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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가까이하기엔 뜨거운 ‘改憲 생각’

여야, 친이-친박 개헌론 ‘동상이몽’… 정국 반전의 빅 카드 언제든 폭발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가까이하기엔 뜨거운 ‘改憲 생각’

가까이하기엔 뜨거운 ‘改憲 생각’

9월 14일 한나라당 여성 의원 오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는 친이계 의원들과도 회동을 갖는 등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확 달라졌다.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를 구분하지 않고 당 소속 의원을 만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초청한 10월 1일 청와대 한나라당 의원 만찬에도 참석했다. 광폭 행보의 시발점인 8월 21일 이 대통령과의 단독회동 이후 40일 만의 만남이다.

앞서 9월 28일에는 영남 및 수도권의 친이계 재선인 김재경, 김정훈, 김정권, 권경석, 신상진 의원과 친박계 김태환, 이종혁 의원을 만나 오찬을 했다. 전날에는 수도권의 친이계 초선의원 5명과 서울 강남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식사정치’를 놓고 친박계 한 의원은 “확실히 이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달라졌다. 활동 반경을 넓힌 것도 그렇지만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뭔가 깊숙한 얘기가 오갔던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대표가 친이계 의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자, 친이계의 좌장 격인 이재오 특임장관도 친박계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이 장관은 9월 28일 친박계 의원모임인 ‘여의포럼’ 회원 10명과 여의도에서 오찬모임을 가졌다. 이 장관은 2008년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박계 의원들을 ‘학살’한 주역으로 인식돼 있다. 그는 이날 “지난번에 섭섭한 점이 있었으면 오늘 맥주 한잔 마시고 잊자. 다 씻어버리자”고 했다. 한나라당 안에서 계파 화합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징후들이다.

그러나 정가에선 양 계파가 결코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차기 대선후보 문제를 둘러싼 알력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등 대권구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러 갈등요소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개헌 문제는 친이계 핵심에서 이미 공론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기 때문에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박근혜 前 대표만 침묵



개헌 필요성은 이 대통령은 물론,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안상수 대표 등 여권 주류의 핵심 인사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특히 당·정·청 가교 구실을 맡은 이재오 장관이 9월 1일 “개헌을 하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언급한 뒤 정가에서 개헌론의 불씨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 장관의 발언이 나오자 즉각 “정략적 개헌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개헌 문제의 논의가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화답했다.

여기다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인 한나라당 이주영, 민주당 이낙연,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9월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개헌 논의의 공론화를 시도했다. 이들은 “내년이 개헌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같은 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리더십이 대통령 1인에 집중될 때 대통령 본인이 불행해진다는 것이 65년의 역사”라며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 역시 15일 “어차피 헌법은 개정해야 한다”며 개헌 논의에 가세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 논의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국 운영의 실질적 캐스팅보트를 쥔 박 전 대표는 활발한 외부활동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 말이 없다.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친박계 차원에서 개헌론에 대한 의견을 단 한 번도 모아본 적이 없다. 박 전 대표의 입장도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공식 제의해온 것도 아니어서 우리가 입장을 정리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박 전 대표의 입장’이란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실험이 끝났으니, 이제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런 견해를 1998년 정계 입문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밝혀왔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는 공약으로 내걸었다. 말하자면 박 전 대표도 개헌론자인 셈이다.

그러나 개헌의 방향과 시점에 대해선 이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다. 현재 친이계가 주장하는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목적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다. 분권형 대통령제라고도 볼 수 있는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가 행정부의 권한을 나눠 담당하는 형태다. 이 장관은 “선진국으로 가면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고, 개헌·선거구제·정당제도·행정구역을 묶어 선진국형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의 임기 문제보다는 권력구조 개편에 분명히 방점을 찍은 셈이다.

바로 이 대목 때문에 현재 친이계가 제기하는 개헌론이 ‘박근혜 고립화’ 또는 ‘친이계의 집권연장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박근혜 고립화론’은 친이계가 개헌 논의의 주도권을 쥐고 정국을 이끌면 자연스럽게 대권가도의 주도권도 친이계가 가져갈 것이란 논리로 연결된다. 여기에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박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권력분산으로 힘을 뺄 수 있다는 판단이 보태졌다.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대 형성

가까이하기엔 뜨거운 ‘改憲 생각’

친이계 좌장 이재오 특임장관은 친박계 의원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앙금을 풀어가고 있다. 9월 28일 친박계 ‘여의포럼’모임 의원들과 오찬모임을 갖는 이 장관.

친박계 한 의원은 “지금 친이계가 개헌 주장을 하는 것은 큰 틀에서 보면 박 전 대표를 외톨이로 만들려는 시도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친박계 중진인 허태열 의원은 “개헌은 집권 초에 할 일이지 후반기에는 어려운 과제”라며 “지금 대선이 눈앞에 와 있는데 대선과 대통령제도에 포인트를 맞춰서 이러고저러고 한다는 것은 실현도 불가능하고 정략적으로 보여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유기준 의원도 “시기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차기 대선을 겨냥한 개헌은)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정현 의원은 “개헌은 정권이나 정파, 특정인이 추진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 개헌이 돼야 한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친이계의 집권연장책론’은 야당에서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미끼로 보수세력을 결집해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정권 연장의 술책인 여권의 개헌 시도에 야권이 야합하는 행위가 있다면 민주세력의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MB정부 아래서 개헌은 정치 선진화를 빙자한 권력 나눠먹기”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치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지만 시기와 방향에 대해선 정당별, 계파별로 ‘동상이몽’에 빠진 모습이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이 장관도 최근 개헌 관련 언급을 삼간 채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강조한 ‘공정 사회’ 화두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차기 대선을 둘러싼 역학관계, 특히 여권 내 친이계와 친박계의 주도권 경쟁이 서서히 시작되는 만큼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헌론은 수시로 돌출될 ‘변수’임이 분명하다. 개헌 논의는 정국을 일순간에 반전시킬 수 있는 빅 카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헌론을 놓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정치생명을 건 마지막 혈전을 벌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10.10.04 756호 (p18~19)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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