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8

2001.08.23

화려한 싱글보다 결혼이 더 좋아!

佛 지난해 30만 쌍 ‘웨딩마치’ … 편안하고 안정된 가정의 울타리 새롭게 인식

  • < 오정숙/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 ojs-ys@hanmail.net

    입력2005-01-18 16: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화려한 싱글보다 결혼이 더 좋아!
    올해 56세의 소피는 오랜 독신생활을 마감하고 한 달 후면 드디어 결혼식을 올린다. 1968년 5월 혁명 당시 23세의 대학생이던 그녀는 결코 결혼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머리카락이 파뿌리 될 때까지’ 한 남자와 살겠다는 약속도 터무니없어 보였고, 안정과 편안함이라는 말보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망에 더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사랑을 죽여 버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처럼 여겼다. 소피는 1967년 프랑스에서 먹는 피임약을 처음으로 시판하자마자 자유연애를 즐겼고, 1970년대 초반 시몬 드 보부아르 옆에서 낙태합법화를 위해 거리시위에도 참여한 맹렬 여성이었다.

    그러나 50대에 접어들면서 일에 대한 열정도 자유연애의 유혹도 사그라지고, 자기 인생에 주어진 자유가 이젠 피곤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40세의 이혼남 에릭을 만난 것이 이 무렵으로 둘은 이제 인생을 함께할 반려자로서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굳이 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할 수도 있겠지만, 소피는 친지와 친구들의 축복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싶은 것이다.

    불과 25년 전만 해도 프랑스의 많은 젊은이들은 머지않아 결혼제도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결혼 제도가 위협 받기 시작한 것은 68년의 혁명을 거치면서부터. 성의 자유, 피임의 자유, 낙태의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은 한 사람과 평생을 살기보다는 자유 연애를 택했고, 결혼을 통해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지기보다는 ‘좋으면 함께 살고 싫으면 간단히 헤어지는’ 자유 결합을 선호했다. 그들에게 결혼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한 유물이었다. 또한 68년 이후 급성장한 페미니즘의 영향 아래, 진보적인 여성들에게 결혼은 아버지의 성에서 남편의 성으로 법적인 정체성을 바꾸어 버리는 사회통제 정책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의식의 변화에 발맞춰, 동거하는 커플들에게도 결혼한 부부에게 돌아가는 법적 혜택(세금 감면, 의료 보험 등)을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1999년에는 구청에 가서 동거 사실을 신고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커플들을 위해 한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쌍방의 사인이 담긴 종이 한 장으로 모든 법적 혜택을 보장하는 ‘팍스’(PACS) 법안까지 제정되었다. 이처럼 제도적·심리적으로 결혼제도의 종말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었다.

    화려한 싱글보다 결혼이 더 좋아!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모두 30만 쌍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프랑스 사회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수치는 17년 만에 최고치인데다, 양차대전 기간을 제외하고는 가장 저조한 결혼율을 기록한 1993년에서 불과 7년 만에 결혼 열풍이 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유력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바퇴르는 7월19일자 기사를 통해 이 이례적인 결혼붐의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하였다. 도대체 많은 프랑스인은 왜 다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일까?



    우선 최근 1, 2년 사이에 눈에 띄는 현상은 독신을 고집해 온 50대의 68세대들이 뒤늦게 결혼식 대열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소피의 경우처럼, 삶의 자율성과 성의 자유 대신 결혼이 주는 안정과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결혼 열풍에 20대의 젊은이들도 동참하고 있는 것. 대기업 직원인 28세의 시몬은 5년 전부터 동거해 온 베로니크와 몇 달 전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 양손에 꽃다발을 든 세 살배기 딸의 축하를 받으며 성당에 들어섰을 때, 시몬은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고백한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논리에 저항하는 신세대들이 합세한다. 21세의 철학도인 세르주는 이제껏 연애 한번 안 해본 순수파로, 자유연애야말로 ‘원하면 취하고 싫으면 버리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가장 첨예하게 반영하는 소비성 상품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프랑스의 많은 젊은이들이 고통 받는 우울증은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한 개인주의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결혼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기약한다는 낭만적인 꿈인 동시에, ‘시대의 사회 풍조에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이 개인주의에 던질 수 있는 도전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20년 전만 해도 구시대의 유물로 배척받던 결혼이 신세대의 저항수단으로 다시 부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올해 32세의 백화점 의류 판매원 플로르처럼 결혼식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젊은이도 있다. 그녀는 1년 전부터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청첩장도 직접 만들어 보내고 피로연 식사 메뉴에서부터 포도주까지 직접 고르면서, 플로르는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그 날’을 위해 10년 동안 모은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다. 세례조차 받지 않은 비신도지만, 시청에서의 법적인 결혼식 이후 종교적인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성당까지 물색해 놓았다. 20년 전이라면 어떤 신부도 비신도에게는 성당의 문을 열어주지 않겠지만, 요즘은 새로운 신도를 받아들여 신앙심을 일깨우기 위해 비신도의 결혼을 주재하는 사제들도 많이 늘었다. 파리 3구의 구청장인 미셸 쇼당송은 “현대인은 자신을 연출하고 싶은 필요를 느끼고, 결혼식은 그 좋은 기회다”고 지적한다.

    프랑스에서 20년 전의 결혼과 지금의 결혼은 풍속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작년에 결혼한 쌍의 90%가 동거하다가 결혼한 경우이고, 그 중 30%는 첫 아이 출산 후, 18%는 두 번째 아이 출산 후 결혼식을 올린다. 그야말로 요즘의 결혼은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에 연출, 주인공까지 각자의 취향과 소망에 따라 선택하는 ‘아름다운 연극’을 연상시킨다.

    현재의 결혼 열풍이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프랑스의 경기 호전에 힘입은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혼율 30%의 한국에서 결혼제도가 위협당하기 시작했다면, 프랑스는 70년대에 이 시기를 거치고 이제는 ‘새로운 사회에 맞게’ 재정립한 결혼과 가정이라는 고전적 가치로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