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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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파란 눈 태극전사를

세계 축구계는 순혈주의 파괴로 전력 보강 … 한국에서는 가능성 희박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입력2010-07-26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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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다, 파란 눈 태극전사를

    성남의 라돈치치는 한때 귀화를 추진했지만 아직 국적을 바꾸지는 않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선 특히 귀화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많은 이민자 선수들 또한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세계 축구를 지배하는 축구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졌다. 축구에서만큼은 순혈주의가 파괴된 지 오래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여전히 순혈주의를 지켜나가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귀화 선수는 독일의 제롬 보아텡이다. 그는 가나 출신이지만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 독일 유니폼을 입고 남아공에서 활약했다. 형인 케빈 보아텡이 가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과 대조적이다. 둘은 조별리그에서 다른 유니폼을 입고 한 그라운드에서 대결을 펼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보아텡을 필두로 멕시코의 도스산토스(브라질 태생), 파라과이 바리오스(아르헨티나 태생), 포르투갈의 데쿠(브라질 태생), 일본의 툴리오(브라질 태생) 등 많은 귀화 선수가 모국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나라를 대표해 월드컵 무대를 누볐다.

    귀화 선수 이외에 많은 이민자 선수도 눈에 띄었다. 필리핀계 스페인 이민자 실바, 독일의 포돌스키와 클로제(이상 폴란드계) 등 이민자도 다수 있었다. 준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는 이민자 출신 선수가 무려 10명이 넘는다.

    순혈주의가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한 때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개최국 프랑스는 많은 이민자로 구성된 대표팀으로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우승의 주역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계였을 만큼 아프리카 출신의 많은 선수가 프랑스의 유니폼을 입고 세계 무대를 제패했다. 이후 세계 각국이 앞다퉈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대표팀 문호를 개방해 능력 있는 귀화 혹은 이민자 선수를 대표팀에 발탁, 전력을 강화해왔다.

    귀화, 이민 선수들 남아공서 맹활약



    귀화 혹은 이민자 대표선수가 양산될 수 있었던 배경은 이중국적에 있다. 많은 나라가 이중국적을 허용하므로 자신이 태어난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 국적을 더 취득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들은 이중국적을 취득한 뒤 자신이 원하는 나라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다. 쉽게 국적 변경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단, 국제축구연맹(FIFA)은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된 이후에는 국적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중국적을 가진 선수는 대부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될 때 국적을 선택한다.

    현재 K리그에는 귀화 선수가 없다. 성남의 라돈치치, 포항의 모타가 한때 귀화를 추진했지만 아직 국적을 바꾸지 않았다. K리그에서 뛰는 피부색이 다른 선수는 모두 용병이다. 한때 한국 축구에도 많은 귀화 선수가 있었다. 성남 일화와 안양 LG(현 FC서울)에서 뛰었던 신의손(러시아명 사리체프)을 비롯해 수원 삼성과 성남 일화에서 활약한 이성남(러시아명 데니스), 포항과 성남 등에서 뛰었던 이싸빅(크로아티아명 싸빅)이 대표적인 인물.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들이 귀화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모두 대표팀에 발탁돼 한국 국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 영구적으로 한국에 머물기 위한 경우는 신의손 한 명에 불과했다. 신의손은 현재 모든 가족이 한국에 살고 있으며 U-20 대표팀 GK코치를 맡는 등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보고 싶다, 파란 눈 태극전사를

    한국의 용병들은 소속팀의 사정에 따라 귀화를 택하기도 한다. 성남 일화에서 활약한 데니스는 한국으로 귀화해 이성남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이성남과 이싸빅은 K리그에서 오래 활약하면서 용병쿼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구단의 요청도 크게 작용했다. 이들이 국적을 바꾸면 사실상 용병이 1명 더 뛰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자 모국으로 돌아갔다. 특히 이성남은 한국으로 귀화하기 직전 러시아 올림픽대표선수로 뛴 경험이 있어 귀화를 했어도 대표선수로 선발될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FIFA 규정에 따라 한국대표로 발탁이 불가능한 경우였다.

    대표팀에 귀화 선수를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귀화 선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몇몇 용병 선수가 대표선수 자격 취득을 전제조건으로 귀화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는 구체적으로 용병 이름을 거론하며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그들에게 귀화할 수 있는 특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화 추진 현실적 어려움 많아

    그러나 이런 귀화 논쟁은 “전력 강화를 위한 귀화는 옳지 않다”는 여론과 인위적인 귀화에 거부감을 나타낸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으로 흐지부지됐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귀화 선수 없이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역할도 컸고, 대표팀이 거의 1년을 합숙하며 조직력을 다진 효과도 좋았다. 이후에 사실상 대표팀을 위한 귀화 논쟁은 다시 불붙지 않았다.

    귀화 선수가 있다면 팀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증명됐다. 특히 개인 기량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가 귀화를 통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면 한국 축구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공격력 보강에 성공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대표팀 선수층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귀화 선수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 나서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정확하게 5년간 한국에서 거주해야 한다. 단 하루도 빼지 않고 5년이다. 만약 휴가를 위해 5년 중 2주간을 자국에서 보냈다고 하자. 그러면 휴가로 보낸 2주간은 5년이라는 기간에서 제외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0대 후반 어린 선수를 영입해 귀화시켜 월드컵에 출전시키면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을 넘을 수밖에 없다. 만약 20대 중후반의 검증된 선수를 데려와 귀화시킨다면, 그가 월드컵에 나설 때쯤이면 30대를 훌쩍 넘겨 전성기가 지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귀화시험도 기다리고 있다. 국어, 역사, 풍습, 상식 등 20문항이 출제되고 6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주관식 문항이 있어 쓰기가 기본이 돼야 한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국어와 역사 등을 공부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른다. 외국인이 배우기 쉽지 않은 국어의 특성을 감안하면 귀화하려는 외국인 선수에겐 또 하나의 어려운 관문인 셈이다.

    또한 국내로 영입되는 용병은 대부분 돈벌이를 원한다. 귀화를 추진할 정도로 기량이 좋은 선수는 한국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뒤 연봉이 높은 일본 등 주변 국가로 이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문에 그들을 귀화시켜서 한국에 남겨놓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 때문에 파란 눈, 빨간 머리의 귀화 선수가 태극전사가 돼 월드컵에 뛰기란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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