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5

2008.05.13

조선, 왕권과 신권의 시소게임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5-08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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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권과 신권의 시소게임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br>신동준 지음/ 살림 펴냄/ 592쪽/ 1만8000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바로 앞 시대가 조선 500년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신동준이 쓴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를 정독하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구나’라는 안타까움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통으로 사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사학자들이 공유하던 고정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대신 저자는 한자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다. 책의 참고문헌에는 ‘경국대전’ ‘고려사절요’ 등 많은 원저들이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원전 탐구를 바탕으로 저자는 조선 역사 500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조선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 역사를 왕권과 신권의 대결구도로 바라본다. 조선의 국운이 번성하던 시기는 초기 100년이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시작으로 태종, 태조, 세종 그리고 연산군에 이르는 100년의 세월은 왕권이 신하들의 힘을 압도하던 시대였다. 조선은 이 100년 동안 비축한 힘을 바탕으로 북쪽으로 고구려 영토의 일부를 되찾고, 남쪽으로는 왜구의 소굴을 소탕했다.

    이성계를 앞세웠던 개국공신 정도전이 본래 꿈꾸던 국가는 왕권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는 성리학으로 무장된 신하들이 함께 지배하는 신권국가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간파한 군주가 태종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고 조선 초기 번영의 100년을 가능케 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태종의 위업으로 세종, 성종,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번영된 국가의 길을 달리게 된다. 연산군 시절에는 물산이 풍부하고 사대부에서부터 여염집까지 사치풍조가 만연할 만큼 융성했던 국가가 바로 조선이었다.



    우리는 연산군을 극악무도한 패륜의 군주로 꼽는다. 조선조 전체를 통해서 신하들에 의해 제거된 군주가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인조반정으로 제거된 광해군에 대한 승자의 기록은 최근 소장학자들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광해군의 복권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연산군에 대해서는 별다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2003년 ‘연산군을 위한 변명’(지식산업사)을 펴낸 바 있다. ‘연산군일지’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중종반정이 결국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군주를 몰아낸 신하들의 반역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연산군이 신하들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권세력을 무자비하게 축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은 중국과 달리 건국 초기부터 있었던 사간원, 사헌부에다 성종 대에 만들어진 홍문관이 있었다. 이들 3사가 지나치게 왕권을 제약하는 국가의 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이를 두고 왕도주의라 하는데, 좋은 의미에서 임금과 신하가 권력을 공유하는 군신 공유의 이념을 따른 국가형태다.

    저자는 연산군을 아버지 성종 시대부터 약해지고 있는 왕권을 복원하려 한 현명한 군주로 정의한다. 연산군의 제거는 조선 역사에서 왕권의 몰락과 신권의 압도를 뜻한다.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중종 대부터 사색당쟁과 세도정치의 원조에 해당하는 신진세력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중종의 치세는 신권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 신권국가로 진행하는 첫머리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지적한다. 이후 조선은 줄곧 허약한 왕권을 대신해 신하들이 국정을 주도했으며, 훗날에는 신하 중에서도 외척이 주도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전자를 붕당정치로, 후자를 세도정치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선조 때 신권세력의 주축이었던 사림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데 기여한 인물들이 우리가 잘 아는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다. 저자는 두 명의 현자에 대해서도 기존 역사학계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두 사람은 훗날 사색당쟁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전 해석에 대한 견해 차이는 이념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념 갈등은 파당 분열을 부추기고, 급기야는 이론 투쟁에서 승리한 파당의 이념만이 통용되는 이른바 ‘사상의 화석화’ 길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왕권의 몰락과 신권의 압도가 왜 중요한가? 신권세력이 왕권을 압도하는 신권국가는 하나같이 문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당파적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신하들은 국가와 백성의 안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게 마련이다.

    조선 붕당정치의 클라이맥스는 세도정치이고, 이후 조선은 일본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조선의 역사를 신권과 왕권의 대결로 바라보는 시각은 조선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현실과 분리된 헛된 명분과 이념, 그리고 당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저자의 학습 결과물을 손쉽게 얻는 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성이 듬뿍 들어간 대작(大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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