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2

..

나무 밑에서 더 행복하게 쉬다!

변화하는 장묘문화 … 화장이 매장 앞지르고 최근엔 자연장 큰 인기

  •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사)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입력2009-06-25 17:3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무 밑에서 더 행복하게 쉬다!
    장례란 도덕규범이나 관습, 종교 등에 따라 주검을 처리하는 절차이자 의례를 칭한다. 조선왕조 이래 500년 넘게 유지된 우리의 유교식 전통 상장례는 절차마다 까다롭고 복잡하긴 하지만,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마지막 정성이자 예절로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 가정의례준칙 등 정부의 시책으로 절차가 간소해지면서 본래의 의미가 왜곡, 희석됐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 핵가족화 등 사회 변화도 장묘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과거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죽음을 맞으면 ‘객사’라 하여 무척 꺼렸던 것이 우리네 정서였다. 이제는 집에서 사망하더라도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운구해 냉장실에 안치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은 병원 장례식장과 전문 장례식장으로 나뉘는데 전국에 800여 개가 있다. 병원 장례식장은 1990년대 중반 정부가 병원의 영안실을 장례식장으로 양성화하면서 생겨났는데, 의료기관인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병원 장례식장이 성행하게 된 데는 시설의 고급화와 장례 서비스의 차별화가 한몫했다.

    대학엔 장례지도학과 개설

    최근 장례식장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색다른 서비스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샤워실, 침실 등을 갖춰 상중에도 평상시처럼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최근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부의금을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까지 갖췄다. 3~4년 전부터는 시신 메이크업도 수익을 창출하는 장례 서비스의 한 분야가 됐다. 이는 대학에서 장례 전반의 교육을 받은 전문 장례지도사가 배출되면서 새롭게 도입된 분야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정에서 초상이 나면 동네 장의사나 집안 어른의 지도를 받아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병원 장례식장이 각광받으면서 대도시의 경우 동네 장의사가 거의 사라졌다. 1999년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보건대학에 장례지도과가 개설된 이래 현재 전국 5~6개 대학에 장례 관련 학과가 있다. 2007년 서울보건대학이 4년제인 을지대학교로 바뀌면서 유일한 4년제 장례지도학과로 발전하게 됐다. 대학원 과정 장례 관련 학과도 개설됐다. 이젠 ‘장의사’보다는 ‘장례지도사’라는 명칭을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

    한국인은 대체로 죽음의 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묘지나 수의 등을 준비하는 일은 많다. 묘터를 잡아 가묘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윤달에 수의를 준비하면 장수한다는 속설을 믿고 이를 준비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상조회사도 확산되는 추세. 다양한 상조회사는 장례용품과 인력 등 장례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초상이 나면 친지나 이웃이 상부상조하는 좋은 관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을 흔히 장법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장법은 매장과 화장이고 그 밖에 풍장, 조장, 수장 등이 있다. 묘지, 납골당 등 납골시설이나 자연이 죽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는 매장과 함께 화장이 성행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화장을 금지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서 제도화됐다. 하지만 600여 년간 매장은 우리의 전통 장법으로 뿌리를 내렸고, 늘어나는 묘지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개인 묘지를 허용함으로써 묘지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전국에 흩어졌다.

    집단묘지는 우리나라 전체 묘지의 30%에 불과하다. 대부분 나라는 묘지의 크기를 1평 안팎, 매장기간은 20~30년으로 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묘지 1기에 여러 명을 수직으로 합장하는 등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개인묘지의 경우 2001년 이전 80㎡(약 24평)을 허용했고, 이후 현행 장사법에서는 30㎡(약 9평)을 허용하고 있다. 한 번 조성한 묘지는 영속적으로 존치됐다. 그러다 보니 묘지는 증가하는데,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관리되지 않고 버려지는 무연분묘가 늘어났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성묘 횟수는 1년에 2회도 안 된다.

    묘지 문제의 심각성은 1980년대 이후 조금씩 제기됐으나 사회적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91년 전국 화장률은 17.8%에 그쳤다. 특히 화장에 대해 국민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풍수 사상에 따라 매장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1998년 여름 폭우로 인한 서울·경기 지역의 묘지 유실 사태와 대기업 총수의 화장 실천은 우리 사회에서 매장과 화장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시민단체들도 본격적으로 화장 장려운동을 펼치면서 화장률이 급상승했다. 화장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시설도 발전했다. 2001년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묘지 면적의 축소, 시한부 매장제도의 실시 등을 담고 있다. 매장할 경우 1개월 안에 신고해야 하고, 매장 후 15년이 지나면 3회에 걸쳐 15년씩 연장해 최장 60년까지만 지속할 수 있다. 그 후에는 화장, 납골해야 한다. 이는 2001년 법 개정 이후 매장한 경우에 한한다.

    그 결과 2005년을 기점으로 화장이 매장을 앞질렀다. 2007년 전국 화장률은 58.9%, 서울은 70% 이상, 부산은 80%에 육박한다. 화장이 크게 늘면서 화장시설 부족으로 서울에서는 예약이 어려워 경기도의 화장시설을 이용하거나 장례를 4일장, 5일장으로 연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화장시설은 대표적인 비선호시설이라 지방자치단체가 확충하거나 신설하려 해도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화장 후에는 유골의 처리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과거에는 주로 분골해 산, 바다, 강 등에 산골(散骨)했다. 하지만 납골묘, 납골당, 납골탑 등 다양한 시설이 생겨나면서 납골에 안치하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설 납골당은 대개 해당 지역 주민이 사용할 수 있다. 비용은 1위당 30만~40만원이고, 이용기한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납골묘 장점 많지만 자연훼손 우려

    서울시는 2003년 이후 공설 납골당을 일반 시민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우수한 사설 납골당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들어섰고, 공원묘지들은 석물로 된 대형 납골묘를 대량으로 조성해 분양하고 있다. 사설 납골당의 비용은 1위당 300만~400만원이고, 상당수 무기한 이용이 가능하다.

    한편 납골묘는 기능 자체로 장점이 많지만, 석물 위주로 큰 규모의 납골묘들이 조성되다 보니 관리가 잘 안 되거나 방치될 경우 자연 훼손이 매장보다 심각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숲의 나무 주변에 화장한 골분을 묻는 수목장 등이 부각됐다. 수목장은 당시 장사법에 따라 불법이지만, 민간인 사이에 종종 이용됐다. 2007년 장사법 개정으로 수목장 등 자연장 제도가 합법화됐고, 2008년 5월 이후 시행됐다.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설치한 곳에서만 가능하다.

    자연장 중 가장 대표적인 수목장은 스위스, 독일에서 ‘프리드발트(Fried Wald)’라는 브랜드명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 환경친화적 장법으로 인기를 누리는 수목장은 지정된 숲의 나무 주변에 골분을 묻어야 한다. 지난 5월 산림청에서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국유림에 국내 첫 국유 수목장림 ‘하늘숲추모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전화(031-775-6637~8)나 ‘숲에On 홈페이지(www.foreston.go.kr)를 통해 상담, 접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장묘문화는 최근 10년간 놀라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와 함께 장묘문화의 질적 제고를 도모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