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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난 보모다, 저 아이와 함께 찍어달라”

정보기관서 김정남 초등생 때 얼굴 촬영 …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 정보활동 ‘시들’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난 보모다, 저 아이와 함께 찍어달라”

“난 보모다, 저 아이와 함께 찍어달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두바이에서 강경파 팔레스타인 조직인 하마스의 간부 마흐무드 알마부를 암살했다는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한술 더 떠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모사드의 이 암살 계획을 승인했다고까지 보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두바이에서의 암살을 강력 부인한다. 암살자들은 호텔 CCTV 영상을 비롯해 숱한 흔적을 남겼지만 감쪽같이 두바이를 빠져나가 종적을 감췄다. 만일 모사드가 암살한 것이 맞다면, 그들은 정말 ‘대단한’ 공작을 성공시킨 셈이다.

이와 비교되는 것이 지난해 12월30일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CIA 요원 7명이 포함된 14명의 폭사사건이다. 이 사건은 요르단 출신의 의사 후맘 칼릴 아부무달 알발라위가 몸에 폭탄을 두르고 벌인 일이었다. CIA는 탈레반 요원인 알발라위를 일찌감치 포섭해 다시 탈레반으로 투입, 정보를 수집하는 역용(逆用) 공작을 펼쳐왔다.

그런데 알발라위의 전향은 ‘위장’이었다. 마음에 두고 있던 ‘마지막 날’이 오자 알발라위는 좋은 정보를 주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탈레반 정보에 목마른 CIA 요원들이 달려와 그를 모시고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갔다가 함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두바이 경우처럼 성공한 공작은 쉽게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한 공작은, 더구나 인명 피해까지 본 공작은 전모는 물론, 실패를 초래한 원인까지 낱낱이 까발려지게 마련이다. 미국 언론들은 “탈레반 요원들은 신념을 갖고 평생 같은 일을 하지만, CIA 요원들은 임지에 파견된 기간에만 공작을 하기에 정신전력(精神戰力) 면에서 차이가 난다. 임지에 파견됐을 때 ‘한 건’ 올려야 진급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들은 전임자 시절부터 활용해온 프락치를 의심 없이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이번에 당한 것이다”라는 요지의 해설을 쏟아냈다.

정보기관끼리 사고판 ‘김정남 정보’



한국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을 상대하고 있으므로 안보 수요가 많은 나라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보기관도 성공한 공작을 한 적이 있는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8세 생일을 맞은 2월16일, 그의 장남인 김정남은 평양에 가지 못하고 2년째 떠돌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에게 밀리는 존재가 됐을까. 어머니가 성혜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2001년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에 들어가려다 적발돼 추방됨으로써 신분이 완전히 노출됐기 때문일까.

1971년생인 김정남은 열 살 전후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 다녔다. 이때 한국의 모 정보기관이 김정일의 아들이 스위스의 국제학교에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확인에 나섰다. 확인이란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이었다. 한 고참 요원이 카메라를 들고 통학길에 잠복했다. 그런데 아이 곁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늘 붙어 있어 렌즈를 들이밀어 초점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가 찍어온 사진은 몰래 셔터를 누른 것이라 초점이 전혀 맞지 않았다. 자신이 해보겠다고 나선 요원의 사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막내인 여성 요원이 나섰는데, 그는 정확히 초점 잡힌 사진을 찍어왔다. 이 사진에는 요원 자신도 들어가 있었다. 책임자가 “어떻게 해서 깨끗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베른 시내에는 관광객이 많이 다니잖나. 관광객 중 한 분을 붙잡고, ‘나는 저 동양아이를 돌봐야 하는 보모다. 그런데 저 아이가 나를 아주 싫어해 가까이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에겐 내가 잘 돌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나도 들어간 구도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관광객은 아무 의심 없이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 다음 나도 나오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관광객인 줄 알고 경호원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더라”고 말했다.

확보된 사진은 즉각 여러 공작팀에 전파됐다. 그리고 각 팀도 유사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자라면서 변해가는 김정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이 있으면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정보기관끼리는 교류를 한다. 상대가 목말라하는 정보를 주고, 내가 필요한 정보를 입수한다. 이 정보기관은 아이가 출입한 나라의 정보기관을 접촉, 그 나라에 들어올 때 사용한 여권 정보를 입수했다.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아이는 북한뿐 아니라 위조한 제3국 여권도 사용했다.

축적된 정보량이 늘어나자 ‘이 아이는 김정일의 장남이 틀림없지만, 후계자는 못 될 것’이라는 좀더 정밀한 판단이 내려졌다. 청소년기 이 아이는 평양에 들어가면 고려호텔 등에서 빈둥거리다 다시 외국으로 나오곤 했다. 김정일이 챙기는 아들이라면 평양으로 불러들일 때마다 가혹한 후계자 수업을 시켜야 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김정일이 ‘버리는 아들’이라면 이 아이에 대한 정보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우방국 정보기관과 교류할 때 그쪽이 원하면 이 아이에 대한 자료를 주고, 그 대신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하여 일본을 비롯한 여러 우방국 정보기관이 김정남 사진과 그가 쓰는 위조여권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북한 … 정보기관 역할은?

1998년 북한은 대포동 1호를 발사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0년 들어 일본에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 주요 이슈로 떠올라 북한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러한 때인 2001년 5월 김정남이 가짜 도미니카 여권으로 일본에 들어오려 하자, 그가 사용하는 위조여권 정보를 갖고 있던 일본 공안당국이 그를 적발해 추방시켜 버렸다. 일부러 북한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이 추방 사건은 일본과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뉴스가 됐지만, 정보기관들은 덤덤히 대했다. 그들에게 김정남 추방은 전혀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 정보기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가장 활동적인 기관으로 꼽혔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 씨의 아들 이한영 씨를 비밀리에 한국으로 데려오는 등 수많은 활동을 성공시켰다. 이러한 활동은 2000년 1차 정상회담이 있은 후 중단됐다. 그리고 지난 10년 사이 북한은 한 차례의 대포동 2호 발사, 두 차례의 핵실험, 그리고 무수히 많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다.

두바이 암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한국은 대북 정보활동을 재개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난 정부 때처럼 조용히 있어야 하는가. 북한은 최근 서해안에 해상사격구역을 선포하고 북방한계선(NLL)을 향해 사격을 하는 위험한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실패했다. 또 북한은 장마당을 철폐했다가 다시 허가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일은 신경질적인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도 한다. 정보기관도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용기를 갖고 활동할 수 있다. 정보기관 ‘활동량 증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생각은 무엇일까.



주간동아 2010.03.16 727호 (p36~37)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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