ‘에로·그로 100% 시체 결혼식, 통영에 일어난 기담’(‘별건곤’ 1931년 8월호), ‘에로 100%, 남자가 당한 강간’(‘별건곤’ 1932년 6월호), ‘45명으로 조직된 ‘청상과부 구락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이 기괴한 에로 단체’(‘삼천리’ 1932년 1월호) 등등. ‘별건곤’은 심지어 ‘에로 섹션’을 따로 연재하기도 했다.

    ‘헛다리’ 짚은 당대 지식인들

    일제강점기 잡지를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역사책에 나오는 사건을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서 ‘공황’을 검색하면 55건의 잡지기사와 2500여 건의 신문기사가 나오는데, 대부분 1929년 10월 세계대공황 이후 세계와 조선의 경제 상황을 소개하는 기사다.

    “종로에는 ‘싸구려’ 소리가 늘어가고 신당리에는 빈민굴이 늘어가고, 농촌에는 유랑객이 늘어가고, 소작쟁의가 늘어가고 노동쟁의가 늘어가고 (중략) 자본주의 세계도 이제는 최후의 고비를 넘고 있는 모양이다. 1929년 말 환희의 절정에 있던 미국을 엄습한 취인소 대공황을 비롯하여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공황이란 수렁에 빠진 지가 벌써 3년을 지났건만 아직도 아무런 서광이 보이지 않는다.”(‘동광’ 1931년 12월호 ‘1931년의 총결산, 세계공황 1주년 개관’)

    ‘만보산’을 검색하면 ‘불상사를 일으킨 만보산 사건의 진상’(‘별건곤’ 1931년 8월호) 등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한국 근대의 ‘흑역사’를 읽을 수 있고, ‘세계대전’을 검색하면 ‘예언? 제2차 세계대전! 언제 대전이 일어나나? 그 상대국은 어느 나라?’(‘동광’ 1931년 11월호) 등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공포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10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까지 드리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설문조사 형식으로 진행된 이 기사에서 10년 후 일본 대(對) 중국, 미국이 대전을 벌일 것이고 대전 발발 시 독일은 중립, 이탈리아는 일본편, 영국은 중립, 러시아와 사회주의권,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편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등 실제 역사와 동떨어진 예측을 한 당대 지식인들의 ‘헛다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사람과 역사책에서 배운 사건의 ‘실물’이 궁금한가. 무엇이든 일단 검색해보자. 역사 인물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오늘 아침 신문기사가 어떻게 역사로 남을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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