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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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관리 내 맘대로…일할 맛 나죠”

한국 최고의 직장 ‘삼성SDS’… 직급 파괴·전문성 고려한 인사 시스템 높은 점수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2-23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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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관리 내 맘대로…일할 맛 나죠”
    ‘한국 최고의 직장은 어디일까‘.이러한 질문에 연봉을 기준으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직원들이 회사의 근무 환경에 얼마나 만족하면서 열심히 일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문제는 다소 복잡해진다. 경영자와 직원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해야 하고 인사제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 최고의 직장’이 밝혀졌다. 화제의 기업은 삼성SDS. 이 조사는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AWSJ)과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세계적 경영컨설팅업체인 휴잇 어소시에이츠가 시행한 ‘아시아 최고의 직장’(Best Employers in Asia)이라는 프로그램의 결과다. 삼성SDS는 휴잇 어소시에이츠가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 10개국 355개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최고의 직장’ 조사에서 ‘한국 1위’로 선정되었다. 한국기업의 경우 매출액 기준 상위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다국적기업을 포함해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한 웬만한 회사를 모두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삼성SDS의 한국 1위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IT CEO 배출 ‘벤처 사관학교’

    삼성SDS는 이미 1999년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벤처열풍이 불던 당시, 이직 열풍에 휩싸이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동안 쟁쟁한 IT기업의 CEO를 배출해 ‘벤처 사관학교’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순식간에 불어닥친 이직 열풍 앞에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입사 6년차 송태중 대리는 퇴직 열풍의 원인을 개개인의 경력관리 실패라고 진단했다.



    “IT기술의 트렌드는 계속 바뀌는데 한 분야를 맡아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계속 그 분야를 쥐고 있어야 한다면 직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설정되지 않으니까 퇴직 러시로 이어진 것이죠.”

    삼성SDS가 본격적으로 직원들의 애사심을 높일 수 있는 사기 진작책에 나선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복장을 자율화하고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등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벤처 문화를 자연스레 이식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

    삼성SDS는 인사팀 산하에 ‘다이내믹 에이치알 랩’(Dynamic HR Lab)이라는 인적자원 연구센터를 운영한다. 일종의 상시 태스크포스(T/F) 조직. 이 연구센터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사 컨설팅을 담당한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연봉제 평가방식 등 인사 컨설팅을 외부 기관에 의뢰하는 것과 달리 삼성SDS는 모든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연구센터 관계자들이 시스코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주요 IT기업을 방문해 실적 평가방식과 퇴직자 관리 등 인사관리의 노하우를 배웠고 미 프로야구 LA다저스 구단의 선수관리 방식을 벤치마킹하기까지 했다. 인적자원 연구센터의 신원준 수석컨설턴트는 “선진국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역시 과거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내부 현실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 그 후로는 전략을 180도 바꿔 회사 내부 직원들로 인사 시스템 재편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거래선과 고객을 찾아다니며 삼성SDS 직원들에게 필요한 능력과 자질이 어떤 것인지 물었고 퇴직자를 상대로 기존 인사관리 방식의 허점을 자문 받기도 했다. 인적자원 연구센터는 이런 배경 아래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태스크포스에는 소수의 상근 인력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해당 현업부서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이 때문에 태스크포스를 ‘아메바형 조직’이라고 한다. 인사팀 임영휘 상무는 “인사 컨설팅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직원 개개인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지의 관점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현업에서 올라온 사람로 인사 부서를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전 임직원의 14%가 조금 넘는 여성 인력의 활용방안을 연구해 개선안을 내는 것도 당연히 CEO나 인사담당 임원의 역할이 아니라 입사 4년차인 윤나미 대리의 몫이었다. 여직원 11명으로 구성된 여성위원회 총괄간사를 맡은 윤대리는 회사 차원의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내놓기 위해 관리자들을 앉혀놓고 인터뷰하는가 하면 육아 문제로 인한 퇴직을 방지하기 위해 재택근무 등의 방안을 짜고 있다. 회사측도 여성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내년부터는 그동안 1 명이 담당한 업무를 2명이 나누어 맡으면서 업무부담을 줄이는 ‘일감 나누기’(job sharing)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경력관리 내 맘대로…일할 맛 나죠”
    여직원들을 위한 배려로 삼성SDS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회사 내 어린이집. 회사 건물 한 층의 절반 정도를 어린이집으로 개조해 만 12개월∼취학 전까지의 자녀를 둔 여사원들에게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아이를 맡아주는 것이다. 육아문제로 고통 받는 맞벌이 엄마들이 출퇴근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바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35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에는 대기 순번이 끊일 날이 없다.

    삼성SDS는 사이버 인력 풀(pool) 제도로 직원들이 스스로 원하는 업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전 직원이 스스로 맡고 싶은 업무나 부서를 수시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부서 사정이 허락할 경우 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물론 신청 내용은 당사자들이 기존 근무부서에서 부적격자로 ‘찍히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인사비밀로 처리한다. 또한 업무 인수인계를 고려해 3개월 전 예고발령제를 실시하는 것도 인사관리상 특징 중 하나.

    “경력관리 내 맘대로…일할 맛 나죠”
    퇴직이나 이직을 꿈꾸는 ‘아웃사이더’들을 위해서는 ‘와일드 카드’(wild card) 제도를 도입하였다. 와일드 카드는 재직중 1회에 한해 본인이 원할 경우 부서를 옮길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제도다. 와일드 카드를 신청한 직원에 한해 부서장 의견보다 우선하여 전배조치해 준다는 것이 회사측 방침이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 하나. 말이 그렇지 가고 싶은 부서에 보내준다면 인기 부서와 비인기 부서, 요직과 한직의 경계가 뚜렷해져 경영자 입장에서는 ‘인사대란’까지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원들은 물론 제도 도입 초기에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현재는 별다른 문제없이 운영된다고 말한다. 일단 해당 부서에 빈 자리가 있을 경우 지원자의 복수 신청을 받아 관리자의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마구잡이식 지원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입사 8년차인 박소윤 대리는 “사원들 사이에서는 사이버 인력 풀 제도를 이용해 아예 대부분 부서의 결원 현황을 사이버상에 공개하고 더 많은 지원자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S는 21세기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평사원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대리급 이하 14명의 평사원들이 참여해 사측 대표와 함께 한 달에 2번씩 인사제도나 사원복지 등에 관해 무릎을 맞대는 자리. 뿐만 아니라 1년에 2번은 이 협의회에 사장을 포함한 전 임원이 공동참석해 사원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협의회에 참여하는 송태중 대리는 “최근에도 회사측이 협의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비상경영체제에 따른 각종 경비 축소분을 원상 복귀하는 등 실질적 결과물을 내놓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제도뿐만 아니라 시스템과 관행까지도 과감하게 뜯어고치겠다는 ‘한국 최고의 직장’ 삼성SDS의 다음 번 화두는 전문화(professionalism). 입사 3년차 정도부터는 개인의 희망을 고려해 전문 업무분야를 정한 뒤 여기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해 그 분야의 전문가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지난 봄 실시한 전 임직원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비전을 만들어 냈으며 이를 위해 오는 10월 대대적 신인사제도 선포식까지 갖는다는 방침이다. 인사팀 관계자들은 ‘개인의 비전이 곧 회사의 비전’이라는 원칙을 여러 번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원하는 만큼 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관리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람이 곧 자원’이라는 말이 ‘한국 최고의 직장’ 삼성SDS에서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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