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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잇단 ‘느리게 살기’ 작품들

‘개발의 반성’ 청계천 … 우리들 삶 뒤돌아볼 실마리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1627@hotmail.com

‘개발의 반성’ 청계천 … 우리들 삶 뒤돌아볼 실마리

‘개발의 반성’ 청계천 … 우리들 삶 뒤돌아볼 실마리
복원된 청계천은 보기만 해도 청량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좁은 개천에 개미처럼 들어찬 인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말하자면 측은함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것은 ‘서울 사람들, 어지간히 갈 데 없다’는 갑갑한 현실의 확인이 자아내는 감정이었다. 물에 손 한 번이라도 적셔보려고 사람들의 물결을 ‘전투하듯’ 뚫고 지나가야 하는 ‘서울특별시민들’. 그건 전혀 특별시민답지 않은 풍경이었다.

한강처럼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도 않은 도심 속 개천이라는 매력, 삶의 공간과 경관이 한데 어우러지며 연출하는 아기자기한 볼거리로서의 가치에도 청계천 복원 소식이 자아내는 단상(斷想)의 앞자리에는 이 1000만 인구의 서울에 이렇게도 쉴 만한 공간이 없냐는 것이다. 이는 수치를 들여다봐도 확인된다. 서울의 전체 면적 중 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외국의 대도시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수치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산 같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면적이 포함돼 있다. 시민들의 접근성 등을 감안한 ‘허수’까지 고려하면 사실상의 공원 면적은 확 줄어든다.

지금은 분명 지나간 수십 년과 같은 개발 연대가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민들은 이제는 일 못지않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진뿐만 아니라 정지 내지 완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숨가쁜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보고 싶어하고, 슬로푸드를 찾고, 틱낫한이라는 자그마한 체구의 스님이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람들은 ‘느리게 살자’는 새로운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멈춰 서서 자기 주변을 둘러볼 만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폭발하고 있는, 이 느리게 살고자 하는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쉴 공간을 찾는 것도 전쟁이 된다. ‘느리게 살기 위해 빨리 달려야 하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흥행에 성공한 상당수의 영화들은 바로 이 ‘느리게 살기’에 호소함으로써 뜻밖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사실 영화야말로 현대 속도전의 첨병 중 하나였다. 첨단 하이테크들이 동원돼 실제 세계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가공할 속도의 질주가 스크린에 펼쳐졌다. ‘더 빠르게’라는 구호는 올림픽에서뿐만 아니라 스크린 위에서도 울려퍼졌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웰컴 투 동막골’ ‘말아톤’ ‘집으로(사진)’ 등은 종래의 흥행기준에서 벗어난, 다소 예외가 될 법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이 한 번의 예외에 그치지 않고, 거듭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여기에 새로운 성공 코드에 호소한 뛰어난 감각이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느리게 살고 싶은 현대인의 감성에서 재빨리 새로운 상품성을 발견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 역설적인 면이 있었다면 속도전적인 삶의 탈피라는 꿈을 꾸는 관객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는 속도전적인 사고가 필요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딜레마인 셈이다.

우리 사회의 ‘개발의 반성’이 진행되는 방식도 그런 점에서 흡사하다. 개발에 대한 반성문을 쓰는 방식도 개발을 하던 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쏟아진 비판 역시 여기에 있었다. 복원 공사는 숱한 비판과 논란을 뒤로하고 날을 맞추듯이 고속으로 이뤄졌다. 복원된 청계천이 생태공간이냐 조경시설이냐에 대한 논란은 그래서 여전히 남아 있다. 본래부터 물이 별로 없는 건천이었던 청계천의 특성에 맞지 않게, 부족한 물을 한강에서 퍼온 물로 억지로 채우는 식의 복원이 반쪽짜리라는 것은 분명히 타당한 비판이다. 다만 우리 삶 자체가 이중적인 마당에 청계천에 대해서도 조금은 너그러워질 필요가있다. 청계천을 완결된 해답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실마리로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함은 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구석들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결함이 없는 청계천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우리 삶도 정말 느려지는 것이 아닐까.

청계천이 아닌, 아직은 여전히 바쁜 우리들의 삶을 위한 ‘변명’이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83~83)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16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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