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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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레즈비언이 어때서요”

10대 ‘이반’ 2만명 추산 … 성 정체성 자각 시기 앞당겨져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1-08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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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레즈비언이 어때서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외국인 관광객과 ‘짝퉁’ 브랜드의 거리. 그러나 이 거리의 또 다른 주인공은 ‘게이’다. 서울에 있는 상당수의 게이바(gay bar)는 종로 3가 낙원동 골목과 함께 이곳 이태원에 자리잡고 있다. 종로 3가에는 상대적으로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은 반면, 이태원은 젊은 게이들의 공간이다.

    이태원의 한 게이클럽을 찾은 것은 지난 1월5일 밤 11시. 늦은 시간이지만 주말 이태원에서는 아직 ‘초저녁’이다. 업소 입구에는 “주중 저녁 8시∼새벽 2시, 주말 밤 12시∼새벽 6시”라는 영업시간 안내문이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서 손님을 맞는 것은 큼직하게 내걸린 ‘미성년자 절대 출입금지’ 현수막. 신분증 없이는 출입할 수 없다는 경고다. 10대 두 명이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추위에 홍조를 띤 얼굴은 아직 앳되기만 하다.

    “게이·레즈비언이 어때서요”
    “단속 걸려서 정지 몇 번 먹더니 신분증 검사가 짱나게(짜증나게) 심해졌어요. 여기가 그래도 분위기 제일 좋은데….” 한 명이 종업원들에게 얼굴이 알려져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10대 게이들이 많이 찾던 인근의 또 다른 업소가 지난해 경찰의 미성년자 단속에 걸려 완전히 문을 닫은 후 더욱 출입이 어려워졌다는 것.

    매주 토요일마다 밤 기차를 타고 올라와 이곳을 찾는다는 이종인군(19·가명)의 집은 충남 천안이다. “갈수록 집이 싫어져요. 제가 ‘이반’(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용어. 이들은 이성애자들을 ‘일반’이라고 말한다)이라는 걸 눈치챘거든요.” 몰래 사용하던 화장품을 들킨 이후 부모의 눈길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곳을)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공간이 그리운 거죠.”



    일행인 김명환군(18·가명)이 맞장구를 친다. “게이바는 대개 술집이에요. 당연히 미성년자 출입금지죠. 레즈비언 카페는 안 그런 곳도 많다던데, 우리 같은 10대 이반들은 갈 곳이 없어요.” 나중에 ‘민증’(주민등록증) 발급받으면 종업원들에게 흔들어 보이며 폼나게 출입하겠다고 말하는 김군의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 배어 있다.

    10대와 동성애.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 ‘10대 게이’ ‘10대 레즈비언’은 평범한 기성세대의 생각으로는 인정할 수 없을 듯한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있다’.

    동성애자 인권모임 ‘친구사이’의 박철민 사무국장은 “90년대 이후 동성애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자신들의 성 정체성에 대해 눈을 뜨는 시기가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 전체의 성 개방 흐름과 맞물려 10대 동성애자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

    이들 10대 동성애자들은 ‘청소년 이성애자가 있다면, 청소년 동성애자도 당연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취재를 하면서 들여다본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세계에는 원조교제 등 리 청소년 사회의 병리현상 역시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안내문과 달리 한참 전에 영업을 시작한 클럽에 들어서자 요란한 음악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과 그 위로 점멸하는 색색의 조명. 언뜻 보아서는 일반 나이트클럽과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12시를 넘기면서 갑자기 늘어나는 손님들 사이에 여자 손님도 드물지 않게 섞여 있다. 그들에 대해 묻자 한 종업원이 “귀찮게 하는 남자들이 없어서 좋다는 여자들이 간혹 있다”고 대답한다.

    어두운 바 구석에서 오렌지주스를 들이키던 세 명의 10대들에게 다가갔다. “당당하고 자연스런 표정으로 들어오면 신분증 없이도 통과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은 밤이 새도록 이곳에서 놀다가 날이 밝으면 귀가할 생각이란다.

    “이반들 중에도 영계 밝히고, ‘원박’(하룻밤을 함께 보낸다는 뜻)하자고 추근대는 어른들이 간혹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쯤 이곳을 찾는다는 권태식군(18·가명)은 “그래서 어른 동성애자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며 경험담을 들려준다. “차비가 필요했거든요. 염치 불구하고 지나가던 아저씨한테 1000원만 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이반이라며 ‘같이 자주면 5만원 주겠다’고 하더군요.” 한동안 숙박업소를 찾아다니던 이 사람은 결국 ‘죄짓는 것 같다’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간혹 그런 식으로 원조교제 하는 친구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서로 털어놓지는 않죠, 왕따당하니까.”

    그들 중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청소년은 단 한 명. 미국 시민권자인 부모님 때문에 하와이에서 태어났다는 오철환군(19·가명)이다. “(부모님은) 워낙 동성애자들을 많이 보셨으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몸단속 잘하고 스스로 주눅 들지 말라고 말씀하시죠.” 다른 친구들에겐 오군의 처지가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클럽 안에는 외국인도 상당수였다. “외국인 이반들은 행동부터 달라요. 보기만 해도 게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닌 척’하다 여기서만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저만 해도 그렇거든요.” 게이클럽을 자주 찾게 되는 이유에 대한 오군의 체험담이다. “어른들을 흉내내고 싶은 마음이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오군은 덧붙인다. “다른 10대 애들이 콜라텍보다 나이트클럽을 더 좋아하는 것하고 똑같다니까요.” 동성애자들을 ‘특별한 사람’ 취급하는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청소년 게이들이 모이는 곳이 이태원이라면, 10대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곳은 신촌의 레즈비언 전용 카페. ‘아는 사람만 아는’ 이런 카페는 이화여대, 연세대, 홍익대 부근에 8곳 정도다. 겉으로 봐서는 다른 커피숍들과 별 차이가 없고, 입구나 창에 ‘Ladies Only’라고 적혀 있는 곳이 가끔 있다. 대부분 오후 늦게 문을 열어 새벽까지 영업하는데, 이들 중 몇 곳은 낮시간을 이용해 미성년자들을 받고 있었다.

    “방학중이라 낮에는 10대 손님들로 거의 꽉 차요.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경우엔 마땅히 갈 곳이 없잖아요. 술·담배를 금지하고 저녁 8시까지만 개방하는데, 지방에서도 올라오고 가끔은 중학생도 있어요.”

    카페 주인 김명우씨의 말대로 ‘레스보스’(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섬으로 ‘레즈비언’의 어원)라는 이름의 이 카페에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너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와 고민이나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 마음이 편하고 행동도 자유로워 좋아요. 방학중이라 거의 매일 나오는 편이에요. 숙제도 하고, 라면도 먹고, 뮤직비디오도 보면서 저녁까지 놀다 가요.”

    올해 고3이 된다는 이은경양(가명)은 “이곳에서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애인과 키스할 수도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꼭 애인끼리 오는 건 아니에요. 아직 애인이 없는 친구도 많아요. 우리도 대화방 사이트에서 만난 친구들이에요.”

    이들 중에는 가까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까지 ‘커밍아웃’을 했다는 이들이 꽤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동성애’라는 것이 그리 놀랍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좀 더 크면 부모님께도 알릴 생각”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여학교에선 한 반에 한두 명에서 서너 명까지도 이반들이 있어요. 고민요? 없진 않지만 깊이 생각하진 않아요. 요즘엔 다들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어쩌겠어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은데… 막는다고 막아지는 건가요?”

    올해 열여덟 살인 정모양은 “이담에 돈 많이 벌어서 동성간 결혼이 허용되는 나라로 이민해 그곳에서 애인과 결혼해 살겠다”는 장래 희망을 털어놓는다.

    “나 역시 이반으로 힘겨운 10대 시절을 보낸 만큼,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사장의 뜻대로 이 카페에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는 강좌와 외국어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레즈비언 카페가 10대 이반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낮에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고, 미성년자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곳도 있다.

    “게이·레즈비언이 어때서요”
    신촌 로터리 부근의 한 레즈비언 카페에 들렀을 때, 종업원 한모씨는 “2, 3년 전보다 10대 손님들이 늘었지만 별로 반갑지 않다. 아무래도 소란스럽고 신분증 검사 등 번거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익대 부근의 한 카페에서는 “낮시간을 이용해 10대들을 받으려 했지만 성인 손님들이 반대해 그만뒀다. 성인 이반들은 10대들과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것을 영 껄끄러워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동성애자를 위한 공간에서 미성년자를 꺼리는 것은 사이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PC통신 동성애 모임을 이끌었던 이태원의 한 게이바 사장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한다. “재작년 무렵부터 10대 (회원 가입) 희망자들이 늘었습니다. 배 이상 증가한 것 같아요.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10대가 무슨 동성애냐’는 의견이 반반이었죠. 아직도 많은 사이트에서 미성년자는 회원 가입조차 안 됩니다.” 이들을 섣불리 가입시켰다가 청소년들이 일부 어른 이반들의 ‘유희감’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견해였다.

    이 때문에 10대들이 선택한 대안은 자신들만의 공간 만들기. ‘청소년 이반모임’을 내걸고 개설된 사이트 수는 30∼40개 된다. 대표적인 것이 회원 수 5000명이 넘는 10대 동성애자 모임 ‘아쿠아’.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하리수의 데뷔로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을 때는 회원 수가 7000명에 달하기도 했다고 대표 이미영양(18·가명·서울 C고)은 말한다.

    “전국적으로 10대 이반의 수가 2만명 정도 된다고 봅니다. 한 반에 한 명 정도는 있는 것 같으니까요.” 전체 인구의 1∼2%는 동성애자로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130만을 헤아리는 우리나라 10대 후반 인구를 대입해 봐도 신빙성 있는 수치다.

    아쿠아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지난 99년 6월. 발족 당시 25명이던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이제는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이 어려울 정도다. 창립 멤버이기도 한 이양은 자신들을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인 첫 세대’라고 말한다. “물론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없진 않아요. 그렇지만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죠.”

    한 언더그라운드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는 이양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안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 같은 반 친구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깨달으면서부터. “여자친구끼리 손잡고 팔짱 끼는 스킨십이야 많이 하는 거지만,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건 그 아이와의 섹스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나 그 친구가 이성애자임을 알고 많이 힘들었다는 이양은 지금도 여자친구와 사귀고 있다.

    “게이·레즈비언이 어때서요”
    아직 10대이므로 이들은 가족에게 들킬 뻔한 ‘위기’를 많이 겪는다. “동성애자 인권모임 유인물을 부모님이 보셨죠. ‘인권문제에 관심 있을 뿐’이라고 둘러댔지만 100% 믿지는 않는 것 같아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양이 쓰는 방법은 가짜 남자친구 만들기. 모임의 다른 남자 멤버들을 동원해 일부러 전화를 걸게 한다.

    김상근군(18·가명·경기 S고)은 중학교 성교육 시간에 틀어준 비디오를 보고 본인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군은 현재 두 살 터울의 학교선배와 사귀고 있다. 만난 지 한 달이 지난 최근에 ‘딱지’를 뗐지만 이를 다르게 해석하지는 말라는 주문이다. “어른들 눈에는 지나치게 ‘까진’ 것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다른 10대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아무 교실에나 들어가 성 경험 유무를 물어보면 절반 이상은 들걸요?.”

    최근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김군의 장래 희망은 자동차 엔지니어. 이를 위해 전공 역시 기계공학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반들도 공부하고 수능 보고 대학 갑니다. 우리를 아주 이상한 무리로 보는 시선이 가장 큰 불만이에요. 그냥 똑 같은 고등학생일 뿐입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동성애자를 희화화하는 걸 볼 때마다 화가 난다는 김군의 말이다.

    아쿠아의 또 다른 멤버 김유진군(19·가명·경기 N고)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자신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하룻밤 상대’도 만나봤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반들은 성에 대해 일찍부터 많은 고민을 하게 되죠. 그러다 준비가 된다고 할까, 일반인들에 비해 성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이에요.” 김군의 가장 큰 불만은 어른들을 향한다. 성인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소수자 가운데서도 소수자’라는 것.

    “간혹 보면 ‘10대들이 너무 막 나간다’고 말하는 어른 이반들이 있어요. 성 정체성을 고민하다 비뚤어질까 걱정된다는 거죠. 그건 자신들이 그랬기 때문이라고 봐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죠.” 김군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친다. “우리가 음습하고 어두운 10대들인가요?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어른들은 왜 그걸 모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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