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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 경제 부실기업 뇌관

‘3D·3H 위기설’ 실체 있나

금융권 안팎서 ‘동양’ 다음 기업으로 회자…선제적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필요

  • 이상훈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3D·3H 위기설’ 실체 있나

‘3D·3H 위기설’ 실체 있나

미국 터코마에 있는 현대상선 컨테이너 전용터미널 ‘WUT’에 컨테이너선이 접안하는 모습.

웅진, STX, 동양….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중견그룹 위기’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 그룹 모두 수년 전부터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연이어 쓰러질 줄은 전문가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10월 17일 코스피지수가 장중 한때 2050선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중견그룹들에는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업이익은커녕 당장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를 어떻게 넘길지가 더 걱정이다. 벌써부터 재계와 금융시장에서는 “다음에 쓰러질 곳은 어디냐”를 두고 몇몇 그룹 이름이 오르내린다. 전문가들은 당장 몇 개 기업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기업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보다 중견그룹이 영위하는 건설, 조선, 해운, 항공 등이 수년째 부진에 빠진 점을 더 심각하게 본다. 한국 경제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이들 기업의 위기는 곧 우리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양 등 동양그룹 계열사 5곳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른바 ‘3D·3H’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3D는 동양, 동부, 두산그룹을, 3H는 한화, 현대, 한진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이 얘기는 그야말로 시장에서 떠도는 것이라 과장이나 억측이 많이 포함된 게 사실이다. 또 이들 그룹 가운데 일부는 실제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이들 그룹을 한 묶음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동양 등 유동성 위기를 겪은 다른 회사들과 두산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같은 프레임으로 묶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잘라 말했다.

“수년 전부터 어렵다” 우려 목소리



한화그룹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144%에 불과하다. 아울러 현금유동성, 이자보상배율 등에 전혀 문제가 없다. 태양광 사업도 이미 저점을 찍었다. 펀더멘털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한화 주가가 계속 오르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일축했다. 한마디로 도매금으로 한화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한진그룹 관계자도 “부채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업종 특성을 감안하면 특별한 게 아니다. 항공업종의 현금유동성은 다른 업종이 추종하기 힘들 만큼 풍부하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위기론이 나온 곳은 동부그룹이다.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한 뒤 반도체 사업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계열사 동부제철은 2007년 전기로 설비에 1조 원 넘게 투입하면서 차입금이 늘었고 지금까지도 그룹 전체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동부제철이 내년 6월까지 막아야 할 단기성 차입금은 1조27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3년간 이 회사는 3011억 원의 누적 순손실을 입었다.

동부건설은 6월 기준 부채비율이 499.4%에 달했고 건설 경기침체로 현재까지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LIG투자증권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동부그룹에 대해 ‘철강 부문은 실적이 부진하고 건설은 미수금이 계속 쌓이며 전자 부문은 재무구조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부제철이 이달 초 발행한 회사채 금리는 연 9.5%.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CP) 금리가 연 8%대인 점을 감안하면, 자금 조달에 따른 부담이 그만큼 큰 셈이다.

올해 말 237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동부제철은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에 회사채 신속인수제 신청 의사를 10월 17일 전달했다. 신속인수제에 들어가면 회사가 만기상환용 회사채를 발행했을 때 산업은행이 80%를 떠안아주기 때문에 기업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3D·3H 위기설’ 실체 있나

동부제철이 2009년 11월 11일 충남 당진군에 전기로 제철공장을 완공했다. 연간 30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이 공장은 전기로 제철소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동부그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증권가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LIG투자증권이 최근 리포트에서 부채비율이 높은 대기업 5곳 가운데 동부그룹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하자 동부그룹 측이 발끈한 것. 동부그룹은 “차입금의 3분의 2가 은행 대출인 데다 CP는 거의 없어 동양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LIG 측에 항의했다. 일각에서는 2011년 사기성 CP 발행으로 오너 일가가 구속된 LIG그룹의 계열사가 이 같은 지적을 한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동부그룹 측은 “동부제철의 경우 현금 보유 상황 및 창출 능력만으로도 내년 말까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는 충분히 충당할 수 있고, 동부건설 또한 자산과 계열사 매각을 통해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더욱이 동부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순환출자 고리가 없는 독립적인 사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특정 계열사에서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계열사나 그룹 차원으로 확산될 위험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서둘러 진화에 나서

‘3D·3H 위기설’ 실체 있나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가 인수한 보브캣 체코 공장.

두산그룹은 수년간 굵직한 인수합병(M·A)과 건설, 인프라코어 등의 재무상황 악화로 위기설이 제기되는 곳이다. 특히 두산그룹은 올 연말까지 2250억 원, 내년 상반기(1~6월) 중 3250억 원의 회사채 만기상환을 해야 한다. 최근 부담을 다소 덜었다지만, 2007년 인수한 미국 보브캣(Bobcat)에 따른 부담이 지금까지도 그룹 곳곳에 남아 있다.

두산그룹은 계열사 전체를 짓누르던 재무부담을 계열사 간 출자로 풀어가고 있다. 두산건설은 4월 유상증자를 통해 계열사로부터 30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출자받았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규모만 5300억 원에 달해 위기설이 터진 데 따른 고육책이었다. 사옥까지 매각하는 강수를 둔 덕에 최근 들어서는 우려가 다소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두산그룹 측은 “두산건설의 경우 업종 특성상 연말에 몰리는 공사대금 등을 계산하면 남은 회사채보다 6000억 원 이상 더 많아 유동성 위기라고 말할 수 없다. 보브캣의 경우도 최근 미국 주택시장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흑자로 전환하는 등 호조를 보여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진그룹과 현대그룹은 부채비율이 각각 437.3%, 404.1%로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부채비율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한진그룹의 경우 항공, 해운업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 특성상 항공기와 선박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부채를 많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각각 1088%, 775%에 달한다.

현대그룹은 주력인 현대상선이 2011~2012년 영업적자 8382억 원을 기록하며 위기감에 휩싸였다. 금융당국에 회사채 신속인수를 신청해 숨통은 텄지만, 업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만큼 위기가 해소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대그룹 측은 “세계 해운업계가 불황이라 현대상선이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회복 기미를 보인다. 올 3분기 10분기 만에 흑자를 냈다. 3분기까지 손실액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라 내년에는 흑자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은 야심차게 추진하는 태양광 사업에서 아직까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 한화케미칼은 올 상반기 한화생명 주식 1700만 주를 매각한 데 이어 최근 서울 중구 소공동 한화빌딩을 한화생명에 1255억 원에 팔았다. 한화건설도 7월 한화생명 지분을 담보로 차입한도를 설정해 자금줄을 마련했다.

금융시장에서 계속 “다음 타자는 어디냐”는 말이 돌자 금융당국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10월 14일 전국 18개 시중은행의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들을 급히 불러 동양그룹 사태 이후 금융권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은 “은행 여신이 있는 주채무계열 대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당장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만한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동양그룹은 은행 감시를 받지 않으려고 회사채, CP 등 시장성 차입금을 대거 발행했다가 문제가 된 것이고, 다른 그룹과 금융회사들은 그 정도 상황까지 가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이 같은 메시지에 동의하는 분위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한 시중은행 전략 담당 부행장은 “기업들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까지, 부도가 나기 전까지 자기에겐 문제가 없다고 한다”며 “나는 괜찮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회사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웅진, STX, 동양 등 최근 문제가 된 그룹 모두 법정관리 등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 스스로 경고음을 듣지 못했다.

대기업 재무건전성 예상 외로 심각

‘3D·3H 위기설’ 실체 있나

한화그룹은 2010년 8월 태양광 회사인 솔라펀파워홀딩스를 4300억 원에 인수하고 태양광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내 대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자산 상위 30대 그룹이 올 하반기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총 80조94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내년 말까지 1년여 동안 30대 그룹이 막아야 하는 회사채 규모는 28조9600억 원. 동양그룹처럼 30대 그룹 소속 증권사가 발행한 그룹 계열 회사채 및 CP는 52조 원에 이른다.

대기업도 이 수준인데 중소기업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대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증자 등을 통한 이른바 ‘직접금융’을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자금의 98.8%를 은행권 대출 등을 통해 마련한다. 직접금융을 통해 받은 자금은 회사가 웬만큼 어려워지기 전에는 내부자본으로 내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위기 때 버틸 힘이 된다. 말 그대로 ‘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은 대출이기 때문에 회사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은행에서 회수해가기가 쉽다. 일각에서는 ‘비 오는 날 우산 뺏기’라며 비판하지만 은행으로서도 위험 관리는 필수적이다. 요즘처럼 대기업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 은행권은 고삐를 바짝 죌 수밖에 없다. 불똥이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으로 튀는 구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다음 타자가 누군지 찾기 전에 제2 동양그룹이 나타나지 않으려면 선제적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양그룹에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09년에는 산업은행의 주채무계열 관리 하에 재무구조를 개선할 여지가 있었고 최근까지도 동양매직, 동양파워, 계열사 골프장 등을 매각할 기회가 남았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은 매각에 제동을 걸었고, 모자란 자금을 마련하려고 회사채와 CP를 발행했다. 금감원을 비롯한 감독당국은 부실 그룹이 시장성 차입금을 개인투자자들로부터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사실상 방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워진 기업이 나왔지만, 정부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 대신 은행 대출 만기 연장, 산업은행 등을 통한 자금 지원 등을 선택했다.

늦어지는 구조조정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진다. 동양그룹처럼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그 부담은 은행, 정부 등 누군가가 져야 한다. 기업이 쓰러져 금융건전성이 악화되면 한국 경제 전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게 마련이다. ‘3D·3H’라는 말이 오르내리는 것을 당국이 한가하게 구경만 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주간동아 909호 (p16~18)

이상훈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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