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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특명 “APEC을 지켜라”

세계 정보기관 총출동 테러 첩보 교환 … 육해공에선 2중 3중 테러 차단 그물망 작전

지상 특명 “APEC을 지켜라”

지상 특명 “APEC을 지켜라”

부산 APEC 회담장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를 가정해 열린 훈련.

오랜만에 부산역에 내리자 서울보다 확실히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다. 따뜻함만큼이나 재빨리 다가온 것은 깨끗함이었다. 이젠 부산도 선진 도시에 진입한 것일까.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 부산은 11월18일 APEC(아·태 경제협력체) 회담을 개최함으로써 빠르게 국제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2년마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APEC만큼 부산을 국제도시로 발전시키는 동인도 없는 것 같다. 이 회담에 참가하는 나라는 21개국으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회담 참가국(26개국)보다 수가 적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는 ASEM의 회원국이 아니고, 중국은 ASEM 때 주룽지 총리를 파견했다. 4강 지도자 중에서 ASEM에 참석한 이는 일본의 모리 요시로 총리뿐. 반면 부산 APEC 회담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4강 지도자가 모두 참석한다. 서울 ASEM에는 1800여명의 대표단과 2200여명의 기자단 등 4000여명이 날아왔으나, 부산 APEC에는 6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4강 지도자 포함 6천여명 참석

ASEM 때처럼 몇몇 나라 정상은 민항기 1등석을 이용해 김해국제공항으로 날아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상은 전용기를 타고 오는데, 4강 정상은 전용기 외에 수행원들이 탄 비행기, 화물기 그리고 예비기까지 끌고 온다. APEC 기간 동안에도 기존 노선을 유지해야 하는 김해공항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비상이 걸린 것이다. 몰려드는 항공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APEC 안전 문제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항공 테러 가능성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김해공항과 APEC 회담 장소인 BEXCO 간의 직선거리가 24km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2001년 9월11일 일어난 미국의 항공기 납치 테러와 같은 테러가 부산 상공에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속 10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에게 24km는 1분30초에 주파하는 거리다. 눈 깜짝할 사이에 김해공항 관제를 벗어난 항공기는 회담장인 BEXCO로 돌진하는 미사일이 될 수가 있다. 때문에 공군의 방공관제단과 이 공역을 담당하는 5전투비행단, 그리고 김해공항 관제를 담당하는 부산지방항공청은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가장 바쁜 곳은 5전투비행단이다. 비행단은 요인이 탄 비행기가 한국 공역에 들어오면 전투기를 띄워 에스코트한다. 그리고 김해공항 상공에 전투기를 초계 비행케 하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비행기가 있으면 신속히 제압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 작전은 방공관제단 통제 아래 이뤄지는데, 방공관제단은 ‘주먹’을 가진 5전투비행단을 통제하는 ‘머리’인지라 그 어느 곳보다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상 특명 “APEC을 지켜라”

부산지방경찰청이 운영하는 APEC 상황실.

전용기 등이 착륙해 영접 행사가 열리는 동안 민항기들의 김해공항 착륙은 금지된다. 민항기는 별 수 없이 김해 상공을 선회하는데, 이러한 통제는 건설교통부 산하의 부산항공청이 담당한다. 많을 경우 김해공항 상공에는 10여 대의 민항기가 선회 비행에 들어가고, 그 외곽을 5전투비행단 전투기들이 초계하는 매우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다. 비행기끼리의 충돌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항공교통 밀집 현상이 일어나는데, 공군과 건설교통부는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야 한다.

항공 테러 다음으로 염려하는 것은 해상으로부터의 공격이다. 해상 공격은 잠수함이나 잠수정, 또는 스쿠터(추진기)를 이용한 침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수중 침투는 여간해서는 잘 탐지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이 해역을 책임진 해군 3함대는 대잠(對潛) 세력을 대거 동원해 예상 수중 침투로를 촘촘히 차단하는 작전에 들어갔다.

육지와 가까운 마지막 해상 방어는 해경이 담당한다. 이곳은 바다로 침투해온 세력이 부상하는 곳이라 해경은 대테러 작전에 투입하는 특공대를 주로 배치한다.

공중과 해상 침투보다 어려운 것이 육상 침투이다. 육상은 사람이 기거하는 공간인지라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인데, 부산 지역을 담당하는 육군 53사단과 부산지방경찰청이 2중으로 경계망을 쳐놓고 있다. 특수전 부대 중의 특수전 부대라고 하는 육군 특전사의 707 특수임무대와 헌병의 특경대, 경찰의 경호부대, 그리고 5개 지방경찰청에 있는 경찰 특공대 요원들이 회담장 외곽을 철통같이 막아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알 카에다 한국에 대한 테러 경고

APEC 회담장은 육해공 차단 작전이 펼쳐지기 때문에 어떤 공격에도 안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APEC 회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는 것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APEC 안전 대책은 철저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 테러리스트들이 회담장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테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56명의 사망자와 650여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7월7일 영국 런던의 지하철·버스 테러는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열리기로 한 G8(G7+러시아) 회담을 방해하기 위해 일어났다.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인데, 이 테러로 인해 G8 회담은 중단되고 이라크 파병국인 영국은 자존심에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

런던 테러는 사전 예고가 있은 후 터져나온 경우였다. 3월18일 영국에서 발행된 아랍어 일간지 ‘알 쿠드스 알 아라비’는 ‘2004년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191명 사망, 1500여명 부상)를 일으켰다고 주장한 알 카에다 산하 조직인 아부 하프스 알마스리 여단이 미국과 미국 동맹국에 대한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정보기관은 이를 런던 테러 사전 경고로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도 경고를 받은 이라크 파병국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10월1일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 TV는 알 카에다 조직의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와 “미국 영국 한국 일본 호주 폴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이탈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노르웨이 호주 파키스탄 등의 목표물이 도처에 널려 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고 떠드는 녹음테이프를 공개한 바 있는데 이는 한국에 대한 테러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지상 특명 “APEC을 지켜라”

국정원과 경찰청은 APEC 경호와 안전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APEC 회담장 근처에 있는 국정원 사무실(왼쪽)과 경찰청 종합상황실을 개소하면서 열린 안전기원 고사.

지난해 8월, 미 의회의 9·11사건 조사위 요원 수전 긴즈버그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알 카에다는 예멘 사람들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한국에서 미국행 여객기를 납치해 테러를 일으킬 것을 검토했으나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 “알 카에다가 한국에 있는 미군 기지를 상대로 테러할 것을 검토한 바 있다”고 밝혔으니, APEC 회담을 앞둔 한국은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는 테러리스트들이 2년간의 잠복기를 거쳐 일으킨 것이었다. 런던의 7·7 테러도 영국 국적을 갖고 생활해온 이슬람계 인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고정간첩’처럼 수년 전에 침투해 현지 시정을 샅샅이 알고 난 후 행동하기 때문에 행사를 앞두고 공항과 항만, 해안을 철저히 검색해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한국에는 9만4000여명의 이슬람 국가 국민이 들어와 있는데, 이중 60%인 5만6400명 정도가 불법 체류자다. 불법 체류자 중 일부는 한국의 단속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포섭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그가 화공학 전문가라면…, 도처에 널린 화공약품 가게를 돌며 조금씩 화공약품을 구입해 사제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알 카에다가 평어(平語)로 된 아주 간단한 암호를 보내주면 그는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알 카에다 세력이 보내는 지령을 어떻게 입수하고 차단할 것인가. 알 카에다는 한국의 정보력과 수사력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조차도 이들의 은신처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퍼즐을 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제협조이다.

국정원 테러 막는 주무부서

일반인들은 테러에 관한 정보와 대비책은 미국이 가장 많이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세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한국에서 미군을 상대로 한 테러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미국 CIA는 물론이고 미군 범죄수사단은 한국인을 상대로 수사를 할 수 없으므로 범인을 추적할 수가 없다. 국정원이나 한국 경찰이 범인을 잡아줄 때까지 CIA와 미국 헌병·범죄수사단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 CIA는 세계 각 나라 정보 수사기관과 다양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과 2004년 북(北)오세티아공화국 베슬란 시 초등학교 인질 사건을 겪은 러시아는 미국 이상으로 테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는 세계 각국 경찰이 인터폴 총회를 열듯이, 2003년부터 세계 정보기관 총회를 열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장 회의(The Meeting of the Heads of Intelligence and Security Services)’로 명명된 이 회의에 대한 호응은 대단하다. 3회째인 올해 회의는 3월1일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렸는데, 무려 48개국에서 76개 기관이 참석했다. 참가국보다 참가기관이 많았던 이유는 러시아에서는 해외정보국(SVR)과 연방보안국(FSB), 미국에서는 CIA와 FBI, 중국에서는 국가안전부(국정원과 유사)와 공공안전부(경찰청과 흡사) 등 복수의 기관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는 UN도 참여했는데 한국에서는 국가정보원의 이상업 2차장(국내 담당)이 참석했다.

이 차장은 이 회의에서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APEC 회담 안전을 위해 각국 정보기관은 테러 정보를 교환하자’고 제의해 그 내용을 국가정보기관장 회의 공동선언문에 넣는 데 성공했다. APEC 회담이 가까워지자 자국 정상이 부산을 방문하게 된 국가의 정보기관도 분주해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 파견해 놓은 자국 정보기관 거점장을 통해 국정원과 수시로 접촉해 테러 관련 첩보를 교환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외국 정보기관과의 활발한 접촉으로 인해 국정원은 APEC 테러를 막는 사실상의 주무 기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에서 만난 국정원 관계자는 “미림팀 도청 사건 등으로 인해 국정원의 이미지가 최악으로 떨어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APEC 회담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44~46)

  • 부산=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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