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2012.12.31

필드에서도 ‘손자병법’이 먹힌다

골프병법4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2-12-31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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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드에서도 ‘손자병법’이 먹힌다
    손자? 아들의 아들이 아니다. 중국의 유명 병법가다. 임금이 궁녀를 훈련하라고 하자, 임금의 애첩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 용감한 남자다. 미국 사관학교에서까지 그의 병법을 가르친다. 단순한 전쟁 지침서가 아닌, 깊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인간 처세술까지 포함하는 고전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기는 병신이 되지 말고 이겨놓고 싸우는 명장이 돼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전쟁이다” 등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그가 남긴 손자병법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전쟁을 하기 전에 계획하라’는 시계편(제1편), ‘전쟁은 오래 끌지 말고 빨리 끝내라’는 작전편(제2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모공편(제3편), ‘이길 수 있는 형세를 갖춰라’는 군형편(제4편), ‘한꺼번에 쏟아질 듯한 기세를 유지하라’는 병세편(제5편), ‘실을 피하고 허를 공격하라’는 허실편(제6편), ‘승리 조건을 갖춰라’는 군쟁편(제7편), ‘상황에 따라 변화하라’는 구변편(제8편), ‘적의 형세를 살펴라’는 행군편(제9편), ‘지형을 이용하라’는 지형편(제10편), ‘지형에 따라 전술을 바꿔라’는 구지편(제11편), ‘불로 공격하라’는 화공편(제12편), ‘첩자를 활용하라’는 용간편(제13편) 에 나온다.

    여기에 전쟁이란 용어 대신 골프라는 용어를 대입해보라.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적이란 말 대신 지형과 기상이란 말로 바꿔보라. 다 맞다. 화공편에서 ‘불로 공격하라’는 말은 ‘화끈하게 공격적’이란 말과 동의어다. 첩자라는 말 대신 정보라는 말을 넣어보라.

    골프를 하기 전에 계획하라. 이는 골프장과 동반자, 지형과 기상을 감안해 어떻게 즐길지를 머리로 그리는 것이다. 특히 처음 가보는 골프장의 경우 계획은 필수다. 골프는 몸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친다는 철학을 가진 친구가 있다. 이 녀석의 특기는 운동 전 모든 상황을 머리에 그리고 이를 메모해 각 홀의 특성과 공략법까지 예습하고 나온다는 것이다.

    전쟁 용어 대신 골프 용어 대입



    골프장에는 늘 한 시간 전에 도착한다. 옷을 갈아입고는 30분 동안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짠다. ‘핸디캡 1번 홀은 어딘가’ ‘그린 상태는 어떤가’ ‘벙커 밀도는?’ ‘페어웨이에서 공략할 지점은?’ 등 그 나름대로 정보 요소를 점검한 다음, 자기 컨디션을 확인하는 걸로 그날의 목표를 세운다. 그러고는 3번 홀까지 묵묵히 점검한 내용을 몸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그저 그 나름의 골프 습성이거니 했는데, 희한하게도 일상에서의 습관까지 이 모습을 유지한다. 잘 모르다가 함께 고스톱을 쳐보고야 알았다. 내가 하도 고스톱을 못 치니까 그 친구가 자신만의 비법을 알려줬다. “저놈은 피부터 먹는다” “저놈은 패가 안 좋으면 무릎을 떠는 습관이 있다” “저놈은 작은 걸 꼴아주고 큰 판에서는 무자비하게 ‘스리 고’를 부르는 놈이다”…. 판 전체를 읽고 분석해 제 나름대로 작전을 세워야만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가만히 듣다가 그 친구의 골프 습관을 떠올려봤더니, 손자가 말한 병법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아닌가. 각 홀마다 세컨샷 지점을 미리 정해놓고 티샷을 하는 것은 물론, 절대 욕심 내지 않고 안전하게 공략한다. 핸디캡 1번 홀에서는 무조건 보기를 하고, 동반자의 습성을 미리 알아 조언하든지 아니면 심리전을 쓰든지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는 말이 아주 명언이다.

    “김 도사, 게임은 이기려고 계획하는 것이지, 계획을 실천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무식한 친구는 계획 자체에만 매달려 전체 판을 그르친다네.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계획을 세워서 해보는 것, 이게 골프에서나 인생에서나 답이야.”

    군에서야 별 두 개로 끝난 친구였지만 인생에서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 전쟁이든 골프든 오래 끌지 말고 빨리 끝내라. 이것은 집중과 이완의 법칙이다. 동반자 중에는 지연플레이의 대명사가 있는가 하면, 설렁설렁 치는 녀석도 있다. 지연플레이하는 친구와 라운딩을 하는 날은 거의 대부분 플레이를 망친다. 연습 스윙 대여섯 번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자세를 잡았다가 다시 풀고 연습 스윙을 또 두어 번 한다. 그러고는 다시 자세 잡고 가만히 생각하는 것이다. 10여 초 자세만 잡고 있는 놈을 생각해보라. 숨이 턱턱 막힌다. 치겠지, 치겠지 하다가 지켜보는 사람이 지쳐버리는 것이다.

    몇몇 친구는 지연플레이를 하는 친구와는 아예 라운딩을 하지 않는다. 약속했다가도 그녀석이 나온다는 얘기가 돌면 아예 취소해버리는 것이다. 말로는 절대 고쳐지지 않는 습성이라, 한 번은 안 되겠다 싶어 아예 그날 라운딩은 망치기로 작정하고 다른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가 오늘 저놈보다 더 지연플레이를 할 테니 그런 줄 알아. 오늘 저놈 버릇을 확실하게 고쳐주자고. 늑장플레이가 어떤 건지 몸으로 깨닫게 해줄 테니, 그 대신 너희는 빨리 쳐라. 스코어는 불문이다.”

    하여 그날은 내가 그 녀석보다 더 느릿느릿 플레이를 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그놈 연습스윙 숫자를 세고는 그보다 두어 번 더 연습했다. 자세 잡고 10여 초 가만히 있으면 나는 15초 정도를 지연했다. 녀석이 느릿하게 따라오면 더 천천히 걸었다. 동작 풀고 다시 어드레스를 취하면 내가 그보다 한 번 더했다. 이렇게 9홀을 다 돌자 녀석이 엄청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예 골프가 안 되니 그럴 수밖에! 지연플레이는 상대가 더 늑장을 부리면 고쳐진다는 진리를 그날 터득했다. 그다음부터 녀석은 늑장을 부리지 않으려고 무지 애쓴다. 스코어는 잃어도 동반자는 구한 셈이다.

    한데 집중하지 않고 설렁설렁 치는 친구는 구태여 고쳐줄 필요가 없다. 직장이 갑이어서 접대골프만 받는 녀석이라 못된 버릇, 그중에서도 대충 쳐도 알아서 잡아주는 스코어 때문에 그렇게 습관이 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에 평생 그렇게 살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문제는 골프 습관이 처세술 습관으로 이어져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다른 일자리가 안 생긴다. 연금으로만 살아가는 ‘연금 푸어’ 인생이 돼버린 것이다. 무엇이든 오래 끌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생선은 석쇠가 불에 잘 달구어졌을 때 구워야지, 오래 두면 타든가 녹든가 둘 중 하나다.

    세 번째,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이것은 ‘주간동아’ 866호에도 소개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원칙 가운데 정보의 원칙을 뜻한다. 한 번 언급한 것이므로 사족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야 할 상식 하나. 보통 이 문구를 인용할 때 백전백승이라고 하지만 실은 백전불태, 즉 백 번을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닌,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 위태롭게 해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무식함을 드러내지 않길 바란다.

    네 번째, 이길 수 있는 형세를 갖춰야 한다. 백 번 지당한 말씀으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실행하는 데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형세란 무엇인가. 잠재된 에너지의 응축된 힘을 말한다. 터뜨리지는 않았으되 터뜨리면 무서울 것 같은 무언의 힘, 이것이 형세다. 손자가 말하길, 산꼭대기에서 큰 바위가 굴러떨어지기 직전의 상태가 형세다. 상대가 보기만 해도 질려버리는 상태, 이것이 형세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골프에서의 형세란 무엇인가. 그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실수한 다음에도 내면 에너지가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자랑 같지만, 내가 하도 잘 친다는 소문이 돌아 동기생의 부인이 도전을 해왔다. 그녀는 골프에 대해서만은 자신도 도사 소리를 듣는다면서, 도사끼리 한판 붙자며 도전장을 던졌다. 재미있게 라운딩을 했는데, 식사자리에서 이렇게 실토했다.

    “질려버렸어요. 아무리 미스샷이 나와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분명 ‘쪼루’가 나서 보기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린 온을 노리지 않고 그린 근처에 갖다놓는 것, 그리고 어프로치를 신경 써서 붙여 파를 하는 데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졌습니다. 그리고 잘 배웠습니다.”

    형세란 내 마음의 기세다. 18홀 내내 샷이 계속 잘 될 리 없다. 아무리 프로라 해도 10% 미스샷은 꼭 나온다. 이길 수 있는 기세란 미스샷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잠재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다. 마음이란 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고 몸은 마음의 보이는 부분이다. 둘 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유식하게 말하면 교호결합 상태인 것이다. 표면의 생각은 이긴다고 해놓고 본심으로 불안해하면 기세가 졸아들어버린다. 인생이나 골프나 같다. 잠재적 에너지는 나 자신이 만든다는 사실을 숙고하고 숙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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