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8

..

‘장병 막사’ 지을 돈으로 ‘대통령 별장’ 짓고 있다

계룡대 內 공사에 육군 예산 70억여원 불법 전용 … ‘우선 조치’‘계약 잔액’ 등 모호한 말로 눈가림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5-06-02 11: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장병 막사’ 지을 돈으로 ‘대통령 별장’ 짓고 있다
    3월 말 언론 보도로 확인된 계룡대의 대통령 별장 공사는 청와대 등 관계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마련한 예산으로 건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육군이 장병용 막사 등을 짓기 위해 마련해놓은 예산을 불법으로 전용해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이러한 사실은 한나라당의 송영선 의원과 이한구 의원 등이 국방부에 요구해 받은 자료에서 확인된 것. 장병을 위한 막사와 화장실, 아파트 등을 짓는 데 사용돼야 할 예산이 대통령 별장 건설에 전용된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도덕적 타격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러시아 유전 게이트’와 ‘행담도 게이트’에 이은 ‘대통령 별장 게이트’라 할 만한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평시엔 별장, 전시엔 지휘용 유숙시설

    계룡대에 대통령 별장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3월22일자 조선일보에서였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대통령이 이용할 수 있는 별장이 (휴가철이 시작되기 직전인) 6월 말 완공을 목표로 계룡대에 건설되고 있고’ ‘별장이 완공되면 7월 한 달간 대통령 경호와 안전을 위한 특별 훈련이 실시될 예정이지만’ ‘이 별장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귀빈용으로도 두루 사용될지는 불분명하다’ ‘이 별장은 육·해·공군 사령부가 있는 계룡대 본관에서는 수백m 떨어져 있으나 직접 보이진 않으며, 별장 앞에는 계곡이 있고, 계곡 앞쪽에는 9홀짜리 군(軍) 골프장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국방부는 즉각 브리핑을 통해 “일부 언론이 대통령 별장이라고 언급한 시설은 국가 전시 지휘용 소규모 유숙(留宿) 시설이다. 이것은 제3문서고 관련 시설인데, 기본적으로는 전시 대비용이나 필요할 경우 대통령께서도 사용할 계획이고 외국군 주요 인사 등이 방문했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이 시설이 들어서는 부지의 전체 면적은 6500평이고, 본관이 들어설 대지의 면적은 1000평, 건물 건평은 272평이며 소요 예산은 70여억원이다. 완공 시기는 올해 중반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제3문서고’다. 문서고는 전시(戰時)에 국가 지도부가 들어가 전쟁을 지휘하는 지하 지휘소를 뜻하는 암호인데, ‘벙커’로 불리기도 한다.

    국방부는 이러한 문서고를 여러 군데 건설해놓았는데, 계룡대에 있는 것이 바로 제3문서고다. 전쟁이 일어나 전황이 치열해지면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들은 문서고에서 지낸다. 그러다 전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답답한 지하생활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 대통령이 묵는 곳이 바로 전시 지휘용 유숙 시설이다. 하지만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는 대통령이 어느 때라도 찾아가 쉴 수 있는 별장 구실을 한다.

    의원들 설명 요구에 알기 힘든 답변서

    계룡대는 청와대, 국정원 등과 더불어 경호 경비가 가장 완벽한 곳. 따라서 대한민국 최고의 VIP인 대통령이 이곳에서 휴가를 즐겨야 한다는 데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평시에는 대통령을 위한 별장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장병용 시설을 짓기 위해 마련한 예산을 불법 전용해서 지어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 송영선 의원은 국방부 측에 제3문서고 시설 보완공사(국가 전시 지휘용 유숙 시설 건축) 예산이 어떻게 마련됐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군사시설국은 일반인들은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힘든 답변서(자료 1)를 보내왔는데, 이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설은 올해 1월21일 공사를 시작해 6월30일 끝낼 예정이다. 이 공사를 위해 2004년 설계비로 2억8000만원을 사용했고, 올해는 시설 공사비로 73억원을 사용할 예정이다. 설계비로 지불된 2억8000만원의 예산 항목 코드는 1307-217-402이고, 시설 공사비로 나갈(또는 나간) 73억원의 예산 항목 코드는 1309-217-404이다. 공사비로 책정된 73억원은 시설공사 계약 잔액으로 우선 조치했다.’

    이 풀이에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예산 항목 코드’와 ‘계약 잔액’, 그리고 ‘우선 조치’란 용어일 것이다.

    먼저 예산 항목 코드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매년 가을 정부 각 부처는 이듬해에 펼칠 각종 사업과 예산을 세세하게 적은 ‘예산안 각목(各目) 명세서’라는 방대한 책자를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 이 책자에는 각 사업과 예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분류해놓은 ‘예산 항목 코드’가 부여돼 있다.

    ‘장병 막사’ 지을 돈으로 ‘대통령 별장’ 짓고 있다

    <자료 1> 제3문서고 시설 보완공사 설명 자료. <자료 2> 육본 및 직할기관 설계비 항목. <자료 3> 국방부가 승인한 전용 예산 목록. <자료 4> 육군 3군사령부 시설 건설비 항목.

    예산 전용 땐 장관 승인 거쳐야 돼

    국방부가 작성한 ‘예산안 각목 명세서’에 따르면, 예산 항목 코드 1307-217-402는 ‘육군본부와 직할기관(부대)의 실시 설계비’를 뜻한다. 그렇다면 평시에는 대통령 별장이고, 전시에는 유숙 시설을 설계하기 위해 집행된 2억8000만원은 2004년판 국방부 예산안 각목 명세서의 ‘육본 및 직할기관의 설계비’ 편에 나와 있어야 한다(자료 2 참조).

    그러나 이 자료에서는 아무리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위장 명칭인 ‘제3문서고 시설보완 공사용’이나 ‘국가 전시 지휘용 유숙 시설용’ 설계비라는 이름이 발견되지 않는다. 혹시 다른 이름으로 위장돼 있지 않을까 해서 2억8000만원이 배정된 사업을 찾아봤지만,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이 항목에는 육본과 직할기관의 식당 및 목욕탕, 화장실, 급수시설 등을 짓기 위한 설계비만 나열돼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육본은 2004년에 이미 집행한 2억8000만원을 어디에서 마련한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연말이 되면 통상 전년도에 책정해놓은 예산을 다 집행하지 못해 남는 돈이 있다. 이런 예산을 전용(轉用)해서 문제의 건물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에 나오는 ‘우선 조치’는 전용을 뜻하는 말인 셈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전용이다. ‘회계예산법’ 제37조는 정부 예산을 전용할 때는 기획예산처장관이나 각 부처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육본은 2억8000만원에 대해 이런 절차를 거쳤을까? 은 이한구 의원의 요구로 국방부가 만들어 보내준 2004년도와 2005년도 국방 예산 전용 승인 현황이다. 이 자료를 살펴봤지만 여기에서도 제3문서고 시설보완 공사나 국가 전시지휘용 유숙 시설을 위한 설계비로 전용한 항목이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2억8000만원짜리 전용 예산액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육본이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장병용 시설을 설계하는 데 사용해야 할 예산을 평시에는 대통령 별장으로 전시에는 지휘용 유숙 시설을 설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두 번째로, 73억원이 책정돼 있는 예산 항목 코드 1309-217-404를 추적해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국방부의 ‘예산안 각목 명세서’에 따르면, 1309-217-404는 ‘육군 제3군사령부 시설 건설 예산’을 뜻한다. 육군에서 굳이 대통령 별장을 건설해야 한다면 계룡대에 있는 육군본부 예산으로 집행하거나, 아니면 계룡대가 있는 충청남도를 관할하는 육군 제2군사령부 예산으로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육군은 경기도를 포함한 최전방 서부전선을 관할하는 3군사령부 예산에서 대통령 별장 건설비를 전용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된다. 한국 육군 전력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3군사령부는 육군본부를 비롯한 어떤 육군 기관보다도 예산 규모가 크므로, 돈을 전용한다면 여기에서 하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다.

    예산 규모 큰 3군사령부 돈 끌어다 써

    대통령 별장 건설 의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방부의 ‘예산안 각목 명세서’에 따르면 1309-217-404는 3군사령부의 시설 건설비를 뜻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3군 산하 병사들이 사용할 막사와 화장실·목욕탕·급수시설을 짓는 데 들어가는 건설비와 정비고·창고·탄약고를 짓는 데 필요한 비용, 그리고 부대 사무실과 종교시설·면회시설·환경보전시설을 건설하는 비용을 뜻한다.

    따라서 이 항목에서는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제3문서고 관련 시설 공사는 발견할 수가 없다. 물론 75억원을 할당한 사업도 발견되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주목할 것이

    에 나온 ‘계약 잔액’이란 용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계약 잔액은 ‘공사 계약을 하기 위해 돈을 준비해놓았는데, 막상 계약을 하고 보니 계약금이 준비해놓았던 돈보다 적게 들어가 남게 된 돈’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에서 풀지 못했던 ‘공사비로 책정된 73억원은 시설공사 계약 잔액으로 우선 조치했다’는 말의 뜻은 ‘(평시에 대통령 별장으로 쓰일 수 있는 시설을 짓기 위해) 책정한 공사비 73억원은 3군사령부가 장병용 시설 등을 짓기 위해 준비한 돈 중 쓰고 남은 것을 전용한 것이다’가 된다.

    2005년은 아직 절반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육군은 3군사령부의 시설 건설비가 남을 것으로 판단하고 73억원을 전용한 것이다. 게다가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육군은 과연 이러한 불법 전용을 단독으로 한 것일까. 한 관계자가 털어놓는 이야기다.

    “전시 대비 시설은 합참에서 관리한다. 때문에 이 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소요는 합참에서 제기했다. 그러나 합참 또한 단독으로 이러한 건물을 짓는다고 결정 내릴 수 없다.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기관과 협의해 이러한 제의를 올렸다. 하지만 이 사업을 위한 예산이 적법하게 전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