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3

2010.11.22

기적의 도서관 그 열정, 그 솜씨

‘감응(感應), 정기용 건축 : 풍토, 풍경과의 대화’전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11-22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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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도서관 그 열정, 그 솜씨
    고교 시절 미술에서 단 한 번도 ‘수’를 받아본 적이 없던 제가 미술 감상을 취미로 가지게 된 건 사회 초년병 시절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동료 덕분이었습니다. 기사를 마감한 후 동료와 미술관 나들이를 많이 했거든요. 딱히 유명 전시를 찾아다닌 건 아니고, 회사 인근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산책하듯 돌아다녔지요. 근데 동료는 전시 자체보다는 미술관 건물에 더 관심을 가졌어요. “재미있게도 건물과 전시는 참 많이 닮아 있어”라면서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2011년 1월 30일까지 열리는 ‘감응(感應), 정기용 건축 : 풍토, 풍경과의 대화’전을 보는 내내 ‘닮았다’는 말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 옛 사옥인 일민미술관과 건축가 정기용 교수(65·성균관대 건축대학원 석좌교수)가 평생 남긴 스케치, 모형, 사진은 물론 건축에 대한 그의 가치관까지 고스란히 닮아 있었거든요. 그 닮음은 바로 ‘건축물은 아름다운 피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점이죠. 정 교수는 2008년 펴낸 에세이집 ‘사람 건축 도시’에서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작하는 일이다. 즉 건축가 역시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닌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적의 도서관 그 열정, 그 솜씨

    제주 ‘기적의 도서관’ 스케치(위)와 사진.

    이런 생각은 정 교수의 주요 건축물인 ‘기적의 도서관’(순천, 정읍, 제주, 진해 등에 세운 도서관), 학교 시설(김제 지평선중·고교, 진주 동명중·고교 등), 무주 프로젝트(지역 공공건물을 지으면서 하나의 마을을 설계)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또 그는 건축물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고 이를 반영하고자 노력한 건축가였다고 해요. 특히 ‘기적의 도서관’을 지을 때 아이들이 최대한 편하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죠.

    정 교수는 건축가로서 참 별난 인생을 살았어요. 서울대 미대(응용미술)와 대학원(도예)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나 실내 인테리어와 건축, 도시계획을 전공했고, 프랑스 정부 공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죠. 그는 건축뿐 아니라 철학, 사회학, 교육학 등 인문학에 심취한 학자이기도 했어요. 건축에 대한 그의 가치관은 이런 삶의 궤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지요.

    이번 전시에는 정 교수가 청년 시절부터 최근까지 설계 작업을 위해 작성한 노트 60여 권과 스케치 및 드로잉 100여 점, 건물 모형 20여 점, 사진 80여 점, 도서 및 수집품 100여 점, 그리고 그의 작업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단편 애니메이션이 선보입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실에 빼곡히 정리된, 그의 손때 묻은 자료를 훑어보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인간과 삶에 대한 한 건축가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죠. ‘감응이 바로 이거구나’ 싶네요. 월요일 휴관, 무료. 02-2020-2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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