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3

2009.04.28

닭장 속에는 닭들이…

  • 편집장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9-04-22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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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몰다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난데없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는 자전거 때문입니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속도 개념이 차원을 달리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상대의 수(手)를 놓치고 흐름이 끊겨 눈앞이 아찔합니다. 한숨 돌리고 나면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빨리 못 밟을 거면 인도로나 다닐 것이지….’ 자전거 운전자를 속도와 곡예가 미덕인 도로교통 주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탓에 괜히 드센 텃세를 부려봅니다.

    우리는 후발주자를 대등한 동반자로 인정하는 데 무척 인색한 편입니다. 내 자리가 좀 안정됐다 싶으면 이내 험난한 진입장벽을 쌓아올립니다. 옛 기방(妓房)이나 선비들의 모임에서 신입 멤버에게 혹독한 몬도가네식 린치를 가하던 신래참학(新來慘虐)의 관행이 그러했고, 요즘도 외국인이나 탈북자 같은 새내기 사회 구성원들을 진정한 동료의식으로 포용하는 데 익숙지 않습니다. 코흘리개 집단에서조차 전학생은 한동안 왕따 신세를 각오해야 합니다. 수월성 지상주의 사회에선 조금만 굼뜨고 뒤처지면 내실과 잠재력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내치기에 바쁩니다.

    한 과학자가 닭의 품종개량을 위해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 개의 닭장에 같은 수의 닭들을 넣어 기르다 달걀 생산량이 가장 많은 닭장(A)을 골라냈습니다. 또한 각각의 닭장에서 알을 가장 많이 낳는 닭 한 마리씩을 골라 한 닭장(B)에 넣었습니다. 몇 달 뒤 두 닭장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딴판. ‘올스타 팀’인 B닭장의 닭들은 3분의 2가 죽어나갔고, 남은 닭들도 서로 물고 뜯느라 상처투성이였다고 합니다. 알을 제대로 못 낳는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A닭장의 닭들은 하나같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으로 여전히 많은 달걀을 낳고 있었습니다. B닭장의 닭들이 원래의 닭장에서 ‘톱’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다른 닭들의 복지와 생산성을 억눌러 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결과였고, A닭장의 평범한 닭들은 줄곧 화합과 협조, 공생의 덕목을 실천했다는 겁니다.

    닭장 속에는 닭들이…
    우리네 길거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관찰됩니다. 신진대사를 제외한 모든 에너지는 오염을 유발합니다. 비록 먹고살기 위해서라곤 해도 자동차 운전자들은 일상적으로 거대 오염원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복지와 생산성을 억제합니다. 과속, 신호위반, 끼어들기로 어느 한순간 거리 레이스의 ‘슈마허’가 된 듯하지만 결국은 B닭장 속의 제 살 깎아먹기 꼴. 반면 온전히 자기 몸의 신진대사만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자전거족은 의도했든 안 했든 숭고한 공생의 정신을 체현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외로운 분투가 격려를 받고, 그들의 정당한 주행권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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