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5

2010.05.03

닫힌 마음을 연다 … 예술 심리치료의 마법

‘자아 성찰’ 통해 자신감 회복 … 미술·음악·놀이 등 다양하게 활용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5-03 12:0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닫힌 마음을 연다 … 예술 심리치료의 마법
    ‘조두순 사건’ 보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사진은 다름 아닌 나영이의 그림이다. 심리치료 과정에서 “범인을 어떻게 처벌했으면 좋겠느냐”라는 질문에 나영이가 “60년 동안 벌레와 쥐가 있는 방에 가두고 싶다”고 답하면서 그린 그림이었다.

    이렇듯 강한 충격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예술 심리치료의 하나인 미술치료가 자주 이용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그림을 통해 표출하게 하면서 감정 정화와 내면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자아 성장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영이처럼 심리적 상처를 받은 아동일수록 미술치료가 효과적이다. 조기연 미술치료사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아이도 6개월 정도 미술치료를 받자 청중 앞에서 발표를 할 정도로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아동뿐 아니라 내면의 어려움을 감추느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성인에게도 좋다.

    미술치료에는 특정 주제가 주어지는 ‘지시적’ 방법과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비지시적’ 방법이 있다. 치료자는 참여자가 자신의 생각을 충실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도입), 그림을 그린(활동) 후 상호작용(토론) 등을 통해 자아 성장의 기회를 준다. 미술치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일대일로 진행된다. 치료기간은 참여자마다 다르다.

    모래판은 내 마음

    이처럼 미술, 음악, 놀이 등을 활용한 예술 심리치료가 각광을 받고 있다. 즉 교육열 높은 엄마의 강압에 짓눌린 아이,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한 성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 등 예술 심리치료를 찾는 대상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다. 한양대 아동심리치료학과 이정숙 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분노, 위축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예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4월 21일 한양대 일반대학원 아동심리치료학과를 찾았다. 마침 또 다른 예술 심리치료인 ‘모래치료’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왼쪽 모래판에서는 모래와 물만으로, 오른쪽 모래판에선 모래와 피겨(figure·동물, 사람, 가구 형상의 모형 장난감)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기자도 동참했다. ‘모래장난으로 심리치료가 될까’ 싶었지만, 조몰락거리며 무언가를 만들어내자 교수와 학생들이 기자의 모래판을 보며 토론을 진행했다.

    “왼쪽 모래판과 오른쪽 모래판에 각각 봉우리와 동물이 5개 있는데, 이 숫자가 정체성과 연관 있어 보입니다. ‘자아 영역의 위치’인 모래판 중앙에는 돼지와 그 돼지 위에 탄 사람이, 인간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모래판 상단 오른쪽에는 순진한 아기코끼리와 사람들이 있네요. 모래판은 열심히 일하는 동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옆을 지키는 사람들은 앉아 있네요.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생각은 많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군요.”

    속을 들킨 듯 뜨끔했다. 기자는 평소 생각은 많지만 행동에 옮기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편이었기 때문. “오른쪽 모래판 중앙에 놓인 돼지와 그 위에 앉은 사람은 돼지를 키우는 아버지로, 내 아버지처럼 열심히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는 기자의 말에 대학원생들은 “중앙의 돼지 옆에 앉은 사람이 총을 위로 향하고 있는 걸로 봐서 숨겨진 포부가 있는 듯하다” “왼쪽 모래판에 힘없이 모래를 모으는 걸 보니 안정적이지 않고 에너지를 다 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등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평안함과 자존감이 느껴졌다.

    꿈보다 나은 해몽, 그 덕에 찾은 나

    닫힌 마음을 연다 … 예술 심리치료의 마법

    기자가 시도해본 모래치료.

    예술 심리치료는 치매에도 좋다. 4월 21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자리한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에서 할머니들이 크레파스를 꼭 쥐고 ‘보리밭’을 그리고 있었다. 미술치료지만 치료사의 별도 지침은 없었다. 신현옥 한국치매미술협회장(서양화가)은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심리적 지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치료”라며 “크레파스를 활용하면 손가락 근육을 많이 쓰게 돼 치매에 좋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들은 고향에서 보리밭 매는 아주머니를 그리는가 하면, 할아버지와 데이트하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황미숙(77) 할머니는 “여기까지 오는 데 1시간도 넘게 걸리지만 정말 즐거워. 오늘도 노인대학 마치고 바로 왔어. 할 일 없는 사람이 가장 불쌍해. 사람이 바빠야 하는데 말이야”라고 말했다. 또 서일순(77) 할머니는 “이곳에서 익힌 실력으로 페이스페인팅을 해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건넸다”며 뿌듯해했다.

    현재 노인을 대상으로 예술 심리치료를 하는 곳은 강원 양구군청이 대표적이다. 양구군청은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미술치료 외에도 웃음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형 데이케어센터(서울시가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형태의 치매 노인지원센터), 서울시 자치구별 치매지원센터 등에서도 노인을 위한 미술치료, 음악치료, 원예치료를 지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예술 심리치료는 노년층이나 성폭력 피해 등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평범한 아동이나 성인이 예술 심리치료를 받으려면 한국예술치료학회, 한국예술심리치료학회, 한국통합예술치료상담학회, 한국아동심리치료학회, 놀이치료학회 등에서 정보를 확인해 사설기관을 이용해야 한다.

    숨겨진 나를 찾아 자존감 갖기!

    내면 에너지 분출 긍정적 정서로 활력 충전


    닫힌 마음을 연다 … 예술 심리치료의 마법
    5월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건강박람회 2010’의 ‘건강 Life Plus’관을 찾으면 예술치료를 체험해볼 수 있다.

    한양아동가족센터에서 진행하는 모래놀이치료란 모래와 작은 모형이 담긴 모래놀이 상자를 통해 자기 통찰을 경험하는 치료방법으로, 박람회 현장에서는 아동 모래놀이치료(개별), 가족 모래놀이치료(집단)의 기회가 제공될 예정이다. 또한 아동 미술치료 프로그램, 집단 미술치료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동과 가족 집단의 내면적 욕구를 이해하기 위한 미술치료 행사도 진행된다.

    숙명여대 음악치료센터에서 제공하는 ‘Rhythm for Life’ 공연에서는 10여 명의 진행자가 무대에서 타악기와 리듬악기로 다채로운 리듬을 선보이면, 관객들 또한 여러 악기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만들면서 음악을 완성해가는 기회를 갖는다. 이로써 참여자들은 내면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긍정적 정서를 만들어 삶의 활력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의 장점을 수용하고 타인의 장점을 칭찬하는 활동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오뚝이 만들기, 나는 나다(비교하지 않고 중심 잡기)’,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과 감정 표출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증진하는 ‘스트레스 날리기’ ‘희망나무 만들어 미래의 명함 붙이기’ 같은 미술치료 체험 이벤트가 진행돼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할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