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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나노 유토피아’

“경쟁력 있지만 인력과 투자 부족”

한국 나노 기술의 현주소… 뚜렷한 산업화 모델부터 설정해야

“경쟁력 있지만 인력과 투자 부족”

“경쟁력 있지만 인력과 투자 부족”
”현재의 나노 과학은 미개척 지대입니다. 이곳이 옥토인지, 아니면 황무지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한 과학자의 표현처럼 아직 나노 기술은 우리에게 멀리 있는 어떤 것이다. 매스컴은 나노 기술(NT)이 BT(생명공학), IT(정보통신)와 함께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신기술이라고 떠들지만 어째서 나노 기술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주간동아’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한국에서 나노 기술을 연구하는 몇몇 과학자들을 연속적으로 인터뷰했다. 그들 중 누구도 나노 기술이 가져올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통해 나노 기술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나노 과학의 선두주자는 단연 임지순 교수(서울대 물리학)다. 그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탄소 나노 튜브를 이용해 나노 단위의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98년 ‘네이처’지에 게재한 임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미 버클리 대학교의 연구진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임교수는 탄소 나노 튜브를 전자총으로 이용해 차세대 평판 TV브라운관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관과 함께 진행중인 이 연구가 성공하면 벽걸이 TV(PDP)보다 한층 얇고 선명한 TV수상기가 상용화할 것이다. 임교수는 한국의 나노 과학이 외국보다 뒤진 것이 아니며 평판 TV의 경우 세계 제1의 기술력을 보유한다고 설명했다. “나노 기술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한 기술입니다. 또 나노 기술은 IT나 BT의 연구에 중요한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요.” 그는 한국 나노 연구의 미래를 낙관했다.

유룡 교수(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는 나노 과학에서 임지순 교수 못지않은 성과를 거둔 사례로 꼽힌다. ‘나노 파이프’라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한 그의 논문이 최근 ‘네이처’지에 게재되었다. 유교수는 이 논문에서 나노 파이프를 이용해 연료전지의 백금 촉매를 개선하는 방안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가 실용화하면 연료전지가 화학에너지를 직접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다고 유교수는 설명했다. 그 결과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세대 자동차나 빌딩 내에서의 자가 발전은 물론 한 달 동안 사용하는 휴대폰 전지 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유교수는 전망했다.

원래 소재화학을 전공한 유교수는 나노 과학의 범위가 대단히 넓어 너나할것없이 나노의 이름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나노 과학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 중 가장 전망 있는 쪽으로 반도체와 의공학을 꼽았다. 유교수의 지적대로 의공학은 ‘나노 기술의 꽃’으로 손꼽힌다. 나노 과학을 다룬 언론은 미래에는 나노 과학이 몸 속을 다니며 병을 치료하는 로봇 등을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전망이 실현된다면 참으로 환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근본적인 기술, 즉 초미세 로봇을 만들기 위한 가공 기술이나 로봇을 몸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회로기술 등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의공학에서 나노 기술의 응용은 신약 개발과 유전자 분석, 유전자 조작 등에 주로 쓰인다.



나노 과학을 의공학에 응용한 국내 학자는 손으로 간신히 꼽을 정도다. 그 중 한 사람인 조영호 교수(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는 분자 이하의 세포와 근육, 그리고 생물체의 기관들이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쟁력 있지만 인력과 투자 부족”
“동물세포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해 공학적인 장치를 만들면 기계가 수행할 수 없는 동작들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나노미터 단위의 글씨를 쓸 수 있는 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펜을 사용하는 손이 없다면 펜이 있어도 소용없겠지요. 아주 작은 생물체들의 동작에서 이 ‘손동작’을 빌려와 공학적인 장치에 구현하는 것이 제 연구의 목표입니다.”

조교수는 공학 쪽의 신기술이 나노 과학을 기초로 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가 보는 나노 과학은 가능성이 큰 미개척지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대규모로 나노 과학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나노 과학의 투자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전문인력의 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야는 약간 다르지만 김성준 교수(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역시 의공학과 나노 과학을 결합시킨 연구를 진행중이다. 초미세 생체전자시스템 연구센터장인 김교수의 연구는 좀더 실용적인 면이 강하다. 그는 장애인들의 손상된 신경세포를 나노 기술을 이용해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장애인들은 해당 부분의 감각기관이나 신경계가 손상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반도체 칩을 나노 기술로 만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신경의 시스템 자체를 전자공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지요. 현재 인공청각 등의 연구는 많이 진행된 상태지만 그 장치가 크고 무거워 바깥에서 보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희 센터는 이 장치를 좀더 작게 일체형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체형 장치를 장애인에게 이식하면 겉으로 보기에 전혀 알 수 없고 전력 소모도 작아지지요.”

김교수는 인공망막 등은 대략 10년 후부터, 그리고 인공청각은 20년 정도 후면 실용화가 가능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나노 과학이 주로 반도체 쪽에서 각광 받지만 미래에는 생물학이나 의학 쪽에서 더 많이 이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경 시스템과 공학 기술의 접목을 시도하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노 과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인류에 미칠 영향력도, 충격도 클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준 교수의 말처럼 나노 과학은 이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분야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의 나노 과학은 이제 시작 단계이며 나노 과학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만능의 열쇠도 아니다.

20여 년 간 나노 과학을 연구해 온 국양 교수(서울대 물리학과)는 현재의 나노 열풍을 우려하고 있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나노 과학이 가까운 시일 내 큰 수익성을 낼 신제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 “나노 과학은 기초과학 분야이고 기초과학은 어느 쪽이나 수익성 자체는 없습니다. 나노 과학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나노 과학이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보는 나노 기술은 두 가지 분야로 나뉜다. 우선 기존 기술의 소형화 작업이다. 보다 작은 D램이나 하드디스크 등을 만드는 기술로 이 경우 당연히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나노 과학은 이것이 아니라 원자와 분자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기술이라고 국교수는 설명한다. 첫번째는 수익성이 있으나 진정한 나노 과학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두 번째는 진짜 나노 과학이지만 아직 수익모델이 없다는 것이 국교수가 지적하는 나노 과학의 문제점이다.

나노기술산업화센터의 정윤하 교수(포항공대 전기전자공학과)는 이와는 다른 견해를 표시했다. “나노 기술은 현재의 기술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의약품 개발 등의 분야에서는 경제성도 높습니다. 또 한국의 나노 기술 중 반도체 소자의 개발 분야는 미국에 5~7년 정도밖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교수 역시 일정한 산업화 모델을 설정한 후 국가가 나노에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뚜렷한 산업화 모델 없이 무턱대고 투자하면 그만큼 손해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나노 분야에 대한 투자는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노 과학의 여러 분야 중 어떤 분야에 투자를 집중할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나노 과학을 연구할 국내 인력이 너무 모자란다는 것 역시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주간동아 2001.08.23 298호 (p22~23)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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