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8

2009.06.02

피렌체의 유쾌한 추억, 펠시나 ‘카스텔로 디 파르네텔라’

  • 조정용㈜비노킴즈 대표·고려대 강사

    입력2009-05-29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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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의 유쾌한 추억, 펠시나 ‘카스텔로 디 파르네텔라’
    박물관 같은 도시 피렌체에서 잔뜩 기대하고 들어간 현지 주민들의 외식 장소는 생각보다 검박했다. 두오모에서 겨우 500m 정도 떨어진 ‘트라토리아 파리’의 손님은 대부분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트라토리아는 리스토란테(레스토랑)보다 드나들기 쉬운 곳으로 형식보다는 실속 있는 음식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가격대도 리스토란테보다 낮다. 파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테이블에 놓인 키얀티 한 병.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가 기자의 집에서 홀짝거리던 와인이다. 예의 피아스코에 담겨 있었다. 피아스코는 보통의 병이 아닌 호리병으로 테두리를 볏짚으로 두른 것이 특징이다. 요즘은 플라스틱 줄로 모양을 만들지만.

    피아스코는 1.5ℓ들이가 기본인데, 그날 내가 주목한 것은 피아스코의 병 모양만큼이나 생경한 와인잔의 모양이다. 피아스코를 기울여 와인을 따른 잔은 날씬하고 멋진 와인잔이 아니라 맥주잔 혹은 물잔과 비슷했다. 그들은 진정 즐기고 있었다. 와인잔 타박을 하거나 와인의 향기에 킁킁거리지 않았다. 그저 콸콸 따르고 유쾌하게 마셨다.

    와인 중심지 피렌체에서 목격한 광경은 오늘날 우리 와인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식탁의 즐거움은 와인잔을 어떻게 잡는가 같은 행위가 아니라 공감하는 분위기에 있는 법. 그들에게 키얀티는 우리의 막걸리와 같다. ‘막걸리를 마실 땐 사내답게 마시라’는 어떤 응원가처럼 질박한 삶의 단면이 묻어나야 제맛이지 폼을 잡아서 될 일은 아니다.

    요사이 막걸리의 고급화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키얀티에서도 ‘실패’라는 뜻을 가진 피아스코 병보다는 보통의 병에 와인을 담는 게 대세다. 산지오베제의 정수를 키얀티 언덕에서 실현했다고 평가받는 펠시나 양조장의 키얀티 ‘카스텔로 디 파르네텔라(Castello di Farnetella)’ 2006을 마시자 떠오른 피렌체의 옛 추억이다. 수입 동원와인플러스. 가격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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