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5

2008.05.13

추한 그로테스크 작품 고도의 아름다움 내재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입력2008-05-07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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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한 그로테스크 작품 고도의 아름다움 내재

    루시안 프로이트 ‘Benefits Supervisor Sleeping’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일반인의 불만 중 하나는 작가들이 추하고 섬뜩할 정도로 혐오스러운 이미지들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미술을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쾌감을 자극하고 꿈자리를 고약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 작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신성함의 상징인 교황 얼굴을 울부짖는 짐승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뉴욕 경매에서 생존작가 최고가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는 루시안 프로이트(85)의 1995년작 ‘Benefits Supervisor Sleeping’은 살이 비곗덩어리처럼 부풀려져 숨쉬기도 힘들어 보이는 뚱뚱한 여인이 소파에서 누드로 잠자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도저히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작품들이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예술의 가치가 적어도 미(美)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시기에 미와 조화가 미술의 중요한 추동력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컨템포러리 작가들은 이러한 편견을 공격하면서 추하고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형상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려 한다. 포스트모던 미술에서 그로테스크함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인식은 이원적이고 기호적이어서 상대적인 것을 통해서만 자각하게 돼 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선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고 나서 역설적으로 일상의 편안함을 깨닫고,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이 드라마에서 악역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극도의 불행에 처했을 때 극도의 행복을 갈구하듯, 고도의 추함에는 고도의 아름다움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예술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와 추라는 외적 허상들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실재)을 얼마나 깊이, 밀도 있게 파고드느냐 하는 점이다. 그 실재는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하고 오묘한 세계다. 작품의 가치는 메모리칩처럼 실재의 미세한 정보들이 얼마만큼 압축돼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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