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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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으로 뭉친 10選 관록의 괴짜

  • < 심규선/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ksshim@donga.com>

    입력2005-01-20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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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치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59) 전 후생상처럼 요란하게 자민당 총재와 총리자리를 거머쥔 인물도 드물 것이다.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영원한 집권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되면 곧바로 총리가 된다. 총재선거가 곧 총리선거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총재선거는 철저히 파벌 안배에 따라 이뤄졌다. 선거도 하기 전에 주요 파벌 총수들이 모여 총재를 내정해 왔고 선거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관행을 깨버린 것이 이번에 총리가 된 고이즈미 전 후생상이다. 그는 평소 파벌 해체를 주장해 왔고, 출마 전에는 비록 상징적이긴 했지만 자신이 회장직을 맡고 있던 모리파를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의 ‘실험’이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뜻은 가상하지만 그의 상대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라는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당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의 회장인데다 총리 경험자. 어디를 봐도 고이즈미 후보가 이길 공산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일본 정치에서는 보기 드문 ‘바람’이 몰아쳤다. 자민당의 파벌 정치에 싫증을 느낀 지방 당원들이 고이즈미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이다. 고이즈미 후보는 이를 “그동안 꿈틀거리던 마그마가 분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벌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건 고이즈미 후보지만 사실 그는 3세 의원이다. 이른바 정치가 직업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우정상을, 아버지는 방위청 장관을 지냈다. 런던대학에 유학중 부친이 갑자기 별세하자 69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선거에 처음 출마했다. 그러나 결과는 고배. 3년 뒤인 72년 처음으로 배지를 달았고 현재 10선 의원. 그럴듯한 당직을 맡은 적은 없고 우정상과 드물게 후생상 두 차례를 지냈다.



    그의 별명은 ‘헨진’(變人·이상한 사람, 괴짜)이다. 독설가로 유명한 같은 당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의원이 붙여주었다. 자민당 의원으로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언동을 일삼아 ‘일언거사’(一言居士)라는 별명도 있다. 언론에서는 그를 ‘한마리의 늑대’라고도 한다. 세 가지 별명의 공통점은 어쨌든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난 97년 중의원 재직 25주년 때 장기 근속 표창과 그에 따른 특전을 포기해 화제를 불렀다. 20여 년 전에 퍼머를 시작해 국회의원 퍼머족 1호가 되었고, 한때 일본을 석권했던 록그룹 X저팬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그의 독특한 성격은 우정사업의 민영화 주장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전국의 우정사업 종사자들은 자민당 최대 지지세력 중 하나여서 이를 떼내 개혁을 하고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주장은 곧바로 당내 실력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는 95년 9월 우정사업 민영화를 내걸고 하시모토 류타로 후보와 총재 자리를 놓고 한판 싸움을 벌였다. 결과는 대패. 98년 7월 두 번째 총재 선거에 도전했으나 역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관록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과 국민적 인기는 급상승했다.

    퍼머 머리에 록그룹 팬… ‘파벌 반대’로 초반 열세 극복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그의 앞길은 험난하다.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기대가 큰 만큼 뭔가 실적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탤런트를 인기투표로 뽑았다는 비난이 나올 수 있다.

    그의 임기는 일단 9월 정기 총재선거 때까지다. 그전 7월에 참의원 선거라는 힘든 언덕이 기다린다. 여기서 참패를 한다면 단명총리로 물러나야 한다. 현재 상황은 자민당이 절대 불리하다. 외교-국방 등 대외문제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한국으로서도 고민이다. 그는 한국을 잘 알지 못한다. 물론 한국도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원칙주의자여서 응석부리듯 접근해 봤자 소용없다. 첫번째 시련이 역사 교과서 재수정 요구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교과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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