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2

2013.04.08

1000원권 ‘계상정거도’ 졸렬한 가짜에 왜 침묵하나

엉성한 표구·아마추어 그림 솜씨 등 누가 봐도 진위 파악 가능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4-08 11: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00원권 ‘계상정거도’ 졸렬한 가짜에 왜 침묵하나

    1 가짜 ‘계상정거도’.

    필자는 2008년 5월 20일 출간한 책 ‘진상 :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에서 1000원권 뒷면의 그림 ‘계상정거도’(그림1)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 5일엔 서울대 학술행사로 ‘천 원권 뒷면의 정선 그림 계상정거도(보물 제585호) 왜 가짜인가’를 주제로 공개 강의를 했다. 2009년 11월 14일 서울대 한국미술연구센터 학술대회에선 ‘조선서화 감정과 근거 자료의 운용’이라는 논문으로 ‘계상정거도’가 가짜임을 거듭 증명했다. 두 번의 강연 동영상은 서울대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2010년 9월 15일 ‘계상정거도’를 수록한 ‘퇴우이선생진적’을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근거는 “휴대용 형광 X선 분석기로 낙관과 지질 검출 성분 등을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이는 과학감정이 아니다. 국민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정선(1676~ 1759) 작품의 진위를 감정해줄 과학기기는 없다. 과학 감정은 과학적 사고의 바탕 위에서 과학기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서화 감정에서 과학기기는 전문 감정가의 감정 지식을 근거로 보조적으로 써야 한다.

    실경과 다르게 그려진 그림

    ‘계상정거도’를 둘러싼 진실 왜곡은 문화재청뿐이 아니다. 미술사가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2008년 5월 21일자 ‘국민일보’ 기사에서 필자가 도판만으로 감정한 것에 대해 “감정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이 돼 있지 않은 행태”라고 비판했다. 사실 ‘계상정거도’는 도판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매우 졸렬한 가짜다.

    1000원권 지폐 도안 선정은 누가 봐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도안 선정 과정에서 ‘계상정거도’ 실물을 공개하지 않았다. ‘계상정거도’는 오랫동안 전시된 적이 없다. 필자는 2009년 9월 8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붓으로 펼친 천지조화’전에서 ‘계상정거도’를 수록한 ‘퇴우이선생진적’의 전부를 봤다. 역시나 수준 낮은 위조자의 허접한 가짜였다.



    가짜 ‘계상정거도’는 실경과 다르게 그려졌다. 이 교수는 정선이 그린 실경산수라는 점을 증명하려고 가짜 ‘계상정거도’와 비슷한 실경 사진을 교묘히 조작했다. 이를 먼저 2008년 5월 26일 MBC TV ‘생방송 화제집중’ 2530회에 출연해 제시했고, 다시 지난해 9월 11일 K옥션 가을경매 도록에서 제시했다(그림2). ‘퇴우이선생진적’은 위험을 무릅쓴 이 교수의 노력에 힘입어 34억 원에 낙찰됐다.

    이 교수의 교묘한 조작은 구체적으로 뭘까. 그가 제시한 사진(그림2)에는 ‘계상정거도’ 그림의 핵심인 도산(陶山)과 도산서원이 없다. 도산을 뒤로하고 찍은 것이다. 필자가 도산을 답사한 결과, 이 교수는 석간대(石澗臺)를 마치 도산처럼 보이게 조작했다(그림3). 도산서원이 2007년 3월 5일 언론에 공개한 도산과 서취병의 실경 사진(그림4)을 비교해도 바로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독자도 필자처럼 문화재청이나 이 교수의 거짓된 행태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여기서 ‘퇴우이선생진적’의 원 소장가가 필자의 주장을 반박한 글을 보면 ‘계상정거도’가 가짜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1000원권 ‘계상정거도’ 졸렬한 가짜에 왜 침묵하나

    2 2012년 9월 11일 K옥션 가을경매 도록에 실린 사진. 3 ‘그림2’에 제시된 실경을 필자가 찍은 사진. 4 2007년 3월 5일 도산서원이 언론에 공개한 도산과 서취병의 실경 사진.

    2008년 8월 15일 원 소장가는 ‘퇴우이선생진적첩의 제고찰’에서 ‘퇴우이선생진적’은 “아무런 수리 흔적이나 변형된 부분을 찾아볼 수 없고 그 원형 모습을 잘 간직한 작품”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정선의 둘째 아들 정만수(1710~1795)가 이황(1501~1570)과 송시열(1603~1689) 글씨만 가지고 새로 ‘퇴우이선생진적’을 꾸몄다. 둘째, 새로 꾸민 ‘퇴우이선생진적’의 빈 면에 정선이 그림을 그렸다. 셋째, 정만수가 새로 꾸민 ‘퇴우이선생진적’에 글을 썼다. 넷째, 새로 꾸민 ‘퇴우이선생진적’ 표구는 합당하다.

    원 소장가의 주장처럼 ‘퇴우이선생진적’이 정만수가 꾸민 표구라면, 정만수가 쓴 글의 위치는 예(禮)에 맞지 않는다(그림5). 정만수의 글은 반드시 아버지 정선의 그림과 아버지 친구인 이병연(1671~1751)의 글 다음에 있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아들이 아버지 글이나 그림 앞에 글을 쓰는 경우는 없다. 이러한 표구는 예절과 법도를 신경 쓰지 못한 위조자의 짓이다.

    문화재청과 학계의 거짓 방조

    1746년 정만수가 꾸민 표구는 어땠을까. 정선에게 ‘퇴우이선생진적’은 지극한 보물 중에서도 최고 보물이었다. 당시 정선의 화첩 한 벌 값은 거의 작은 집 반 채 값과 맞먹었다. 그만큼 정선은 표구를 최고급으로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정만수가 꾸민 표구는 그 수준이 1745년 표구한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그림6)과 비슷했을 것이다.

    한때 ‘퇴우이선생진적’을 소장했던 임헌회(1811~1876)는 1872년 쓴 글에서 “정선 이후로 몇 사람을 거쳐 자신의 소장품이 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미 표구가 여러 번 바뀌었음을 짐작게 한다.

    ‘퇴우이선생진적’ 표구는 조잡하다. 원 소장가는 “인곡정사와 사천 이병연의 제시, 그리고 다음 장의 두 면은 배접이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이는 원 소장가 스스로 현재 표구 상태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4폭 정선 그림의 표구는 3종류다. ‘계상정거도’는 일반적이고, ‘무봉산중도’와 ‘풍계유택도’는 원 표구에 다시 종이를 덧댔으며, ‘인곡정사도’는 원 표구에 그대로 그림을 그렸다. ‘퇴우이선생진적’은 이미 표구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계상정거도’만 ‘그림6’처럼 그림 그리는 면을 종이로 감쌌다.

    엉성한 표구 수준 못지않게 위조자의 그림 솜씨 또한 아마추어다. ‘계상정거도’를 그린 위조자는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 아닌, 그림을 보호하려고 둘러싼 부분에까지 그림을 그렸다(그림7). 초보자도 하지 않는 실수를 한 것이다. 이 교수는 마치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설명했다. 나아가 원 소장가는 이를 가리켜 “정선이 의도적으로 낙동강 물줄기를 온전히 표현했다”고 했다.

    왜 문화재청과 이 교수의 진실 왜곡은 계속되는 걸까. 학계 또한 진실에 침묵하면서 거짓을 방조하고 있다. 현대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기록의 시대’인데도 말이다.

    ‘퇴우이선생진적’ 안에서 이황, 송시열, 정만수의 글씨만 진짜다. 이를 제외한 정선의 그림과 이병연, 임헌회의 글씨는 가짜다. 구체적 분석은 ‘주간동아’ 다음 호(883호)에서 소개하겠다.

    1000원권 ‘계상정거도’ 졸렬한 가짜에 왜 침묵하나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