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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위기의 기업 2020 생존 프로젝트①

생존 특명! 10년 먹을거리 찾아라

기업들 신사업 발굴에 총력, 신발끈 다시 조여매기

생존 특명! 10년 먹을거리 찾아라

생존 특명! 10년 먹을거리 찾아라
“지금이 진짜 위기다.”

2년여의 공백 끝에 다시 경영일선으로 돌아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 일성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의아함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은 사상 최대로 예상되는 시점이었고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 휴대전화, LED TV 등의 호조세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그의 진짜 속내는 바로 이어진 다음 말에 담겨 있었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고비 때마다 성장동력 발굴 고도성장

그로부터 석 달 뒤 삼성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제시했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23조3000억 원을 투자해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5개 친환경 및 건강증진 미래산업 분야에서 2020년 매출 50조 원에 4만5000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전자와 반도체’로 세계를 석권한 삼성이 향후 10년의 먹을거리로 ‘친환경과 건강’을 선정한 것이다.



지난 50년간 한국경제는 고비 때마다 다양한 먹을거리를 탄생시키며 고도성장을 거듭해왔다.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철저하게 수탈당했고, 1945년 독립이 됐지만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한반도는 폐허가 됐다. 1953년 휴전 직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여 달러로,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을 정도로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근면성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면서 1960~80년대 고속성장을 했다. 1960년대 경공업, 1970년대 중화학공업, 1980년대 반도체, 1990년대 자동차와 조선 그리고 2000년대 IT 정보통신산업은 한국경제를 이끌어간 성장동력산업이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00년대 주요 수출품목의 수출구조 변화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부터 수출은 선박, 반도체, 평판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자동차의 5대 품목으로 집중됐다. 반도체, LCD, 휴대전화 등 IT 3총사는 2009년 한국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내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 1990년대 5대 주력 수출품목이던 의류, 신발, 영상기기, 인조섬유가 2000년대 휴대전화, 컴퓨터, 석유제품, 디스플레이에 자리를 내줬지만 선박, 자동차, 반도체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주력 수출품목의 자리를 지켰다.

이들 성장동력산업을 바탕으로 한국은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15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경제부국으로 도약했다. 덩달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도 점차 확대됐다. 6·25전쟁 직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수혜국이었지만 이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으로 당당히 발돋움했다.

언뜻 현 상황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기업들은 잘나가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두렵다고 말한다. 현재에 안주하다 자칫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해 ‘1등의 저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영모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성장동력산업을 키우는 데는 최소 3~5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신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바로 그 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사업에서 얻은 캐시카우(cash cow·수익창출원)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둘 사라지는 최고의 경쟁력

이미 산업환경이 요동치면서 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컴퓨터 회사인 애플이 휴대전화(아이폰)를 내놓고,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이 TV를 만들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국기업의 반도체를 갖다 쓰던 주요 고객이 어느 날 한판 붙자며 덤비는 형국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휴대전화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은 양사를 합쳐 30%를 넘어, 세계 1위 노키아를 위협하며 일견 순항 중으로 보인다. 하지만 차세대 휴대전화인 스마트폰 시장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애플의 아이폰, 구글의 안드로이드폰 등이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주도해가는 반면, 한국기업들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5%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휴대전화 시장을 스마트폰이 대체해나가면서 성장동력으로서 휴대전화의 역할은 빛이 바랬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하던 TV 시장도 구글의 도전장으로 비상 상태다.

일류 업체를 쫓아가던 팔로잉(following) 전략도 한계에 다다랐다. 한국기업들은 후발업체로 출발해 원가절감, 기술개발 등으로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지만 막상 1등이 되고 나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모습이다. LG경제연구원 이서원 연구원은 “산업판이 새롭게 짜이면서 팔로잉 전략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새로운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우위를 보였던 기존 산업에서조차 후발주자들의 도전이 거세다. 현재 한국의 많은 주력산업이 일본, 중국과 겹친다. 세계 1위를 자랑했던 조선업은 이미 수주량에서 중국에 뒤처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조선의 전방산업인 해운업계에 직격탄을 가해 글로벌 해운사의 발주 취소 및 인도 연기 요청이 줄을 이으면서 성장의 정체가 우려된다.

자동차산업은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해외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오고 있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의 붕괴와 도요타 신화의 몰락에서 보듯 한순간 무너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중국·베트남 등 신흥개발국들이 치고 올라오고, 선진국들은 앞선 기술력으로 멀찌감치 달아나면서 한국의 먹을거리는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10년 뒤는 고사하고 1년 뒤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하지만 모든 기업에게 닥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이서원 연구원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1등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도,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2류 기업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한국기업이 보인 발 빠른 대응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현재 자동차 시장은 고유가로 중대형 차종의 판매가 급감하면서 고부가가치와 수익성 위주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대·기아자동차(이하 현대·기아차)는 지난 5월 미국에서 역대 최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하며 미국 시장점유율 7.3%로 7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현대·기아차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그린카 개발에 눈을 돌렸다.

대격변의 시기 미래로 앞서 달려갈 때

현대·기아차는 2020년대 1000만 대 규모로 성장할 세계 하이브리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꾸준히 새로운 하이브리드 차종을 선보인다. 이 밖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 연료전지차 등 친환경차 개발로 새로운 녹색산업 시장을 창출하면서 글로벌 자동차기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다.

현대·기아차처럼 많은 기업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자 차세대 먹을거리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주항공산업, 노동 투입의 한계를 극복하는 로봇산업 등에 기업들은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국내 제1의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해외 시장에서는 제철소 건설, 원료 확보를 위한 투자로 철강산업의 글로벌화를 꾀하는 한편, 국내에선 철강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철강산업에서 축적한 핵심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에너지 등 관련 산업에 투자함으로써 신성장동력 개발에 적극적이다.

기업들의 노력에 정부도 2009년 ‘신성장동력 종합추진 계획’을 내놓으며 힘을 보태고 있다. 정부는 녹색기술산업, 첨단융합산업, 고부가가치산업 등 3대 분야에서 미래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2013년까지 24조5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R·D 과제는 물론, 시장 창출 등 비(非)R·D 과제에도 10조 원 이상을 투입해 실제 성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우리는 성장의 정체가 우려되는 분기점마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발굴해 한 단계 도약했던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SK는 1980년대 이동통신을 차세대 사업으로 결정하며 우여곡절 끝에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당시 주위에선 너무 비싸게 인수했다며 성공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이런 논란에 대해 고(故) 최종현 회장은 “기업을 산 것이 아니라 통신 사업 진출 기회를 산 것이다. 기회를 돈으로만 따질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의 말처럼 새로운 성장 기회를 샀기 때문에 한국이동통신은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으로 성장해 2000년대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

역사적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나왔고, 역사적 실패의 절반은 찬란한 영광의 향수에서 비롯됐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 미래 대비를 소홀히 하기엔 지금의 상황이 급박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대격변의 시기. 과거의 영광은 뒤로한 채 다시 한번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



주간동아 2010.06.21 742호 (p28~31)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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