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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살맛나는 밥상 02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순창고추장 ‘우리쌀’ 광고 큰 효과…CJ 고춧가루 맛으로 진검승부 다짐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고플 때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밥찬. 하지만 요즘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음식은 식품기업이 만든 제품이거나 그것을 재료로 한다. 밥, 고추장, 참치, 조미료, 식초, 두부, 우유 등. 닭과 쇠고기도 브랜드마다 맛과 가격이 천차만별. 이 식품들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 시장점유율을 높이고자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고소, 고발도 서슴지 않고 베끼기와 꼼수가 판치는 마케팅 현장은 칼만 안 든 전쟁터나 다름없다. 과연 누가 시장의 지배자일까? 치열한 ‘식품 마케팅’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주간동아’가 맛의 전쟁터로 갔다.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나이 마흔 넘은 사람이나 시골에서 자란 젊은이라면 어릴 적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집에서 고추장 만들던 광경이 기억창고에 저장돼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들어가 첨벙거려도 될 만큼 큰 그릇 또는 장독 뚜껑에 고춧가루와 엿기름, 메줏가루, 찹쌀가루, 소금을 넣어 휘휘 젓던 모습. 연신 손가락으로 찍어 간을 보면서 고춧가루와 소금을 흩뿌리던 어머니가 “너도 넣어보련” 하면 고사리손으로 소금을 움켜쥐고 뿌려보곤 했다. 찹쌀이 귀한 집에선 고추장에 멥쌀가루, 밀가루를 넣기도 했고 보릿가루를 넣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이처럼 고추장을 직접 담가먹는 집은 드물다. 집 앞 슈퍼와 마트에도 각 식품기업에서 생산한 고추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대량생산 고추장이 수제 고추장을 밀어낸 시점은 1990년대. 떡볶이가 국민 간식이 되고 비빔밥 등 매운맛 나는 음식이 대인기를 끌면서 고추장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삼원식품(해찬들의 전신)과 진미식품 등 중소기업이 이끌던 고추장 시장에 대기업인 대상이 들어온 시점도 바로 그때다. 대상의 순창고추장은 1989년 ‘고추장 명가 전라도 순창에서 생산한 전통적인 맛’을 강조하며 국내 최초로 고추장 광고를 TV에 내보냈다. 파상적 마케팅의 결과, 1994년에서 96년까지 순창고추장은 삼원과 진미가 양분했던 시장의 45%를 점하며 시장 1위에 올랐다.

만년 2등 순창 고추장의 반란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대형마트 순창 ‘우리쌀 고추장’ 매대.

이런 순창고추장의 브랜드 파워를 꺾고 고추장 시장의 절대강자가 된 브랜드는 삼원식품의 ‘해찬들’이었다. 1995년 순창고추장의 광고 공세에 맞서 신당동 떡볶이 할머니를 TV광고에 등장시킨 게 주효했다. “고추장 만드는 비법은 며느리도 몰라”라고 했던 바로 그 광고. 제품명에 ‘태양초’를 넣고 ‘한국인의 매운맛’을 강조하며 이휘향, 최명길 등 톱 배우가 총출동해 CF 릴레이를 펼친 결과, 해찬들의 ‘태양초 고추장’은 다시 1등 자리를 탈환했다. 고추장의 본질인 매운맛에 승부를 건 것이었다.

이후 해찬들의 ‘태양초 고추장’이 고추장 시장을 평정했다. 순창고추장도 제품명에 태양초를 넣고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심혜진, 차승원 등을 쓰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해 2004년 말부터 2006년까지 ‘반짝 1위’를 한 적이 있지만, 2005년 해찬들 브랜드를 완전 인수한(2000년 지분 50% 인수) CJ제일제당(이하 CJ)은 태양초 고추장 전쟁의 패권을 2007년 다시 찾아왔다.



근 15년간 잠잠했던 고추장 시장을 뒤흔든 주인공은 만년 2등 순창고추장이었다. 지난 7월 말 순창고추장의 제조판매원인 대상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2009년 5월 출시한 ‘태양초 우리쌀로 만든 찰고추장’이 지난 2월과 5~6월 시장점유율 1위를 했다고 밝히면서 CJ의 해찬들 고추장에 선전포고를 했다. 실제 대상의 순창고추장 시장점유율은 시장조사기관인 닐슨의 판매액 조사 기준으로 올 2월 46.3%(CJ 45.3%), 5월 45.3%(44.8%), 6월 46.8%(44.8%)로 해찬들 고추장을 근소한 차로 앞섰다. 7월에도 47.2%(45.8%)로 CJ의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을 앞섰다. 대상 측은 “경쟁사 제품보다 가격이 20% 높은데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사실이 더욱 괄목할 만하다. 고추장 시장에서 대상의 이 같은 선전요인은 ‘우리 쌀 고추장’에 대한 소비자의 꾸준한 신뢰”라고 밝혔다.

이처럼 순창고추장이 시장 판세를 바꾼 데에는 ‘우리 쌀’ 마케팅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5월 대상은 기존 태양초 고추장 대신 ‘태양초 우리쌀로 만든 찰고추장’을 내면서 가격을 20% 올렸다. 지금껏 원재료에 들어가던 밀가루를 전량 쌀로 바꾸면서 가격 상승요인이 생긴 것. “쌀가루가 들어가면서 차진 맛이 더해졌다”며 입에 착착 붙는다는 의미로 ‘착착’이라는 키워드를 광고에서 메인카피로 사용하고 ‘착착송’도 만들었다. 당시 대상은 이효리를 CF모델로 영입해 버전을 바꿔가며 대대적인 방송광고를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2009년 하반기(7~12월) 시장점유율은 CJ가 49.9%, 대상이 42.7%로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닐슨 기준).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순창의‘우리쌀 고추장’최초 광고. 이효리를 모델로 내세웠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순창고추장의 시장점유율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시점은 올해 초 해찬들의 ‘태양초 고추장 골드’를 타깃으로 한 네거티브 광고를 쏟아내면서부터였다. 비록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광고를 본 누구나 부정적인 이미지의 ‘밀가루 고추장’이 CJ의 해찬들 고추장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트에서 고추장을 고르던 주부가 “네? (고추장에) 밀가루가 들어가요?”라며 흠칫 놀라며 “지금까지 밀가루 고추장을 사먹었는지는 진짜 몰랐어요”라고 말하거나(CF ‘주부’ 편), 장을 담그던 할머니가 “고춧가루보다 많이 들어가는 것이 쌀인디 거기다 밀가루를 처넣으면 되겄냐! 저리 가, 저리 가”(CF ‘욕쟁이 할머니’ 편)라고 신경질을 부리는 광고가 대표적이다.

우리 전통 고추장에는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또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 광고는 소비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대상은 ‘주부’ 편 광고를 시작으로 ‘할머니’ 편, ‘생활회화’ 편, ‘기체조’ 편 등을 잇따라 내보내며 고추장 시장을 ‘밀가루 고추장’ 대 ‘우리 쌀 고추장’으로 양분시켰다. 시장점유율이 올라가자 대상은 “시장점유율이 CJ를 앞선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올 3월까지 평균 10% 이상 앞선다”라고 밝혔다. 실제 올 6월 초 대상의 고위간부가 발표한 ‘순창고추장의 성과와 미래’라는 문건에는 TNS CPS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자료가 나와 있는데,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고추장 광고가 너무해!

문제는 이 데이터가 국내 식품기업과 언론이 시장점유율 조사 잣대로 주로 이용하는 닐슨 RI(Retail Index)가 아니라는 점. 닐슨 RI는 전국 9만여 개 유통채널(대형할인마트, 백화점, 단위슈퍼, 작은 규모 골목가게 모두 포함) 중 지역과 규모에 따라 2000개의 샘플을 뽑아 점포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이 데이터에 포함되는 반면에 TNS의 CTS(소비자 패널) 데이터는 3000명의 소비자패널을 뽑아 그들이 스스로 밝힌 상품 소비 히스토리를 추적하는 방식. 따라서 해당 소비자의 기억과 의지에 따라 정확성이 달라질 수 있고, 무엇보다 3000명의 소비자 패널이 전 국민 5000만 명의 소비 패턴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닐슨 기준으로 하면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 누계는 CJ 해찬들(47%)이 대상의 순창고추장을 앞선다.

대상의 이런 파상적 공세 속에서도 “네거티브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라며 팔짱을 끼고 있던 CJ 측은 올 들어 넉 달째 시장점유율에서 밀리자 지난 8월 처음으로 적극적인 대응방침을 밝혔다. CJ 관계자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 시장점유율에서 몇 달간 밀렸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광고 마케팅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고추장의 맛, 즉 제품 본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대상 입장에선 효과적인 광고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밀가루를 마치 먹으면 큰일 날 독극물처럼 취급하며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식품자원에 대해 근거 없는 공포감과 혐오감을 조성하는 것은 식품기업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1 순창의 파상 공격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넉 달간 내놓은 CJ 해찬들 고추장. 최근 태양초 함량을 100%로 올렸다. 2 밀가루 대신 멥쌀을 넣어 만든 대상의 순창고추장. 자사 제품에 2009년 초까지 밀가루를 넣었으면서도 ‘밀가루 고추장’을 공격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상의 고추장 광고에 나온 말은 모두 사실일까. 대상의 고추장 광고가 주는 느낌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전통 고추장의 주원료는 고춧가루가 아니라 쌀이며, 따라서 밀가루가 들어간 고추장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것. 다른 하나는 ‘밀가루는 믿을 수 없는 식재료’라는 이미지다. 실제 몇몇 요리, 식품 전문가들은 광고에서 “우리 고추장엔 반드시 우리 쌀이 들어갑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설이 구구하다. 딱히 전통고추장 만드는 법이 법조문처럼 잘라 정의된 게 없고 지방마다, 집안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이후의 각종 문헌과 전통식품 관련 논문에 따르면, 우리 전통 고추장에 평균적으로 가장 많이 들어가는 주재료는 고춧가루이고 그 다음은 찹쌀가루, 메줏가루, 소금이다. 비율을 본다면 고춧가루와 찹쌀가루, 메줏가루가 3대 2대 1~2쯤 된다. 지방에 따라, 집안에 따라 찹쌀가루를 고춧가루의 양과 비슷하게 넣거나 더 넣는 곳도 적지 않다. 따라서 광고에서처럼 쌀이 고춧가루보다 더 들어간다고 단정할 순 없다. 고추장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로 고춧가루와 메줏가루, 소금, 물을 꼽는 사람은 있어도 곡물가루를 드는 이는 별로 없다.

더욱이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지역에서도 찹쌀을 곡물재료 중 가장 많이 썼고, 찹쌀이 없으면 멥쌀을 대신 넣었다. 전통 고추장에는 밀가루를 전혀 쓰지 않은 듯 말하지만 조선시대 이래로 밀이 생산되던 경남 사천 등 일부 지방에선 밀가루를 찹쌀가루 대신 넣었고, 북한지역과 경상도 북부지방, 강원도에선 보릿가루를 넣은 보리고추장을 즐겨 먹었다. 보리나 밀을 넣은 고추장은 맛이 구수해 반찬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많다. 원래 고추장은 임진왜란(1592년) 이후 전래된 고추를 된장에 넣어먹으면서 생긴 발효식품으로, 찹쌀가루나 쌀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등 곡물류를 넣는 이유는 단맛을 내기(당화작용) 위해서다.

고추장>>> 우리쌀 고추장이냐 밀가루 고추장이냐

1 대상은 고추장 광고에서 전통 고추장은 멥쌀 고추장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 밀고추장, 보리고추장도 있었다. 2 고추장은 한국인의 밥상에 빠져선 안 될 기본 양념이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맛을 낸 매콤한 낙지볶음.

고추장 맛은 고춧가루에 달렸다

대상이 밀가루를 공격하는 듯한 광고를 내보자 제분업체들이 발끈했다. 한국제분공업협회 관계자가 언론에 밀가루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내용의 기고문을 투고하는가 하면, 블로그 등을 운영하며 ‘반(反)밀가루’ 정서에 대응한 것.

한국제분공업협회 박정섭 차장은 “수입 밀이라 해서 막연히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국내 가공 밀가루는 원맥 상태의 선진국 1등급 밀만 수입해 직접 갈아서 만든다”고 발끈했다. 실제 밀은 자체 수분 함량이 적어 장기간 보관을 위해 약처리를 할 필요가 없고, 선적 과정과 국내 반입 과정에서 모두 까다로운 사전검사와 잔류농약검사를 거쳐야 통관이 된다.

재미있는 대목은 대상의 ‘순창 우리쌀로 만든 찰고추장’이 그토록 ‘우리 쌀 100%’를 강조하지만 정작 고추장 맛을 결정하는 고춧가루는 그 절반가량이 중국산이라는 점이다. 태양초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태양초 함량도 미미하다. 이는 CJ의 ‘해찬들 태양초 골드’ 고추장 제품도 마찬가지. 양사 고추장 모두 고추장에 들어간 고춧가루 전체를 100%로 봤을 때 국내산이 53.1%, 중국산이 46.9%다. 여기에 들어가는 고추양념은 모두 중국산. 전체 고춧가루 중 태양초의 함량은 당사 고추장 모두 8.5%인데 그중 국산은 3.2%뿐이고 나머지는 중국산이다. 양사 관계자는 모두 “국산 고추를 중국에 심어 재배에서부터 수확은 물론 고춧가루 만드는 과정까지 감시, 감독하기 때문에 국산 고춧가루나 다름없다. 국제 인증도 받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지금껏 국산 고춧가루로만 만든 고추장 제품이 없었던 건 아니다. CJ는 대상이 우리 쌀 고추장을 내놓자 그 한 달 후인 2009년 6월 국산 원재료만 사용해 만든 ‘해찬들 100% 국산 고추장’을 출시했다. 그러나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40~50% 비싼 데다 대상처럼 자극적인 광고를 하지 않아서인지 ‘태양초 우리쌀로 만든 찰고추장’만큼 인기를 누리진 못하고 있다.

이런 비판 때문일까. 대상은 8월 고추장 전체 원료를 100% 순수 국내산으로 교체한 ‘순창고추로 만든 우리쌀 고추장’을 출시했다. CJ도 8월부터 간판제품인 ‘해찬들 태양초 골드’의 태양초 함량을 100%로 올렸고, 국산 햇찹쌀로 만든 ‘해찬들 태양초 찹쌀고추장’을 내놓았다. 이제 고추장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원재료인 고춧가루로 한판 제대로 붙어보자는 게 CJ의 전략이다. 연 3000억 원에 달하는 고추장 시장, 미래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앞으로의 시장은 선정적인 광고보다는 소비자의 미각에서 퍼져가는 입소문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10.09.20 755호 (p42~48)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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