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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1등으로 “감독님은 마술사”

KT 전창진·현대건설 황현주 감독 … 모래알 조직에 아교 노릇 최고의 팀으로 탈바꿈

  • 김종석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js0123@donga.com

꼴찌를 1등으로 “감독님은 마술사”

꼴찌를 1등으로 “감독님은 마술사”

전창진 감독(왼쪽)과 황현주 감독은 개인 플레이보다 팀 워크를 중요시 한다.

“감독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올 시즌 남자 프로농구 KT와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을 보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온다. 바닥을 헤매던 두 팀이 사령탑 교체로 일약 선두권에 올라 고공비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KT 전창진 감독(47)과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44)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시즌 KT의 전신인 KTF는 12승 42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10개 팀 중 최하위였다. 2007~2008 시즌 8위에 이어 2년 연속 슬럼프에 허덕였다. 하지만 올 시즌 KT는 모비스, KCC와 3강 체제를 구축하며 2월1일 현재 29승 13패로 3위에 올랐다. 2위 KCC와는 겨우 0.5경기 차.

“내가 아닌 우리, 패배의식을 버려라”

동부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전창진 감독은 지난해 4월 KT를 되살릴 구원투수로 일찌감치 러브콜을 받았다. 당초 KT의 영입 제의에 전 감독은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만큼 고민이 많았다. 동부 시절 ‘치악산 호랑이’‘원주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으며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그였지만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향한 결심은 쉽지 않았다. 전 감독은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 KT에서 농구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겠다”라며 이적을 결정했다.

전 감독은 KT 부임 후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8월 강원도 태백 전지훈련에서 만난 KT 선수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해발 1000m 고지에서 숨이 턱턱 막힐 만큼 힘겨운 지옥훈련을 연일 소화하면서도 팀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전 감독은 ‘내가 아닌 우리’를 강조했다.



당시 포워드 박상오는 산악 달리기에서 기록이 처져 다른 선수들까지 고된 훈련을 더 받게 만들었다. 다음 날 그는 전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달리기를 하다 실신하기도 했다. 그만큼 선수들의 책임의식과 동료애는 뜨거워져갔다. 서로 남 탓하기 바쁘며 모래알 같던 KT의 조직력에는 끈끈한 찰기가 생겼다.

철저하게 시즌 준비를 한 KT는 1라운드를 7승 2패로 마치며 단독 선두에 나서 ‘꼴찌의 반란’을 일으켰다. KT 주장 신기성은 “이기는 경기를 하다 보니 누구와 맞붙어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 감독은 외국인 선수 선발에도 남다른 안목을 지녔다. 용병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6순위로 뽑은 재스퍼 존슨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존슨은 평균 20점 안팎의 공격력에 어시스트와 리바운드에도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전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읽는 데 달인으로 불린다. 밀밭에만 가도 취할 만큼 술을 못하지만, 심하게 꾸짖었거나 말 못할 고민이 있는 선수와는 술자리를 주선해 문제 해결에 나선다. 선수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격려를 하고, 외박이나 생일은 물론 집안 경조사까지 꼼꼼히 챙긴다. 최근 올스타전에서 KT는 ‘베스트 5’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특별한 스타는 없어도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KT 전력의 핵심이다.

현대건설 역시 최근 2년간 하위권을 맴돌다 올 시즌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5월 사령탑에 오른 황현주 감독이 있다. 현대건설은 2007~2008 시즌 꼴찌였으며 지난 시즌에는 5개 팀 중 4위. 그런 현대건설이 2월1일 현재 14승 2패로 90%에 가까운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팀이 이처럼 180도 바뀐 비결은 무얼까.

황 감독은 지난해 현대건설에 부임하면서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새로운 선수를 많이 발굴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황 감독은 흥국생명 감독 시절 두 차례나 정규시즌 1위를 달리다 중도하차하는 수모를 겪었다. ‘독사’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강한 이미지를 지닌 그는 무기력증에 허덕이던 현대건설 선수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매달렸다.

음지의 경험, 어려운 선수에게 더 관심

그는 부임 초기 코치나 트레이너도 없이 혼자서 한 달 동안 선수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로 나약한 정신력을 끌어올렸다. 비록 지더라도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박수 받을 수 있는 근성 있는 모습을 강조했다. 강도 높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중시하던 황 감독은 오히려 훈련 시간을 하루 6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였다. “선수들이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

황 감독 역시 전 감독처럼 개인플레이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한다. 몸을 던져 수비하고 공을 올려주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을 때 팀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뒷심 부족을 없애기 위해 ‘5점 승부’라는 특별 훈련을 도입하기도 했다. 20대 20 상황을 가정하고 25점이면 세트를 따내도록 하는 훈련을 반복해 실전과 같은 긴장감을 유도했다.

전 감독과 황 감독은 스타 출신이 아니다. 용산고와 고려대를 거친 전 감독은 청소년 대표로 뽑힐 만큼 유망주이긴 했어도 대학 시절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감한 뒤, 아마추어 삼성에서 주무로 일하며 농구단의 뒤치다꺼리를 맡았다. 초등학교 시절 키가 커 배구를 시작한 황 감독은 중고등학교 때 오히려 단신의 한계에 부딪혀 백업 센터 신세였을 때가 많았다. 음지에 있었던 날이 많았기에 전 감독과 황 감독은 어려운 처지의 선수들을 보살피는 데도 적극적이다.

콜롬비아 출신 외국인 선수 케니(187cm)는 폭발적인 스파이크와 블로킹으로 현대건설 돌풍을 주도한다. 자신만 챙기기 바쁜 다른 외국인 선수와 달리 케니는 황 감독의 집중 조련 속에서 개인보다 팀을 먼저 챙기는 희생정신이 돋보였다. 케니는 “황 감독님이 불러준다면 1년 더 뛰고 팀 닥터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힐 정도다.

탄탄한 구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KT는 이석채 회장과 서유열 사장 등이 농구단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전용 숙소와 체육관이 없어 훈련에 애를 먹던 KT는 수도권에 농구단 전용 훈련장을 신축,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현대건설 구단주인 김중겸 사장은 선수들의 복지후생 개선을 지시, 초현대식 체육관과 숙소를 마련했다. 숙소에 방을 늘려 선수 모두 개인 방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사장은 계열사 임직원을 대표한 15명의 선수단 멘토를 구성해 세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7년 최하위, 2008년 6위로 추락했던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는 지난해 보란 듯이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명문 팀의 위상을 되찾았다. 하위 팀들의 선전은 언제나 신선하고 팬들의 관람 욕구를 자극한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것이 스포츠계의 진리. 그 진리가 올겨울 코트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2010.02.16 724호 (p82~83)

김종석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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