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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여객기 피격…러시아 고립 그림자

말레이기 추락 우크라이나 반군 소행 유력…서방국가 푸틴 압박 강도 높여

  • 김기용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kky@donga.com

여객기 피격…러시아 고립 그림자

누군가는 분명히 발사 버튼을 눌렀다. 발사된 미사일은 순식간에 10km를 날아올라 평화롭게 하늘을 날던 여객기를 격추했다. 7월 17일 오후 12시 15분(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말레이시아 항공 MH-17 여객기는 이륙 5시간 만에 비극을 맞았다. 낯선 이국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승객과 승무원 298명은 전원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이 발생한 뒤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누가 미사일을 쐈는지, 발사된 미사일은 부크 지대공 미사일(SA-11)인지 아니면 전투기에서 쏜 공대공 미사일(R-60)인지, 왜 민간 여객기를 격추시킨 것인지…. 마땅히 규명해야 할 진실을 앞에 두고 서방 세계와 러시아는 서로 ‘상대방 짓’이라며 공방을 벌인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이 한편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장악한 친(親)러시아 무장 세력과 같은 편이다. 이들의 대결 구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비행기 격추 희생자는 민간인 여성”

우크라이나 정부와 미국, 유럽연합(EU)은 이번 피격 사건에 러시아가 깊이 개입했다며 증거를 들이대고 있다.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7월 20일 NBC, CNN, CBS, ABC, 폭스뉴스 등 5개 미국 방송에 연이어 출연해 “이번 사건에 러시아가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엄청나게 많다”며 강력한 추가 제재를 공언했다. 이어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케리 장관은 “불과 몇 주일 전 전차와 포대, 각종 로켓 발사대, 무장 병력 수송 수단 등을 실은 차량 150대가 러시아에서 동부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다. 우리가 입수한 영상자료에 따르면 반군은 여객기 격추 사고 직전 SA-11 미사일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 직후 미사일 발사대를 러시아로 다시 가져가는 동영상도 확보했다”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러시아가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이 왔다”면서 “러시아는 (여객기를 격추한) 반군을 지원하고 무장하게 했으며 훈련시켰다”고 비난했다.



케리 장관은 또 “미국 정보기관이 확보한 영상자료에 따르면 (여객기가 격추된) 당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미사일이 발사됐고 궤적 추적을 통해 이 미사일이 여객기를 격추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동안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한 유럽 일부 국가에 경종(wake-up call)이 되기를 바란다”며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추락 이튿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사건이 반군 소행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도청자료 2건을 공개했다. AP통신 등은 도청자료에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 소속 대원과 러시아 정보장교 등이 여객기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며 나누는 대화가 담겼다고 전했다.

첫 번째 도청자료에서 우크라이나 반군은 “비행기가 격추됐다. 첫 번째 발견된 희생자는 민간인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1시간쯤 뒤에는 “이 항공기는 거의 100% 민간 항공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도청자료에서는 반군 사령관이 러시아군 정보장교에게 반군 부대가 항공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다. 반군 사령관은 “기뢰부설 부대가 항공기 1대를 격추했다”면서 “격추된 항공기를 조사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대원들이 나가 있다”고 러시아 정보장교에게 알렸다. 잠시 후 반군 소속 대원은 “민간 여객기가 맞다. 여성과 아이들이 가득하다”면서 “도대체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우크라이나에서 뭘 하고 있었던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SA-11 발사대가 미사일을 쏜 뒤 러시아로 복귀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러시아도 가만있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여객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군 총참모부 작전총국 국장(중장)은 모스크바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여객기가 추락한 날 오후 5시 6∼21분 미국의 로켓 발사 포착용 위성이 우크라이나 동부를 비행하고 있었다”면서 “미국은 이 위성이 촬영했을 사진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사고 직전 러시아 공중 감시망에 우크라이나 수호이(Su)-25 전투기가 3∼5km 떨어진 근거리에서 여객기를 따라 비행한 사실도 포착됐다”며 “전투기가 고도를 1만m로 높여 여객기를 공격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Su-25 전투기에는 최대 12km 거리의 목표물을 명중할 수 있는 공대공 미사일 R-60이 장착돼 있다.

러시아는 또 “부크 지대공 미사일은 우크라이나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르타폴로프 중장은 우크라이나 미사일과 레이더 시스템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정부군의 공격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사고 당일 여객기 운항 방향을 따라 미사일들이 집중 배치됐다가 그다음 날 상당수가 사라졌다”면서 “반군에는 전투기가 없는데 왜 정부군이 방공 미사일을 배치했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제시한 도청자료에 대해 반군은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군 지도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카프타라제는 “반군 대원들이 그런 대화를 나눴을 리 없다”면서 “비전문적인 선동전의 일환”이라고 반박했다. 또 반군들은 고도 10km 항공기를 격추할 만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실제로 그런 미사일을 사용했다면 무식하게 통화내용에 나온 것과 같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케리 장관이 언급했던 반군의 부크 미사일 사진에 대해서도 “발사대에 적재된 미사일 4기 중 1기가 없는 이 사진은 정부군 지역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한 걸음 물러서는 모양새

서방의 총공세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일단 한 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피격 사실을 시인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수습한 시신을 네덜란드에 보냈고, 회수한 블랙박스도 영국 항공조사국(AAIB)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각국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7월 21일 크렘린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말 반군 진압작전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반군을 두둔했다. 러시아의 정치분석가 미하일 레미코프 씨는 “반군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푸틴의 전략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크림반도의 안정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부인 전략’은 서방과의 관계를 냉전 이래 최악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율리 니스네비치 러시아 고등경제대(HSE) 교수는 “지금 러시아와 서방은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서방이 러시아에 이란식 고립정책을 펼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948호 (p52~53)

김기용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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