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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줄기세포 진실게임

반전에 반전…10일간의 미로 속 진실 찾기

‘황우석 파동’ 미스터리 추적 … 젊은 과학자들 제보 확인하며 한 걸음씩, 폭로·역공에 진실은 묻히고 상처만

  •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tyio@pressian.com

반전에 반전…10일간의 미로 속 진실 찾기

반전에 반전…10일간의    미로 속 진실 찾기

12월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MBC `PD수첩팀.

이만한 할리우드 영화 소재가 또 있을까? 12월4일 YTN이 MBC PD수첩의 취재 방식을 문제 삼는 보도를 내보낼 때만 해도 누구도 황우석 교수의 ‘몰락’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때 황 교수에게 적대적이었던 일부 언론마저도 PD수첩의 ‘취재 윤리’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사실(fact)을 쥐고 있는 PD수첩이 프로그램의 존폐 위기에 처하는 마당에 ‘살길을 찾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뭔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그만둘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거대한 권력’이 된 황 교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앞으로 상당 기간 불가능할 게 뻔했다. 이미 지난 5년 동안 ‘황우석’이라는 권력 앞에서 생명윤리법이 어떻게 굴절돼 제정됐는지, 국가 연구개발비의 ‘특혜’가 얼마나 심한지를 봐왔던 터였다. 더구나 연이은 성공으로 황 교수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과학기술 시대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축될 가능성을 예고한다는 점에서도 ‘저항의 몸짓’이 필요했다. 지난 1년간 생명 윤리, 연구 윤리, 연구 개발비 등으로 잽을 날려오던 차에 모처럼 찾아온 ‘한판 싸움’의 기회를 이렇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황 교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이었다. 그러나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에서 극적 반전은 필수적이다. 정작 반전의 계기를 제공한 곳은 황 교수는 물론 어떤 언론도 생각지 못했던 곳이다.

생명과학자들 구직 게시판에 “줄기세포 사진 중복” 제보 올라

12월5일 아침, 무거운 마음에 출근을 해서 e메일을 확인하자마자 “강 기자님! 이것 꼭 확인하세요”, “꼭 기사화해주세요”, “제보입니다” 등의 제목을 단 10개의 메일이 목록에 떴다.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부속서(supplement)에 실린 11개의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들에서 ‘중복 사진’이 발견됐다는 제보였다. 분명히 같은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인데 다른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으로 올라와 있다는 것.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속서에 첨부된 사진은 논문에 서술된 내용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의 진위 여부를 증빙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논란의 발단이 됐던 곳은 한국과학재단 지정 생물학정보센터(BRIC)의 한 게시판. 평소에도 젊은 생명과학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들락거리던 이 게시판의 원래 용도는 젊은 생명과학자들의 구인, 구직이다. 말 그대로 생명과학계의 사이버 비정규직 인력시장인 셈이다. 하지만 비록 한 달에 수십만원에 노동력을 파는 신세지만 이들의 실력만은 세계 수준이었다. ‘무명씨(anonymous)’의 줄기세포 사진에 대한 의혹 제기는 이미 수십 명의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사실로 확인돼 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기사를 냈다.



기사의 반향은 컸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황 교수팀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많은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몇 장의 사진이 잘못 들어갔다는 것이다. 예전에 문제를 발견해 사이언스에 정정 신청을 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결과 이런 황 교수팀의 해명은 거짓말이었다. 2주일이 지난 뒤 사이언스는 “BRIC 게시판에 줄기세포 사진과 관련된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한국 시각으로 12월5일 새벽이며, 황 교수가 이 사실을 e메일로 사이언스 편집실에 알린 것은 한국 시각으로 12월5일 오후 1시29분”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팀이 그날 새벽 사진과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12시간 정도 지나서야 사이언스에 통보한 것이다.

네이처 편집인 출신의 NYT 기자도 e메일로 관심 표명

같은 날 오후, 다른 취재로 신뢰를 쌓았던 한 지인이 “황 교수 줄기세포 진위 논란과 관련해 깜짝 놀랄 만한 제보를 하겠다”며 잠시 만날 것을 제의해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지인이 들고 온 것은 서류 봉투. 바로 PD수첩이 했다는 2번 줄기세포와 그 원 주인의 DNA 지문 분석 결과와 피츠버그 대학의 제럴드 섀튼 교수 밑에 있는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 녹취록이었다. “출처는 묻지 말라. 나도 PD수첩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니다.” 황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뭔가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는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자료는 ‘가뭄에 단비’였다.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동안 PD수첩이 황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불을 지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마음 독하게 먹고’ 해볼 만한 일이었다. 6일 우선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같은 날 세상의 관심은 온통 난자 기증을 약속한 1000명 여성과 황 교수의 팬들이 그의 조기 복귀를 기원하며 서울대에 뿌려놓은 진달래 꽃잎에 집중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PD수첩이 방영할 수 없는 자료를 보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판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씩 ‘진실’로 인도할 ‘사실’들을 보여주는 게 필요했고 지금 손에는 2개나 그 ‘사실’이 있었다.

예상대로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는 반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이런 의지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같은 날 젊은 생명과학자가 역시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부속서에 실린 DNA 지문 분석 결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를 보내왔다. 이 문제 제기의 핵심은 DNA 지문 분석 결과 나온 피크의 높이, 모양 등이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이다. DNA 지문 분석은 두 개의 상하 결과를 수직으로 비교했을 때 위치가 똑같은지로 ‘일치/불일치’ 여부를 따진다. 그런데 서로 다른 시료를 쓰다 보니 위치가 같더라도 피크의 높이, 모양, 배경의 노이즈는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DNA 지문 분석 결과는 피크의 높이, 모양은 물론 배경의 노이즈까지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주 닮아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 생명과학자와 몇 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또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면서 이 문제 제기도 ‘진실’로 인도할 ‘사실’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런 결론과는 별개로 이미 BRIC 게시판에서는 이 문제 제기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심스럽지만 ‘희귀한 DNA 지문 분석 결과’라는 데는 대개 의견이 모아졌다. 개별적으로 접촉한 몇몇 전문가들은 한 개의 DNA 샘플을 이용해 2개의 결과를 내 각각 ‘체세포 DNA 지문 분석 결과’와 ‘줄기세포 DNA 지문 분석 결과’로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보도 역시 국내 언론은 침묵했지만 정작 반향은 다른 데서 왔다.

반전에 반전…10일간의    미로 속 진실 찾기

12월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MBC `PD수첩팀

12월9일 니콜라스 웨이드라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e메일을 보내왔다. “한 재미 과학자가 당신이 쓴 8일자 기사를 가서 볼 것을 권했다.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모르지만 기사에 첨부된 DNA 지문 분석 결과만으로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당신의 기사도 번역해서 볼 생각이다.”

니콜라스 웨이드가 누구인가? 그는 ‘네이처’의 편집인 출신으로 이미 1983년에 ‘배신의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기자다. 과학자의 부정행위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베테랑 기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관심은 국외뿐만이 아니었다. 9일에는 서울대의 생명과학 관련 소장 교수들이 정운찬 총장에게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이들 교수들도 이구동성으로 ‘논문에 첨부된 DNA 지문 분석 결과에 의구심이 제기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전에 반전…10일간의    미로 속 진실 찾기

12월16일 황우석 교수가 논문 철회의사를 밝힌 ‘사이언스’.

12월10일은 또 다른 ‘반전’의 날이었다. 새벽에 메일을 열자 정확하게 24통의 제보가 들어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24통의 제보는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사이언스 논문의 줄기세포 사진들 중에서 중복된 것 3쌍을 추가로 더 찾았다는 것이다. 이미 BRIC 게시판에는 새로 발견된 중복 사진들에 대한 검증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미 여러 가지 ‘사실’들이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던 입장에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어서 뉴욕타임스의 웨이드 기자가 이 문제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루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창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정리하고 있는 시점에 YTN에서 ‘폭탄’이 터졌다. YTN이 “황 교수의 지시로 사이언스 논문에 실릴 사진을 불려서 더 많이 찍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피츠버그대학 이형기 교수의 사적인 e메일을 근거로 보도한 것. 이미 입수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기사를 10일 다 써놓았던 나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12일 아침에 나가야 할 기사를 10일 토요일 오후에 바로 올렸다. 한 다른 매체의 기자가 보낸 문자처럼 ‘회심의 대반격’이었다.

녹취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점차 드러나는 ‘진실’에 다급했는지 황 교수팀은 ‘황우석 죽이기’라는 원색적인 딱지를 붙인 반박문도 내놓았다. 하지만 한 주일 내내 계속된 ‘함량 미달’ 반박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대세를 꺾을 수 없었다. 한 주가 시작되자 또 1쌍의 중복 사진이 발견돼 총 9쌍의 서로 다른 줄기세포 사진이 중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13일 계속 피츠버그대학의 한 유학생으로부터 e메일 제보가 있었다. “피츠버그대학이 황우석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을 검증한 결과 100% 조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 그리고 황 교수의 이전 논문에 대한 검증에 착수했다는 것.” 이 제보는 또 다른 피츠버그대학의 지인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됐지만 공식 입장을 듣기 전에는 쓸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12월14일 섀튼 교수가 사이언스와 논문의 공동 저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논문의 공동저자 명단에서 이름을 빼줄 것과 논문을 취소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졌다. 피츠버그대학과 사이언스 편집인에게 국내 상황을 계속 전달하고 반응을 취재해온 웨이드 기자도 같은 내용을 알려왔다. 그는 “한국의 젊은 생명과학자들과 기자가 큰일을 하고 있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12월15일 결국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결정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사이언스 논문에 쓰인 사진 중 미즈메디 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11개의 줄기세포 중 상당수가 미즈메디 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불임 시술을 하고 남은 수정란에서 추출하는 이 줄기세포는 환자의 체세포 핵을 이식해 만든 복제 배아에서 추출하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이런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진 지 몇 시간도 채 못 돼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11개 줄기세포의 대부분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해 온 나라를 ‘공황’ 상태로 몰고 갔다. 그는 더 나아가 “애초에 11개 줄기세포 중 상당수(9개 정도)는 가짜”라는 주장도 했다. 12월4일 YTN의 ‘취재 윤리’ 보도로 이뤄진 ‘반전’이 10일 PD수첩의 녹취록을 통해 다시 한번 뒤집어지고 15일 노성일 이사장의 보도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마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긴박한 10일간이었다.

황 교수의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황 교수는 16일 다시 한 번 ‘대반전’을 시도했다.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치명적인 ‘실수’가 있어 취소하지만 논문에 제시한 줄기세포는 존재했으며, 그것을 추출·배양할 수 있는 기술은 존재한다는 것. 미국의 김선종 연구원도 “처음에 8개의 줄기세포를 확인했으며 3개가 생성 중이었다”고 황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이해할 수 없게도’ 현재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는 미즈메디 병원의 것으로 확인됐다”며 “줄기세포 추출 초기에 냉동 보관해둔 5개의 줄기세포를 다시 배양하고 있기 때문에 10일 후에는 진짜 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인해줄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런 황 교수의 주장에 노성일 이사장은 “거짓말”이라며 전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한때 동료였던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의 ‘진실 게임’이 시작되면서 앞으로 어떤 ‘반전’이 또 기다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만 두 사람도 부인하지 않는 것은 한때 온 국민의 자랑이었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은 만신창이가 된 채 ‘취소’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실수’라고 언급했지만 피츠버그대학과 서울대의 ‘검증’으로 논문의 문제점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만약 앞에서 지적한 여러 ‘부정행위’의 정황들이 100% 사실로 인정된다면 황 교수는 국제무대에서 과학 활동을 할 때 훨씬 더 큰 벽에 부딪혀야 할 것이다.

10일 후 황 교수가 애초에 11개였던 것으로 알려진 줄기세포 중에서 단 몇 개라도 ‘진짜’ 줄기세포라고 확인된다면 황 교수 본인은 물론 이미 ‘황우석 공황’에 어쩔 줄 몰라하는 국민들에게도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물론 선물을 받아 든 후 그 뒷맛은 쓰겠지만 말이다.





주간동아 2005.12.27 516호 (p14~17)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tyio@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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