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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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왜 개고기를 먹지 않나요?”

개고기 논쟁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9-10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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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18일자 ‘주간동아’ 이 지면에 “나는 개고기를 먹는다”라고 썼다. 그 칼럼의 주요 내용은 기왕이면 개고기를 깔끔한 식당에서 맛깔나게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무껍질 빛깔 나는 고기에 축축 처진 푸르뎅뎅하고 거무죽죽한 채소와 맛없어 보이는 육수, 게다가 냄비와 가스버너에는 묵은 때가 덕지덕지 앉아 있고 탁자와 방석에도 국물 자국이 선연하다. 실내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조명은 어둠침침해 불량한 느낌마저 주는 음식점이 많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 칼럼으로 나는 큰 곤욕을 치렀다. 욕설로 가득한 이메일과 쪽지를 수도 없이 받았다. 개고기 먹는 미개한 인간이라고. 애완동물 관련 인터넷 카페에 내 칼럼을 올려놓고 그 아래에 온갖 욕설의 댓글을 붙이기도 했다. 단지 깨끗하고 맛깔 나게 개고기를 먹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천하에 없는 몹쓸 인간’으로 매도돼 큰 두려움을 느꼈다. 인민재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여름이면 개고기 식용 찬반 논쟁이 있었다. 끼어들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 곤욕을 또다시 치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머리는 늘 개고기를 주제로 한 논쟁과 사색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내게도 정리할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인데, 바로 “왜 우리는 개고기를 먹지?” 하는 것이 화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처지 바꾸기를 해봤다. “왜 그들은 개고기를 안 먹지?” 하는 질문으로 생각을 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하기 편하게 ‘그들’을 개고기 비식용 서구인으로 상정했다. 그렇게 하여 흥미로운 해답(?)을 얻었다.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인간은 수백만 년을 온갖 짐승과 물고기, 벌레 등을 먹고 살았다. 먹고 탈이 나거나 죽지 않으면 무엇이든 먹었다. 그러다 어느 특별난 지점에서 특정 환경에 놓인 인간이 몇몇 짐승과 물고기, 벌레 따위를 먹는 것을 금기시하기 시작했다. 먹어도 탈이 나거나 죽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도 이를 먹지 않게 된 까닭이 무척 흥미롭다. 풀어 말하면, 탈이 나거나 죽지 않는 온갖 짐승과 물고기, 벌레 따위를 먹는 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생리상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라 할 수 있고, 오히려 특정 짐승과 물고기, 벌레 따위의 식용을 금기한 자체가 인문학적 관심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개고기 식용에 대해 논란이 이는 것 자체가 개고기 식용을 비정상적인 무엇으로 상정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 역의 설정이 좀 더 바른 인문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개고기를 먹는 우리에게 ‘왜 개고기를 먹나요?’ 하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왜 개고기를 먹지 않나요?’ 하고 질문하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올여름에도 여지없이 개고기 식용과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의 중심 의제는 똑같았다. “왜 우리는 개고기를 먹었고, 또 먹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어느 날 한 방송작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 논쟁에 말을 보태달라 해서 위 내용을 말했더니, “흥미롭다”고만 할 뿐 그 논쟁에 내 말을 집어넣지는 않았다.



    방송 관계자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내년 여름이면 또 개고기 식용이 논란거리가 될 것이 빤하다. 그때에는 처지 바꾸기를 시도해보라. 한국인이 프랑스에 가서 그들의 개고기 식용 금기 문화를 취재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여러 문화인사와 시민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렇게 물으면 좋겠다. “왜 개고기를 안 먹나요?” “프랑스인은 언제부터 개고기를 안 먹었을까요?” “왜 개고기를 안 먹게 됐을까요?” “앞으로도 계속 개고기를 안 먹을 건가요?” 그럴 자신이 없다면 우리에게도 “왜 개고기를 먹나요?”라고 묻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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