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0

2005.06.21

독창적 영화 미학 … 할리우드 최고의 ‘미다스 손’

  • 입력2005-06-16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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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적 영화 미학 … 할리우드   최고의 ‘미다스 손’

    스티븐 스필버그와 그의 대표작 ‘죠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할리우드다. 그는 할리우드의 과거였고 현재이며 미래다. 그는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공장 내에서도 최고의 공장장이며, 감히 실패를 생각할 수 없는 미다스의 손이다. 그러나 ‘영화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이며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할리우드 영화 공장 시스템과 스필버그는, 자웅동체의 한몸으로 생각되지만 어느 순간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 결별의 지점에서 스필버그의 독창적 영화 미학이 탄생한다.

    75년 ‘죠스’ 흥행 성공으로 스타 감독 대열에

    우리가 기억하는 스필버그의 영화들, 즉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죠스’라든가 ‘E.T.’, ‘쥬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들은 모두 현실세계의 갈등에 발목이 잡힌 영화들은 아니다. 우주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의 아이들과 우정을 맺는다든가, 수천만 년 전의 공룡이 다시 나타난다든가, 아니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고대의 보물을 찾는다든가 하는, 삶의 시공간을 초월하며 오락적 즐거움을 극대화한 작품들이다.

    스필버그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한결같이 현실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성공작들은 예외 없이 지상의 아픔이나 고통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의 영화들은 현실 자체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팬터지에 기초하고 있다. 꿈으로 표현되는 스필버그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상적 삶의 구질구질함과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왜 그의 시선은 언제나 다가올 미래 혹은 감춰진 과거로 향하고 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는 1947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으며 70년 롱비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화과를 졸업했다. 그해에 만든 단편 ‘엠블린’은 애틀랜타 영화제에 출품되었고, 스필버그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뒤 자신의 영화사를 만들 때 그 이름이 된다. 엠블린 엔터테인먼트는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여 스필버그 사단을 형성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지금 스필버그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중심인 드림웍스의 공동 설립자다. 스필버그는 대학 졸업 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사하여 TV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시절 만든 TV용 영화 ‘대결(Duel)’은 유럽의 극장에서도 개봉되었고 아보리아츠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스필버그의 첫 장편 극영화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슈가랜드 특급’(74년)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영화는 ‘죠스’(75년)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변을 찾는 여름철이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 ‘죠스’, 그 긴장감 있는 음악과 함께 기억되는 ‘죠스’의 연출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는 스필버그의 마력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었다. ‘죠스’는 영화 사상 최초로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돌파한 작품이었고, 스필버그는 이후 ‘E.T.’ ‘쥬라기 공원’ 등의 성공으로 자신의 기록을 계속 뛰어넘는다.

    독창적 영화 미학 … 할리우드   최고의 ‘미다스 손’

    ‘우주전쟁’

    스필버그 초기작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가족주의의 가치관 속에서 위태롭게 지탱되고 있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함을 자극하면서, 현실 너머의 또 다른 위안처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 거대한 세계의 추악한 비밀을 알지 못하던 유년 시절의 꿈을 복원하고, 세계와 맞부딪치면서 받기 시작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담겨 있다. 스필버그 영화들이 자주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전개되거나 유년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현실적 가치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적 가치를 영화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영화가 유아기적 퇴행으로 현실의 복잡한 갈등을 일시적으로 무화(無化)한다는 의구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잠깐의 허구적 환상으로 삶의 고달픔을 잊는 게 아니라 그 본질적 원인을 찾아내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현실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무겁고 불편해져 버린다. 흑인 문제를 다룬 ‘칼라퍼플’(85년)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 거주하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된 소년의 성장통을 그린 ‘태양의 제국’(87년)의 실패는 현실적 문제들을 허구적 구조물 속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스필버그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이렇게 스필버그의 영화가 조금씩 다른 징후를 내비치기 시작한 것은 ‘칼라퍼플’과 ‘태양의 제국’부터였다.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단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한 ‘칼라퍼플’의 충격은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태양의 제국’까지 이어졌다. 더구나 이 작품들은 흥행 성적도 좋지 않았다. 자신의 앞 세대 작가들인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의 마틴 스코시즈나 ‘지옥의 묵시록’ ‘대부’ 시리즈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처럼, 상업영화의 제왕으로서뿐만 아니라 영화작가로서도 인정받고 싶었던 스필버그의 욕망은 이렇게 좌절되었다. ‘칼라퍼플’이나 ‘태양의 제국’은, 목적성이 뚜렷해질 때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발목에 쇠사슬을 채운 것처럼 무거워지고 불편해지며 답답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스필버그는 가슴 아픈 실패를 겪은 뒤 다시 그의 장기인, 동심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린아이의 시선과 세계가 만나는 ‘후크’(91년)와 ‘피터팬’을, 초현실적 공간에서 팬터지를 찾는 ‘쥬라기 공원’(93년)을 만들며 상업적 흥행 능력에 이상이 없음을 재확인해준다. ‘쥬라기 공원’이 나온 93년은 스필버그 영화 인생의 분수령이 되는 해다. 그해 그는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가 그것이다.

    ‘칼라퍼플’ ‘태양의 제국’으로 실패 맛보기도

    처음부터 상업적 흥행성보다는 아카데미를 겨냥하고 제작된 ‘쉰들러 리스트’는, 유대인으로서의 스필버그가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한 작품이기도 했다. 극장 안에 있는 동안 대중의 감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스필버그가 2시간 30분 분량의 흑백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상업적 욕망을 거의 포기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렇게 욕망의 끈을 놓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소재 자체가 자신의 핏줄과 연관이 있는 홀로코스트였기 때문에, ‘쉰들러 리스트’에는 진정성과 자유스러움이 존재한다.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독창적 영화 미학 … 할리우드   최고의 ‘미다스 손’

    ‘E.T’

    94년 아카데미영화제는 상업영화의 제왕이며 할리우드 미다스의 손인 스필버그를 받아들인다. ‘쉰들러 리스트’는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포함한 8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스필버그는 이제 상업성과 예술성이라는 양날의 칼을 움켜쥔 세계 영화의 제왕이 되었다.

    아카데미라는 장벽을 뛰어넘은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 이후 예술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해방되면서 훨씬 자유스러운 행보로 이전 작품을 뛰어넘는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그의 관점은 여전히 순진무구한 동심의 상상력으로 현실적 갈등을 초월하는 데 집중되어 있지만 더 이상 퇴행적인 유아적 상상력이라는 놀림을 받지는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99년)는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바탕은 역시 가족주의에 물줄기를 대고 있다. 이 작품은 스필버그가 현실적 소재를 가지고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더 이상 ‘칼라퍼플’이나 태양의 제국’ 시절의 무거움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적 욕망으로 인해 현실로부터 떠 있는 것 같았던 그는 확실하게 지상에 착지하고 있다. 스필버그의 두 다리는 지상의 고통 위에 단단하게 서 있다. 그러나 그의 절묘한 균형감각은 현실의 고통을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포장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가족주의와 애국심은 스필버그 영화의 변함없는 기둥이다. 이것이 그의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직접 각본까지 쓴 ‘A.I.’는 스필버그 영화의 단골 소재들, 즉 미래 사회와 어린아이를 함께 아우르고 있지만 ‘E.T.’류의 따뜻한 이야기는 아니다.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비전은 스필버그가 꿈꾸는 인류의 미래가 결코 낙관적 전망 아래서 성장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역시 종래의 낙관적 세계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스필버그는 여전히 유쾌하게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년)이나 ‘터미널’(2004년) 같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인간탐구를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올여름 개봉되는 블록버스터 ‘우주전쟁’은 변화하는 스필버그 영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우주전쟁’도 H. G. 웰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혹성탈출’이나 ‘페이첵’의 원작자인 필립 K. 딕이나 19세기 말의 선지적 공상과학 소설가 웰스의 공통점은 미래를 결코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인과의 만남은 ‘E.T.’처럼 화해 가능한 행복한 노선 아래서 전개되지 않는다.

    SF 어드벤처 스릴러 ‘우주전쟁’은 1898년 출간된 H. G. 웰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미 한 세기 전에 ‘타임머신’이나 ‘투명인간’, ‘닥터 모로의 섬’ 등 뛰어난 공상과학 소설을 쓴 바 있는 웰스의 ‘우주전쟁’은 외계의 생물체가 지구를 침공한다는 고전적 줄거리를 갖고 있다. 역시 핵심은 할리우드의 변하지 않는 가치, 즉 가족의 소중함이다. 그러나 초기의 가족주의와는 색깔이 다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다시 한 번 스필버그와 작업하고 있는 톰 크루즈는 이혼 후 실의에 빠진 나날을 살고 있는 항만 근로자 레이 페리어 역을 맡았다. 그의 전 부인(미란다 오토 분)은 레이에게 주말을 함께 보내라며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 분)와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 분)을 맡긴다. 영화 ‘우주전쟁’은 자녀와 주말을 보내려는 레이가 집 근처의 교차로에서 엄청난 크기의 다리가 셋 달린 우주 괴물을 목격하면서, 지구 파괴의 위협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 백악관이나 펜타곤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우주선을 몰고 외계인과 대항하여 싸운다거나, 펜타곤의 고위 장성들이 우주인 퇴치를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스필버그가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외계인의 침공에 대항해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뜨거운 가족애였다.

    레이는 영웅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거대한 외계 생명체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역이다. 영화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 초반 레이는 가족으로부터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아버지로 묘사되어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올 때 즐거운 마음으로 오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온다. 스필버그 영화에 가족의 화합 문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사춘기 시절 이혼한 그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다.

    올 12월엔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 다룬 영화 개봉

    ‘우주전쟁’은 그동안의 스필버그 영화가 규모가 크고 드라마의 굴곡 있는 외형을 강조하면서 내면적 드라마를 연기하는 좋은 배우들의 참여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에 비해, 연기력 있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톰 크루즈는 물론 ‘아이 엠 샘’의 깜찍한 소녀 다코타 패닝이 레이의 딸로, 그리고 감독으로도 성공적 활동을 하고 있는 팀 로빈스가 레이 가족들을 자신의 농장 지하에 숨겨주는 오길비 역으로 등장한다. 오길비는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에 있으며 영화 후반의 드라마적 요소를 부풀리게 하는 데 기여하는 인물이다.

    당연히 특수효과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주전쟁’에 등장하는 우주선이나 외계인들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그것들과는 다르다. 비록 조지 루카스가 이끄는 ILM에서 특수영상 효과와 애니메이션을 맡았지만 ‘우주전쟁’은 변함없는 스필버그 사단들, 즉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각본을 쓴 데이비드 코엡, 촬영의 야누스 카민스키, 프로덕션 디자이너 릭 카터, 편집의 마이클 칸, 음악의 존 윌리엄스가 함께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균열된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려 한다.

    지금 스필버그는 72년의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를 찍고 있다. 그가 한 해에 두 편의 영화를 발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3년엔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를, 2002년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발표했다. 7월에 개봉하는 ‘우주전쟁’과 12월23일 개봉 예정인(아직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다)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는, 스필버그의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결코 할리우드 최고의 미다스 손으로서의 상업적 지위도, 예술적 역량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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