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4

..

“모난 朴에 정 맞을라”

‘四面李歌’ 박근혜 위기의 계절 … 친박 진영에선 “화합 행보로 포위망 뚫자”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09-09-16 13: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한나라당의 독보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해온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가 과연 흔들릴까.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가 전격 발탁된 데 이어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가 급부상하면서 여권의 차기 구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을 각각 이끌게 된 두 정(鄭)씨는 대권 도전에 나섰거나(2002년 정몽준), 여당 후보 영입 대상자(2007년 정운찬)였다.

    두 사람은 지금도 2012년 대통령선거(이하 대선)를 겨냥해 큰 꿈을 꾸는 잠룡(潛龍)으로 일컬어진다.친박(親朴) 진영에선 두 정씨의 등장에 대해 “변수는 되겠지만 상대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차기 대권가도에서의 박근혜 독주체제는 일단 끝났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후발주자들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내에 친박 현역 의원은 60여 명에 달하는 반면, 두 정씨에겐 이렇다 할 세(勢)가 없다.

    서울대 총장 출신인 정 내정자는 말할 것도 없고,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 대표도 딱히 ‘정몽준계’로 분류할 만한 현역 의원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정 대표와 가까운 사람으로는 2002년 대선 당시 정 대표가 창당한 ‘국민통합 21’에 당무위원으로 참여한 전여옥 의원, 울산 동구 지역구를 물려받은 안효대 의원, 현대건설 출신 신영수 의원, 처조카 사위인 홍정욱 의원 정도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수적으로나 결속력, 충성도 측면에서 친박 세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정운찬·정몽준 등장 새로운 변수

    친박 진영에서는 이 밖에도 두 사람이 박 전 대표의 상대가 되지 않는 이유를 다양하게 꼽고 있다. 먼저 정 내정자의 경우 일각에선 그가 ‘이회창 총리’를 벤치마킹해 단번에 대중성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총리 시절 김영삼(YS)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대권주자로 떠오른 사례를 따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친박계 한 의원은 반론을 제시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당시 YS와 이회창 총리는 보수이념이 같았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내에서 이회창 총리를 ‘포스트 YS’로 받아들일 기본 요건이 충족돼 있었던 셈이다. 반면 지금 이 대통령은 보수, 정 총리 내정자는 진보다. 정 내정자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봤자 한나라당에서 외면당할 뿐이다. 아울러 이회창 총리가 뜰 때는 한나라당에 ‘7룡(龍)’이니 ‘8룡’이니 하는 고만고만한 대권주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박근혜 전 대표가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친박 진영에선 정 대표에 대해서도 저평가한다. 이 대통령과 같은 현대 출신이란 점도 그렇지만, 당내 중진들이 정 대표에게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후보단일화(투표 당일 새벽 철회선언을 했지만)에 합의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은 장본인이란 인식이 당시 대선운동에 참여했던 중진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정씨의 등장이 차기 구도에 ‘변수’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두 정씨를 인정할 수는 없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의 친이(親李) 핵심이 서서히 박 전 대표 옥죄기에 나섰음을 감지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당장 정부와 여당에 구축될 두 정씨 체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수순에 주목하는 셈이다.

    친박 세력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당초 정 대표가 맡고 있던 최고위원 자리에 합의추대 형식으로 올라 당 지도부에 진입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친박 진영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10·28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일정 등을 감안해 지금은 ‘신중 모드’에 들어갔다고 한다.

    “모난 朴에 정 맞을라”

    9월8일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정몽준 신임 대표.

    무엇보다 자신의 옛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서 재보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있고, 재보선 이후 당에 또다시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감안한 처신으로 보인다.

    만일 한나라당이 10·28 재보선에서 참패하면 정 대표체제가 조기에 종식되면서 내년 2월쯤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도 높다. 친박 진영은 2월 전당대회를 통해 이 전 최고위원이 당 지도부에 복귀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친이계 차기 주자 띄우기에 나설 것으로 판단한다.

    그때 낙점될 주자는 정 내정자나 정 대표가 아니라 김문수 경기도지사 같은 ‘제3의 인물’이 되리라는 게 친박 진영의 예상이다. 이 같은 상황 변화에 따라 친박계 내부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으로 어떤 구도가 형성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이미 친이계의 ‘박근혜 포위 플랜’이 가동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지금 ‘사면이가(四面李歌)’에 처한 형국이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 천적(天敵)이나 다름없는 이 전 최고위원, 그리고 두 정씨가 그를 에워싸고 있다. 이런 시점에 이 대통령이 그동안의 ‘탈(脫)여의도’ 기조를 깨고 ‘귀(歸)여의도’ 기조로 돌아서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잇따라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광폭행보에 나선 점도 심상찮다.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방식에 대해선 여전히 친박 진영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친이와 대치 전선을 형성하며 독자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과 이제부터라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적극 참여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견해로 나뉘어 있다.

    10월 재보선에 적극 나서나

    주목할 점은 그동안 강경소장파의 기세에 밀리던 화합론자들이 이번 두 정씨의 등장을 계기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이었다가 경선 후 한 발 물러서 있던 한 친박계 의원은 현 상황이 박 전 대표가 인식을 바꿔야 할 절호의 기회임을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차기에도 본선(대선)에선 충분히 상품성이 있으나 예선(대선후보 경선)이 힘들다. 지금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친이 세력과 대립만 하면 비(非)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는 생각으로 결사 저지에 나서지 않겠는가. 따라서 지금처럼 가면 예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경쟁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번 기회에 인식을 바꿔야 한다.”

    사실 박 전 대표도 요즘 들어 이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에 다녀왔고, 결과 보고를 위해 조만간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다. 또 친박 계열인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과정에서도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다.

    차기 대권구도에서 경쟁 없는 독주를 하다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 박 전 대표가 이번 기회에 인식을 바꿀지는 10월 재보선 지원 여부에서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친이 직계인 조해진 한나라당 신임 대변인이 최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박 전 대표의 지원을 공개적으로 간청한 상황이기도 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