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8

2008.10.28

예술품인가, 기념품인가

‘White Madonna with Twins’ 논란

  •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8-10-22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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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품인가, 기념품인가

    ‘White Madonna with Twins’, digital c-print, 230×180cm, 2006.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White Madonna with Twins’.

    얼마 전 제니퍼 그로스먼이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우리 둘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다니는 대학원에서 수업시간마다 늘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던 사이죠. 그렇다고 특별히 친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니퍼는 공부 욕심이 남다른 열정적인 학생이었고, 저는 가뜩이나 잘 안 들리는 영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수님 바로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수업시간에 든 정이 어디 가겠습니까. 이런저런 안부 끝에 제가 한마디 했죠.

    “제니퍼, 아직도 바네사 비크로프트에 대한 생각 안 변했니?”

    “그걸 말이라고 해? 난 여전히 그녀의 작품이 고급예술의 탈을 쓴 패션사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지난 봄학기 수업에서 발표할 때처럼 그녀는 똑같이 흥분했습니다. 지난 학기는 자발적 발표와 토론이 주를 이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 바로 제니퍼가 발표한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White Madonna with Twins’였습니다.

    자, 어머니는 백인인데 쌍둥이는 흑인입니다. 만약 피부색에 대한 의문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입양 유행에 익숙해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는 살아 있는 여인들을 마치 마네킹처럼 공공장소에 세워두는 퍼포먼스로 이름이 나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다뤄온 ‘여성의 몸’이라는 이슈를 떠나 한층 ‘정치사회적’ 맥락의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내전과 집단학살의 비극으로 물든 아프리카 수단,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다르푸르 지역으로 떠납니다. 때마침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젖몸살이 심했던 그녀는 젖을 물릴 아기들을 찾다가 이 쌍둥이를 만나게 되죠. 수유하는 동안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인 마틴 마르지엘라에게 하얀 실크드레스를 주문합니다. 드레스는 양쪽 가슴을 절개해 가슴을 드러내게 했고 치마 밑단은 불에 탄 것처럼 디자인됐습니다. 그녀는 이 드레스를 입고 쌍둥이를 안은 채 남부 수단의 한 성당에서 사진 촬영을 합니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분위기를 내는 이 작품은 에디션당 5만 달러에 팔리게 됩니다.

    수단에서 쌍둥이 입양 … 이 때문에 남편과 별거

    “지은, 원래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겠다고 수단으로 간 거잖아. 하지만 이 작품을 보라고, 여기에 사실적인 거라고는 하나도 없어. 다 조작된 거라고. 여기에는 수단의 정치사회적 현실도, 기아에 굶주리는 아이들도 없어. 흑단 같은 쌍둥이로 인해 빛나는 건 오직 하얀 피부의 그녀 자신뿐이라고.”

    예술품인가, 기념품인가

    VB48 palazzo Ducale, Genoa, Italy, digital C- print, 101.6x314.96cm, 2001. 2001년 이탈리아에서 작업한 그의 또 다른 작품.

    다이어트광에 명품광으로 유명한 그녀는 2주간의 수유 끝에 남편의 동의도 없이 쌍둥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합니다. 사회인류학을 공부한 남편은 별거를 선언하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우리가 ‘부’라고 부르는 것을 그들이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아이들을 그들이 나고 자란 환경에서 떼어놓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 일인가.”

    이에 대해 그녀는 “앤절리나 졸리가 아이들을 입양할 때 브래드 피트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내 남편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고 원망했습니다.

    수업시간의 반응은 ‘예술이다, 아니다’로 팽팽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과연 이 사진을 보고 수단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고민하게 되시는지요? 아니면 자기애에 빠진 한 백인여성의 초상을 보는 느낌이신지요? 수단의 비극은 그녀의 그을린 드레스 끝단처럼, 백인우월주의를 장식하는 이국적 정서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 사진을 ‘기념품’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쌍둥이도 그녀에게는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기념품에 불과한지도 모르겠군요.

    예술품인가, 기념품인가
    이 사진에서 구원하는 것은 누구이며 구원되는 것은 누구입니까. 사진 속 그녀는 세계를 구원하는 성모 마리아 같은 자애로운 눈빛을 연출하지만 엄청난 돈과 명예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녀 혹은 그녀가 속한 세계를 구원하는 것은 오히려 순진하게 젖을 빨고 있는 저 벌거벗은 수단의 쌍둥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이슈를 불러일으킨 이 작품이 이슈만 남기고 사라질지, 아니면 예술사에 한 줄을 남길지 좀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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